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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단독] “역도부 코치가 폭행” 신고에…한체대 “조용히 처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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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학부모들 송파서에 코치 고소

학교는 스포츠윤리센터 신고도 안해

지도교수 등 나서 ‘고소 취하’ 압박

2020년 6월에도 학내 폭행 은폐 의혹


한겨레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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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체육대학교가 학내 운동부 코치에게 폭행당한 학생과 그 학부모를 상대로 고소 취하를 요구했다. 신고 의무를 명시한 일명 ‘최숙현법’(국민체육진흥법) 취지에 어긋날뿐더러, 사실상 조직적 은폐 시도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고 최숙현 선수 2주기(26일)를 맞았지만, 스포츠계 현실은 크게 달라지지 않은 셈이다.

26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 송파경찰서는 최근 한국체육대학교(한체대) 최아무개 역도부 코치에 대한 고소장을 접수해 수사에 들어갔다. 최 코치는 한체대 기숙사에서 역도부 소속 학생들을 폭행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이 과정에서 최씨는 하키채로 학생들 머리를 치기도 했다고 전해졌다. 최씨는 현재 역도부 업무에서 배제된 상태다.

한체대는 해당 사건을 인지하고도 스포츠윤리센터 등에 신고하지 않았다. 대한역도연맹과 대한체육회에도 사건 발생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대신 역도부 지도교수 등이 나서 학생과 학부모에게 사건을 내부적으로 마무리 짓자고 설득했다. 이 때문에 학생들 쪽에선 학교가 조직적으로 사건 은폐를 시도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체대는 이런 의혹을 부인했다. 조준용 한체대 교무처장은 “학생, 학부모님들과 담당 지도교수가 접촉해서 되도록 합의해 정리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저 또한 학교 대표로 학부모님 뵙고 학생들 만나서 되도록 조용히 처리했으면 하는 생각”이라면서도 “은폐 시도는 절대 아니다. 학생들은 지금 나와서 운동도 잘하고 있다”고 했다.

한겨레

한국체육대학교 누리집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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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런 대응 자체가 은폐 시도라는 비판이 나온다. 학생들 입장에선 장래 실업팀 입단을 포함해 스포츠계 활동에 불이익이 생길까 우려할 수밖에 없는데, 지도교수는 물론 교무처장까지 나서 학생과 학부모를 설득하는 일 자체가 사실상 고소를 취하하라는 압박이라는 지적이다.

이는 최숙현법 취지와도 어긋난다. 현행 국민체육진흥법은 체육지도자 등이 체육계 인권침해 및 스포츠비리를 알게 된 경우 스포츠윤리센터 또는 수사기관에 즉시 신고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이른바 ‘신고 의무’ 원칙이다. 내부 해결을 핑계로 사건을 은폐하는 일이 잦아지자, 외부 신고를 의무화한 조항이다. 하지만 신고 의무가 있는 지도자가 내부 해결을 거론하며 오히려 이미 진행된 고소마저 취하하라고 요구한 셈이다.

한체대는 앞서 2020년 6월에도 학내 폭행 사건 은폐 의혹을 받았다. 한체대는 당시 핸드볼팀 3학년 ㄱ선수가 1·2학년생 등을 때려 특수 폭행 혐의로 입건돼 경찰 조사를 받았지만, 대한핸드볼협회 등엔 이 사실을 알리지 않아 협회가 언론 보도를 본 뒤에야 사건 대응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피해 학생들은 당시 ㄱ선수가 흉기를 휘두르고 뺨, 얼굴, 가슴 등을 때렸다고 진술했다.

한체대가 체육계 폭력 사각지대에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학은 학교체육진흥법상 관리 대상이 아닌데다, 대학운동부는 교육부·문화체육관광부 양쪽과 연관돼있어 폭력 문제 관할 주체도 뚜렷하지 않다. 이 때문에 학교에서 가해 사실 등을 숨길 경우, 향후 가해자가 다른 곳에서 지도자로 일하는 데 별다른 지장이 없다. 대한체육회 관계자는 “현행 제도상으론 대학 내 스포츠 폭력은 관리가 어려운 상황”이라며 “대학운동부 업무를 통합하는 등 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준희 기자 givenhapp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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