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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문학이 인간에게 보내는 최종적 신뢰 - 존 스타인벡 《에덴의 동쪽》[북적북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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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룸] 북적북적 344 : 문학이 인간에게 보내는 최종적 신뢰 - 존 스타인벡 《에덴의 동쪽》
"……그러나 어떤 피가 내 아들 속에 흐르고 있는가는 알고 싶어요. 내 아이들이 성장했을 때 내가 그들에게서 무언가 찾아내려고 하지 않겠어요?"
"그렇죠, 그렇겠죠. 그런데 내가 미리 이야기해 두는데 그들의 피가 아니라 당신의 의심이 그들 속에 악을 심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이오. 당신의 기대대로 그들은 자랄 것입니다."
"그러나 핏줄이 있는데."
"나는 핏줄을 그리 믿지 않아요. 아이들 속에 선이나 또는 악이 있다고 하더라도 세상에 태어난 후에 그들 속에 심어 놓은 것을 후에 보게 된다고 나는 생각해요."


여름입니다. (여름 내내 그저 "덥고 습해!" 투덜거리는 게 전부가 될지언정, 그래도) 초여름엔 늘 왠지 좀 설렙니다. 이 세상이 클라이맥스를 향해 막 달리기 시작한 것 같은, 비밀스러운 기운이라고 하기에는 대놓고 약동하는 그 생명력의 싱그러움이 가슴으로 스며드는 계절입니다. [북적북적] 가족들은 이 여름, 어떻게 시작하시고 있나요.

하지를 지나 본격적인 여름으로 접어드는 이번 주, 괜히 들뜨는 마음에 제게 의미가 깊은 현대 고전 한 권을 가져와 봤습니다. '고전'들이 흔히 그렇듯이, 의외로 읽어본 사람은 많지 않으나 제목만은 누구에게나 익숙합니다. 존 스타인벡의 1952년 작 [에덴의 동쪽]을 오늘 함께 읽고 싶습니다.

[에덴의 동쪽]은 책이 나온 지 3년 뒤인 1955년 이 소설을 원작으로 만들어진 동명의 영화로도 유명합니다. 제임스 딘이 남긴 단 3편의 영화 중 한 편이 바로 이 작품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2008년 [에덴의 동쪽]이란 타이틀이 붙었던 드라마가 큰 인기를 끈 바 있습니다. '형제간의 갈등'을 주축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는 점에서 이 소설의 제목을 끌어왔던 것으로 추정하는데, 아무튼 한국 현대를 배경으로 한 장편 드라마의 타이틀로 차용이 될 정도로 귀에 익으면서 뭔가 극적이고 장엄한 느낌을 주는 이름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스케일이 큰 제목을 야심차게 붙였던 원작소설은 대체 어떤 내용일까요.
"태초부터 우리를 따라다니는 두 가지 이야기가 있지요." 새뮤얼이 말했다. "우리는 그 이야기를 보이지 않는 꼬리처럼 달고 다니죠. 하나는 원죄의 이야기이고 다른 하나는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이죠."


[에덴의 동쪽]은 대하소설입니다. 19세기 후반 미국 캘리포니아 샐리너스 계곡이란 지역에 자리잡은 아담 트래스크란 사람의 집안을 중심으로, 그의 부모 대부터 아들들에 이르기까지 3대 이상의 일대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특히 이 소설을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눴을 때, 후반부의 주인공이자 아담 트래스크와 캐시의 아들들인 아론과 카알(케일럽) 형제의 이야기가 이 소설의 인간관과 세계관을 집중적으로 반영합니다. 제목에 '에덴'이 언급되는 데서 이미 짐작할 수 있지만, 성경의 창조신화가 이 장편소설의 메인 모티브입니다. 창조신화 속 아담과 이브의 두 아들 카인과 아벨의 일화에 대한 작가의 해석을 바탕으로 쌓아올린 주제의식이 전편을 관통합니다.
"아담이 말했다. "나는 하느님에 대하여 불만을 갖고 있어요. 카인과 아벨은 그들이 갖고 있는 것을 하느님에게 바쳤어요. 그런데 하느님은 아벨의 것은 받아들이고 카인의 것은 거절했어요. 공평한 일이라고는 생각지 않았어요. 나는 이해할 수 없었어요. 이해하세요?"
"우리는 다른 배경에 대하여 생각할 수도 있지요." 리가 말했다.
"이 이야기는 유목민에 의하여, 그리고 유목민을 위하여 씌어진 것이라고 생각해요. 농경인들이 아니었죠. 유목민의 신이라면 보릿단보다는 살찐 양을 더 가치 있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겠어요?"
"그렇지. 뜻을 알겠네." 새뮤얼이 말했다. "리, 동양적인 사고를 집사람의 관심사가 되도록 만들지는 말게."
아담은 흥분해 있었다. "맞아, 하느님은 왜 카인을 저주했는가? 불공평한 일이야."
새뮤얼이 말했다. "글을 잘 읽는 것이 이로워요. 하느님은 카인을 전혀 저주하지 않았네."
……(중략)…….. "살인죄로 카인은 쫓겨났던가요?"
"그렇죠. 살인 때문에."
"하느님은 그에게 낙인을 찍었나요?"
"귀담아 들으셨어요? 그를 멸망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를 구원하기 위하여 카인에게 표지를 해준 것이지요. 그를 죽이는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저주를 받게 되었죠. 보호표지였어요."
아담이 말했다. "카인이 선택을 잘못했다는 생각을 금할 수 없군요."
"그랬는지도 모르죠." 새뮤얼이 말했다. "그러나 카인은 살아서 자식을 갖게 되었고, 아벨은 이야기 속에서만 살아 있죠. 우리들은 카인의 후예입니다."


대하소설의 복잡한 줄거리나 수많은 캐릭터들을 한 마디로 축약해서 소개하긴 어렵습니다. 다만, 재미는 확실합니다. 보르헤스의 대하소설들처럼, 일단 읽기 시작하면 등장인물들의 이야기 자체에 감겨서 술술 빠져들게 되는 작품입니다.

저자 존 스타인벡은 그야말로 미국의 20세기를 대표하는 문호 중에 한 사람입니다. [에덴의 동쪽] 외에도 [분노의 포도], [불만의 겨울] 같은 걸작들을 남겼습니다. [북적북적]에서 너무도 소개하고 싶은데! 우리말 번역본이 나와 있지 않아 못 하고 있는 미국 대륙 횡단 기행문집 [찰리와의 여행]이란 걸작 에세이를 쓰기도 했습니다. ([찰리와의 여행]을 펴내줄 출판사를 애타게 기다립니다…… 찰리는 스타인벡과 함께 여행한 반려견 이름입니다.)

저는 이 책을 고등학교 때 처음 읽었습니다. 감히, 제 청소년기의 정신세계를 '몰딩'했던 작품 중 하나로 지금도 마음 깊이 아끼는 책입니다. 그리고 고등학생으로서도 알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을 쓴 사람은 작가로서의 야심을 여기 쏟아 부었구나. 작가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꿈꿀 만한 궁극적 프로젝트를 이 책이라고 스스로 생각했겠구나.' 실제로 작가 본인이 [에덴의 동쪽]에 대해 "지금까지 나의 모든 다른 작품은 이 책을 쓰기 위한 습작에 지나지 않았다"고 말했다는 일화도 있습니다.

서구인들의 정신적 원류 중 하나인 성서의, 그것도 무려 창조신화에서 모티브를 가져와서 작가의 인간관을 담은 작품입니다. 뿐만 아니라, 미국이라는 나라의 건국 배경과 사회상에 이르기까지, 본인이 속한 세계에 대해 작가로서 통찰해 온 전부를 여기에 풀어놓아 보겠다는 야심이 책장 곳곳에서 드러납니다. 무엇보다, '미국 작가'의 대표격인 사람이 세상에 던지는 일성의 결기가 느껴지는 소설입니다. 동서고금에 유례 없는 방식으로 형성된 미국이라는 나라와 미국인이라는 집단이 인류사에 갖는 의미, 미국이 우리에게 상징하는 궁극의 모럴을 문학적으로는 존 스타인벡이 이 작품에서 완성하고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인간의 자유의지에 대한 믿음, 스스로 이룩하고 스스로 일구어내는 인간성에 대한 최종적인 신뢰가 깃든 걸작인 것입니다.
"하느님이 내 이름을 부르시지 않으면 내가 부를 수도 있었을 텐데, 나는 못했어요. 거기에 위대함과 평범함의 차이가 있어요. 그러나 위대함이란 세상에서 제일 외로운 것이라는 걸 평범한 사람은 아는 것이 좋지요."
"위대함에도 정도의 차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담이 말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그렇다면 작은 대(大) 자가 있다는 것과 마찬가지죠. 당신은 그 책임에 부딪치게 될 때 거대한 것만을 선택할 수밖에 없게 되죠. 한편에는 온정과 우정과 이해가 있고 다른 한편에는 차고 외로운 위대함이 있어요. 여기에서 당신은 선택을 하게 되죠. 나는 평범함을 택한 데 대하여 만족하고 있어요. 그러나 나는 만일 다른 쪽을 택한 경우 어떤 보상이 있었으리라고 말할 수 없어요. 내 자식들은 톰을 빼놓고 누구 하나 위대하게 되지 않을 거요. 그 애는 지금 옳은 선택을 하기 위해 고심하고 있지요. 옆에서 보기도 괴로운 일이지요. 그런데 내 마음 속 어디에선가 그 애가 '네'하고 대답하기를 바라고 있지요. 이상하지 않습니까? 아버지가 되어 가지고 아들이 저주스럽게도 위대하게 되기를 바라고 있으니 말이오. 얼마나 지독한 이기주의자입니까?"
아담이 낄낄 웃었다. "이름 짓기가 쉬운 일이 아니구먼요."
"쉬우리라고 생각했소?"
"이렇게 즐거운 것인지는 몰랐지요."


이번 낭독에선 [에덴의 동쪽] 전반부를 마감하는 대목을 읽었습니다. 존 스타인벡은 이 책의 중반을 넘어가는 시점인 전반부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내가 이 작품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는 바로 이거야!'라고 출사표를 던집니다. 바로 그 대목입니다.
이 소설의 전반부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아담 트래스크는 캐시라는 여자를 만나 푹 빠져버립니다. 그런데 캐시는 일종의 악의 현신 같은 인물입니다. 요즘 표현대로 하자면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 같은 특징들을 보이는데, 이 작품에선 그 이상의 존재로서 일종의 불가해한 악, 이해할 수 없을 정도의 악의를 인간화한 상징적인 인물로 그려집니다. 물론, 사랑에 빠진 아담의 눈에는 그런 점들이 보이지 않습니다.

아담은 그야말로 사랑에 눈이 멀어 결혼했지만, 캐시는 인생에서 곤경에 몰렸을 때 마침 아담이라는 임시 피난처를 만난 것에 불과했습니다. 당분간만 이 남자에게 의지를 좀 하고 있어야겠다, 했을 뿐인데 원치 않는 임신까지 하고 이란성 쌍둥이를 낳게 됩니다. 캐시는 몸을 회복하자마자 아이들을 두고 아담을 떠납니다. (이 책의 후반부 결말 부분에서 캐시는 버리고 떠난 두 아들 중 장성한 케일럽을 만나게 됩니다. 이 대목이 이 소설의 클라이맥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에덴의 동쪽]을 쭉 읽어나가다가 이 대목에 이르면, 아마 어떤 다른 문학이나 예술작품에서 얻을 수 있는 것 못지않은 감동과 고양감을 경험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아담은 자기가 환상처럼 숭배하면서 떠받들었던 아내가 떠나버린 것에 큰 충격을 받고 사람이 망가져서 1년 이상 폐인으로 지내면서 아이들의 이름도 지어주지 않습니다. 쌍둥이들은 아담의 집에서 일하는 중국인 이민자 2세, '리'라는 인물이 돌봅니다. (리는 이 책에서 일종의 현자, '와이즈맨' 포지션입니다. [에덴의 동쪽]은 50년대 미국 소설이라는 점을 감안했을 때, 동양인 이민자 2세가 주요 인물 중 하나로 등장하는 정말 흔치 않은 작품입니다. 약간의 오리엔탈리즘을 보이는 면이 아주 없지는 않지만, 그래도 상당히 공정하게 이 중국인 캐릭터를 그리고 있습니다. 사실 미국 근현대사, 미국 서부 개척사에서 초기 동양인 이민자들이 적지 않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류에선 조명이 거의 되지 않았는데, 이 소설에는 리의 탄생기를 통해서 동양인 이민자들의 당시 처지에 대해 상당한 분량을 할애해 서술하고 있는 부분도 나옵니다. 또, 리의 목소리를 빌어 당대의 인종차별에 대해 지적하는 대목도 있는데, 7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봐도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깊이의 통찰이 엿보입니다.)

오늘 읽는 부분은 이 소설의 또다른 주인공 중 하나인 아일랜드 이민자, 새뮤얼 해밀튼이라는 동네 현자가 아담에게 찾아오는 대목입니다. 새뮤얼은 아담에게 정신차리라고 독촉하면서 아이들에게 이름을 지어줘야 한다고 설득합니다. 존 스타인벡은 이 세 남자-아담, 새뮤얼, 리-가 아이들의 이름을 짓는 장면을 통해 이 소설의 주제의식을 직접적으로 웅변합니다. 그리고 이 지점을 기점으로, 아이들의 성장과 함께 그 주제의식이 심화하기 시작합니다.
"나는 동생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문득 말을 멈추고 그의 마음은 멀리 과거로 돌아갔다.
리가 새뮤얼의 말에 대답했다. "그것은 만인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세상에 제일 잘 알려진 이야기지요. 인간 영혼의 상징적인 이야기지요. 나의 느낌이 그렇다는 겁니다. 뜻이 명확하지 않더라도 꾸짖지 마십쇼. 어린애가 제일 두려워하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서 사랑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사랑의 거절은 어린애가 무서워하는 지옥이죠.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모르지만 모든 사람이 사랑의 거역을 느껴 왔죠. 사랑의 거부는 분노를 낳고, 분노는 거역을 복수하기 위해 범죄를 낳고, 범죄는 죄를 낳지요. 이것이 인류의 역사입니다. 만일 거절이라는 것을 완전히 없앨 수만 있다면 인간은 지금처럼 되지 않았을 겁니다. 미친 사람도 더군다나 없었을 겁니다. 감옥도 그렇게 많지 않았을 겁니다. 여기에 모든 의미가 있습니다. 시초가 그거죠. 갈망하는 사랑이 거절되면 어린아이는 고양이를 발길로 차서 자기의 비밀스러운 죄를 감추지요. 어떤 아이는 돈의 힘으로 사랑을 받기 위해 돈을 훔치죠. 어떤 아이는 세계를 정복하죠. 그러면 늘 죄와 복수와 더한 죄가 따르지요. 인간이란 유일하게 죄진 동물입니다. 좀 기다리세요! 내 생각에 이 무서운 옛이야기는 그것이 영혼의 도표이기 때문에 중요한 것입니다. 비밀스럽고 거부당하고 죄 많은 영혼, 트래스크 씨, 주인께서는 자기가 동생을 죽이지는 않았다고 말을 해놓고는 무엇인가 생각을 하고 계십니다. 그것이 무엇이었는지 저는 알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에서 전혀 동떨어진 것일까요?"


오늘 낭독은 범우사가 펴낸 세계문학선의 1998년 3판으로 했습니다. 범우사가 이 책의 초판을 낸 것은 1983년입니다. 제가 고등학교 때 밤새워 읽으며 감동했던 [에덴의 동쪽]이 바로 그 범우사 초판이었습니다. 어려서 저와 한 방을 썼던 이모가 결혼하며 남겨두고 간 책장에 그 초판본이 오랫동안 꽂혀 있었습니다. 이모의 책장에서 한 권 두 권 '어른들이 읽는 책'을 뽑아 읽는 것이 책벌레 꼬맹이의 즐거움이었지만, 이 책 [에덴의 동쪽]은 사실 제목이 너무 거창하고 고색창연하게 느껴졌던 데다 이미 책장이 누렇게 바래기 시작해 한동안 외면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 고등학교에 가서야 큰 기대없이 뽑아들었던 이 책에 흠뻑 빠져들어 앉은 자리에서 끝까지 읽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후로 서가를 솎아낼 때나 이사를 다닐 때에도 계속 간직해 왔는데, 이제는 한 장 한 장 더욱 낡아 책장이 진갈색에 가깝도록 변색됐습니다. 하지만 1998년 판보다 83년 초판의 낡은 표지가 더 멋지다는 주변의 의견도 있어, 오늘 낭독을 위한 썸네일에는 제게 소중한 이 초판의 표지사진도 함께 올려놓아봅니다.

들어주시는 모든 분들, 이 여름의 한가운데에서도 [북적북적]과 함께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범우사의 낭독 허가를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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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애리 기자(ailee17@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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