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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얼마나 오를까” 전기요금 ‘폭탄 돌리기’ 50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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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료비 조정단가 인상 여부 결정 연기

정책·정치적 고려로 결정되는 관행 이어져

용도별 차등화, 원가 반영 어려운 방식

한전 적자보다 더 궁극적인 문제는 수급 안정성

에너지값 반영과 함께 요금체계 개편 숙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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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일 서울 시내 주택가의 전기계량기와 가스계량기 모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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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3분기 전기요금 인상안을 27일 오후에 발표할 예정이라고 산업통상자원부가 26일 전했다. 애초 예정했던 21일에서 일주일 가량 늦어졌다. 국제 에너지값 급등으로 요금을 올릴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물가 급등을 우려한 정부 당국의 난색으로 진통을 겪었던 사정을 반영한다.

이번 요금 인상은 한국전력의 요청에 따른 것이다. 한전 쪽은 정부에 제출한 조정안에서 연료비 조정단가를 분기별 한도인 킬로와트시(kWh)당 3원까지 인상하고, 기준 연료비 등 전기요금을 구성하는 다른 항목의 상향 조정을 요구해왔다. 기획재정부는 물가에 끼칠 악영향을 우려해 인상 폭을 최소화하겠다는 뜻을 거듭 밝혀왔던 터여서 인상 폭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전기요금 결정은 한전의 요청을 받은 산업부가 물가 당국인 기재부와 협의해 결정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전기요금 연료비 조정단가 결정이 미뤄졌다. 정부는 애초 지난 20일, 3분기 연료비 조정단가 인상 결정을 하려다 연기한 뒤 아직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다.

한국전력은 정부에 제출한 조정안에서 연료비 조정단가를 분기별 한도인 킬로와트시(kWh)당 3원까지 인상하고, 기준 연료비 등 전기요금을 구성하는 다른 항목의 상향 조정을 아울러 요구했다. 하지만 한전 쪽의 요청은 물가에 미칠 악영향을 우려해 인상 폭을 최소화하려는 기획재정부의 반대에 막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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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지난 23일 오후 서울 중구 한 호텔에서 윤석열 정부 이후 처음 개최된 제25차 에너지위원회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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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요금 결정을 둘러싼 밀고 당기기는 원가 흐름이라는 경제적 변수보다 정책적 내지 정치적 고려가 더 강하게 작용하게 만드는 국내 요금체계의 독특함과 얽혀 있다.

국내 전기요금은 ‘용도별 차등제’를 기본으로 삼고 있다. 주택·일반·산업·교육·농사·가로등 등 6가지 용도별로 나눠 요금을 달리 적용하는 방식이다. 용도별 요금 차등제는 세계적으로 드문 사례로 꼽힌다. 대개는 전기 원가를 반영하는 ‘전압별 차등제’를 채택하고 있다. 일본 동경전력을 예로 들면, 저압·고압·특별고압으로 나눠 요금을 달리 정하고 있다. 전압이 높을수록 단위당 요금은 싸다. 미국, 프랑스, 캐나다도 전압별 요금체계를 따르고 있다.

이유수 에너지경제연구원 에너지탄소중립연구본부장은 “고압, 저압에 따라 요금을 나누는 게 경제성 원리에 맞고 효율적”이라고 말한다. 전기를 고압 상태 그대로 보내느냐, 저압으로 낮춰야 하느냐에 따라 비용에서 차이가 크게 나기 때문이란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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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력 누리집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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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력도 1973년 이전에는 전압별 구분을 기본으로 하는 요금제를 채택하고 있었다. 한전 쪽은 “1973년 석유파동 이후 에너지 정책 등 국가 정책적 고려에 의해 용도별 체계로 전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1992년 ‘업무용’을 ‘일반용’과 ‘교육용’으로 나누고, 지난해부터 ‘원가연계형 전기요금제’를 도입해 적용하는 식의 변화가 일부 있었을 뿐, 용도별 차등제라는 기본 뼈대는 지금껏 50년째 이어지고 있다.

이유수 본부장은 “석유파동 뒤 에너지에 대한 정책적 조정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정부 주도의 개발경제 시대에 산업용을 싸게 공급해 수출을 늘리도록 뒷받침하는 용도별 차별화 혜택이 주어졌다는 설명이다. 원가라는 경제적 요인보다 국가 정책적 고려에 따르는 이런 요금제는 농사용·교육용 같은 다른 영역에도 적용돼 길게 이어지면서 관성으로 굳어졌다.

정책적 고려는 곧 정치적 성격을 띠기 쉽다. 예를 들어, 주택용은 일반인의 살림과 직결되고, 선거 기간에 표 문제와 얽히기 마련이다. 에너지 가격이 급등세를 타는 시기에는 제대로 작동하기 어려운 방식이며, 문제를 키울 수밖에 없다. 한전의 적자가 급팽창하고, 전기요금을 둘러싼 논란이 심한 지금의 현실과 무관치 않다.

이유수 본부장은 “(정책적, 정치적) 필요에 따라, (여론) 눈치를 보다가 사정이 괜찮으면 조금씩 반영해 요금을 올리고 여의치 않으면 묶어두는 일이 반복됐다”며 “선거 때 표를 의식해 ‘폭탄 돌리기’를 해온 것”이라고 말했다. 이 본부장은 “에너지 가격 변동에 따라 요금을 적기에 적절하게 조정해야 소비자들에게 ‘신호’를 주게 되고“ 그 바탕 위에서 “한전은 멀리 내다보고 설비 투자용 재원을 마련해 (전기공급) 안정성을 확보하게 된다”고 말했다. 요금의 신호등 역할이 작동하지 않는 상황에선 전기 사용량은 지속해서 늘어나게 되고, 이는 추가 설비 및 에너지 수입 증가로 이어지는 악순환 고리를 형성하게 된다는 설명이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는 “용도별 요금제를 바꿔 원가 기반 요금제로 가야 한다는 얘기는 그동안 줄곧 나왔고, 이번 정부 국정과제에도 들어가 있을 정도로 합리적이고 맞지만, ‘정치적 수용성’ 때문에 (도입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전압별로 구분하면 현재 요금 구조상 주택용 요금은 올라가고 산업용은 내려가는 모양새가 돼 ‘대기업·재벌 봐주기’라는 비판에 맞닥뜨릴 개연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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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력 누리집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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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요금을 둘러싼 여러 논란에도 국내 요금이 국제 비교에서 낮은 편에 든다는 데는 이견을 달기 어려워 보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료를 보면, 2020년 기준 한국의 산업부문 요금(이하 시장환율 기준·메가와트시(MWh)당)은 94.8달러이다. 미국(68.3달러)보다는 높지만 프랑스(117.8달러), 독일(146달러), 영국(147.1달러), 일본(164.3달러)보다는 낮다.

한국의 주거부문 요금은 메가와트시당 102.4달러로, 관련 통계를 내는 오이시디 36개 회원국 중 멕시코에 이어 두 번째로 낮은 것으로 비교돼 있다. 주요 나라의 주거부문 요금은 미국 130.4달러, 프랑스 199.1달러, 영국 233.8달러, 일본 253.5달러, 독일 333.9달러 수준이다. 우크라이나 사태 뒤 유럽 주요 나라에서 전기 도·소매 가격을 대폭 높인 사정에 비춰보면 격차는 더 커졌을 수 있다. 어느 나라 할 것 없이 산업부문 쪽이 낮은 데, 한국에선 양쪽 격차가 이례적으로 작다는 점도 눈에 띈다.

산업용 전기 요금은 ‘비즈니스 프렌들리’(친기업) 정책 기조를 내건 이명박 정부 때 매우 낮게 유지됐다가 박근혜·문재인 정부를 거치면서 조금씩 상향 조정됐다. 반면, 주택용에 대한 인상 조정은 거의 이뤄지지 않았고, 박근혜 정부 때인 2016년 누진제를 완화하는 방식으로 오히려 깎아준 상태에서 지금에 이르고 있다.

정연제 에너지경제연구원 전력정책연구팀장은 “물가 흐름을 고려할 때 (전기) 원가 발생 요인을 한꺼번에 반영하기는 어렵겠지만, 점진적으로 나눠서라도 요금에 반영하는 조정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연료비 조정단가 인상은 물론 기준연료비 같은 다른 항목의 조정도 필요하다는 제안이다. 한전의 적자 해소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송전망을 새로 갖추는 것을 비롯한 투자 재원을 마련해야 전력 공급의 안정성을 꾀할 수 있다는 점에서다. 원가를 반영하는 요금제로 바꿔나가는 일은 그 다음 단계의 숙제로 꼽힌다.

김영배 선임기자 kimy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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