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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위기의 탄소중립…전쟁 발발 후 온실가스 배출량 사상최대 [우크라 충격파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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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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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박병희 기자] 지난해 서방을 이끄는 양대 강국 미국과 독일에서는 모두 정권 교체에 성공한 새 정부가 출범했다. 새 정부는 모두 강력한 기후변화 대응과 친환경 정책 추진을 국정과제로 제시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1월20일 취임 첫 날 도널드 트럼프 전임 대통령이 탈퇴한 파리기후협약 복귀를 선언했고 1주일 뒤에는 연방정부 소유의 토지에서 석유·가스 채굴을 위한 시추 작업을 중지시키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녹색당과 손잡고 16년 만의 사회민주당 주도의 연정 창출에 성공했다. 연정은 대표적인 친환경 정책으로 2030년 석탄 화력발전소 폐지를 약속했다. 전임 앙겔라 메르켈 정부가 2038년으로 잡은 목표 시기 8년 앞당겼다.

지난 2월24일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뒤 미국과 독일의 새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한 대표 친환경 정책들이 삐걱거리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 전국 휘발유 평균 가격이 갤런당 4달러를 돌파하자 지난 4월 석유ㆍ가스 채굴을 위한 연방정부 국유지 입찰을 재개했다. 독일 연방정주는 지난 16일 석탄 화력발전소 가동을 임시로 확대한다고 발표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탄소중립 정책이 위기에 처했다는 경고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화석연료 '골드 러시'= 영국 BBC는 지난 8일 우크라이나 전쟁 때문에 화석연료 '골드 러시'가 벌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에너지 확보와 관련 발등에 불이 떨어지자 친환경 에너지로의 전환이라는 장기 목표보다는 당장 대체 화석연료 자원을 찾는데 급급하다고 지적했다. 유럽 국가들은 러시아 에너지를 대체할 수 있는 액화천연가스(LNG)를 미국과 중동에서 들여오기로 잇달아 계약했고 화석연료 투자가 다시 활기를 띄기 시작했다.

화석연료 수요가 급증하면서 국제유가는 전쟁 발발 직후인 지난 3월 초 14년 만에 배럴당 130달러를 돌파했고 여전히 세 자릿수를 유지하고 있다. 유럽 천연가스 가격은 1년 전보다 6배 이상 높은 ㎿h당 129유로에 거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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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교롭게도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후 온실가스 배출량이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는 보고가 나왔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 소재 스크립스 해양연구소(SIO)에 따르면 지난 5월 하와이의 마우나 로아 화산에서 측정한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421.37ppm으로 집계돼 지난해 5월 기록한 사상최고치 418.95ppm을 넘었다. 과학계에서는 지구가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350ppm 이하를 유지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유엔 세계기상기구(WMO)와 영국 기상청(Met Office)은 지난달 10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향후 5년 내 지구의 기온이 산업화 이전 수준보다 1.5도 이상 높아질 확률이 48%라고 분석했다. 파리기후협약이 위기에 처했다는 경고였다. 세계는 파리기후협약을 통해 지구의 기온을 산업화 이전보다 2도 이상 오르지 않도록 노력하되 가능한 1.5도 이내로 억제한다는 목표를 정했다. 파리기후협약 당시 1.5도 목표는 장기 평균 목표를 기준으로 했기 때문에 5년 이내 1.5도에 도달한다고 해서 파리기후협약 임계치에 도달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하지만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는 지난해 발표한 보고서에서 장기 평균이 20년 이내에 1.5도 더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지구의 기온은 산업화 이전보다 1.1도 높다.

현재 미국, 독일 등 주요 선진국은 2050년을 탄소중립 달성 목표 시기로 잡고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시각이 우세하다. 컨설팅업체 베인이 1000명이 넘는 기업 경영진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탄소중립 달성 예상 시기는 평균 2057년이었다. 응답자 중 4분의 1은 2070년이 돼도 탄소중립 달성이 어렵다고 예상했다.

◆표심은 '친환경'…탄소중립 가속화할 수도= 온실가스 배출량이 증가하는만큼 기후변화 대응을 촉구하는 유권자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미국 국민들은 파리기후협약에서 탈퇴한 트럼프의 연임을 거부했으며 독일 국민들은 녹색당에 국정 운영의 기회를 부여했다. 독일 녹색당은 지난해 9월26일 연방 하원선거에서 1993년 창당 후 가장 높은 14.8% 득표율을 기록하며 양대 정당에 이어 3위를 차지했다. 독일 연방정부가 최근 석탄 화력발전 확대를 발표했지만 임시 조치일 뿐이다. 2030년 석탄 화력발전 폐지 공약은 여전히 유효하다.

최근 호주 총선과 콜롬비아 대선에서도 친환경이 정치권의 거스를 수 없는 대세임이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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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집권한 앤서니 알바니스 호주 총리와 구스타보 페트로 콜롬비아 대통령은 기후변화 대응을 약속했다. [사진 제공=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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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호주 총선에서는 노동당이 9년 만에 정권을 탈환했다. 노동당은 지난 집권 때인 2012년 7월 500대 탄소 배출 대기업에 톤당 23호주달러를 내도록 하는 고정 가격의 탄소세를 도입했다. 노동당은 이듬해 9월 총선에서 패했고 새로 집권한 자유ㆍ민주 연합은 탄소세 도입 2년 만인 2014년 7월 탄소세를 폐지했다. 노동당이 재집권 하면서 탈탄소 정책이 다시 추진될 것으로 예상된다.

올해 초 호주 동부 퀸즐랜드와 뉴사우스웨일스주 등은 역사상 최악의 물난리를 겪었고 호주 총선에서 기후변화 대응은 주요 화두가 됐다. 새로 집권한 앤서니 알바니스 총리는 탄소배출권 거래제를 통해 기업 온실가스 배출을 제한하고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상향조정하겠다고 밝혔다.

이번달 콜롬비아 대선에서 승리해 콜롬비아 사상 최초의 좌파 정권을 탄생시킨 구스타보 페트로 당선인도 반대 세력에서 경제적 자살행위라고 할 정도로 강력한 기후변화 대응을 공약했다. 페드로 당선인은 새로운 석유 탐사를 중단하고 아마존 파괴를 막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또 미국과의 관계에서는 기후변화 대응에 초점을 맞춰 협력할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컨설팅업체 매킨지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단기적으로는 친환경 에너지로의 전환을 꼬이게 만들 것이 분명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에너지 안보가 곧 경제적 이익이라는 인식을 확산시켜 친환경 에너지로의 전환을 가속화하는 전환점이 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매킨지는 역사적으로 충돌이 종종 에너지 전환을 가속화시켰다며 19세기 해전은 선박의 동력을 풍력으로 석탄으로 바꿨으며 1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에너지원이 석탄에서 석유로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또 2차 세계대전은 원자력이 주요 동력원으로 자리잡는 계기가 됐다고 설명했다.

박병희 기자 nu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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