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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롱에서 열풍으로…美 뒤흔드는 서머스의 '조기 침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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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남의 미국은 지금]

온갖 조롱 받던 '민주당 사람' 서머스

"그가 맞았다"…무거운 조기 침체 경고

①"현재 인플레, 역사적 최고치 근접"

②"실업률 올라야 임금 인플레 완화"

③"경기 침체 없이 물가 연착륙 없다"

[뉴욕=이데일리 김정남 특파원] 래리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는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 제프리 삭스 컬럼비아대 교수와 함께 미국 경제학계의 ‘3대 슈퍼스타’로 불린다. 28세 나이에 하버드대 최연소 종신교수에 오른 천재다. 특히 클린턴 행정부에서 재무장관을, 오바마 행정부에서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을 각각 지냈던 ‘민주당 사람’이다. 민주당 진영에서는 최고의 경제 원로 대우를 받아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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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문승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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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그에게 지난 1년6개월은 어느 때보다 파란만장했다. 지난해 2월 워싱턴포스트(WP) 기고를 통해 “한 세대 동안 경험하지 못한 인플레이션이 올 것”이라고 한 게 시작이었다. 지난해 1월과 2월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전년 동월 대비)은 1.4%와 1.7%. 여전히 저물가였다. 그럼에도 서머스는 친정인 바이든 행정부의 돈 풀기를 대놓고 비판하며 물가 경고의 선봉에 섰다. 그 과정에서 크루그먼 같은 민주당 성향 인사에게서 ‘바보’ ‘정치꾼’ 조롱까지 들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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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조롱 당했던 경제학 슈퍼스타

“결국 서머스가 맞았다.”

요즘 미국 월가와 학계에서 가장 많이 도는 말이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재닛 옐런 재무장관, 제롬 파월 연준 의장 등을 제쳐두고 서머스와 통화한 사실까지 알려지면서, 이런 관측은 절정에 달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지지율이 최악이다. 마음 급한 그가 자신을 1년6개월 동안 비판한 서머스에게 이례적으로 자문을 구한 것이다. 월가의 한 채권 어드바이저는 “이제 서머스의 언급은 챙겨서 볼 수밖에 없게 됐다”고 전했다.

그렇다면 서머스가 내놓고 있는 진단과 전망의 핵심은 무엇일까. 이달 서머스가 발표한 ‘과거와 현재의 인플레이션 비교’(Comparing Past and Present Inflation) 논문을 보면 1978년 4월~1983년 7월 2차 오일쇼크 당시 CPI 상승률 최고치였던 14.8%를 현대 소비 패턴에 맞춰 다시 계산한 결과 11.4%로 나타났다. 1972년 6월~1976년 12월 1차 오일쇼크의 경우 최고치는 12.3%였는데, 이를 현대식으로 바꾸면 9.1%가 된다. 과거 CPI가 제대로 반영하지 않은 주택 가격을 넣어 다시 계산한 결과다. 가장 최근인 지난달 CPI 상승률은 8.5%는 과거 최악의 오일쇼크와 차이가 크지 않은 셈이다. 서머스는 “현재 인플레이션은 공식적으로 발표됐던 수치보다 역사적인 최고점에 훨씬 가깝다”고 말했다.

“서머스가 맞았다” 무거운 그의 경고

두 번째는 서머스가 낮은 실업률과 인플레이션의 관계에 주목한다는 점이다. 5월 미국 실업률은 3.6%다. 완전고용 수준이다. 그런데 이는 일할 수 있는 연령임에도 일하지 않는, 다시 말해 노동시장에서 아예 이탈한 이들이 많아 생긴 착시라는 게 서머스의 생각이다. 실제 5월 노동시장 참여율(노동력/16세 이상 경제활동인구)은 62.3%로 팬데믹 직전인 2020년 2월(63.4%)에 못 미친다.

2001~2019년 기준 구인율과 퇴직률 장기평균은 각각 3.1%, 1.9%로 추정된다. 그러나 지금은 각각 7.0%, 2.9%에 달한다. 기업이 사람을 구하려는 수요는 급증했는데, 높은 연봉을 좇아 퇴사하는 직원 역시 많다는 뜻이다.

서머스는 최근 ‘더 컨버세이션’ 칼럼에서 “오늘날 임금 상승률은 6.6%로 역사적인 속도로 가속화하고 있다”며 “임금은 인플레이션의 궁극적인 척도”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런 상황에서 연준 목표치인 2%로 물가를 낮출 수 있다는 낙관론의 근거는 없다”고 못 박았다.

그의 이런 진단은 결국 “경기 침체는 불가피하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기업이 높은 임금을 버티지 못하고 사람을 뽑지 못해 실업률이 올라가야, 역대급 인플레이션을 잠재울 수 있다는 것이다. 서머스는 “앞으로 2년간 7.5%, 5년간 6%, 1년간 10%의 실업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경기 침체 없이 연준 목표치인 2%로 물가를 낮추는 ‘연착륙’의 근거는 없다는 것이다.

서머스는 지난 24일(현지시간) 블룸버그TV에 또 나와 “향후 2년 내에 경기 침체가 닥칠 확률은 75~80%인데, 이보다 더 빨리 덮칠 위험도 있다”며 조기 침체론을 경고했다.

월가 한 금융사의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1984년 경기 연착륙에 성공했을 당시의 직전 실업률이 10%를 넘었다는 서머스의 분석은 인상적”이라며 “주요 기관들이 침체 확률을 상향 조정하는 주요 근거”라고 전했다. 서머스의 조기 침체론은 지난해 고(高)인플레이션 경고보다 훨씬 설득력 있게 미국을 뒤흔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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