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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자리서 ‘말더듬’ 따라한 직장 상사…그게 농담이었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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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전홍진의 예민과 둔감ㅣ언어 유창성의 장애

‘말더듬증’ 겪어온 동진씨, 회사 놀림거리 되자 분노

어린 시절 따돌림 기억 불러…우울증에 직장 사직도


한겨레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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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진씨는 학교에서 행정직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일만 할 뿐 사람들과 만나거나 나서는 것을 꺼립니다. 그는 사실 어릴 때부터 ‘말더듬’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말을 처음 시작할 때 첫음절을 반복하는 증상이 있습니다. ‘안, 안, 안, 안녕하세요’ ‘바, 바, 바, 반갑습니다’라고 말하게 됩니다.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는 증상이 더 심해지고 얼굴이 익숙해지면 줄어들게 됩니다. 동진씨는 자신의 말더듬는 증상 때문에 사람들이 자신을 다시 한번 쳐다보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해질 때가 많습니다. 다행히 동진씨의 업무는 사람들과 그렇게 이야기할 일이 많지 않았습니다.

과장님의 ‘농담’이 건드린 상처


그러던 어느 날 회식 자리에서 동진씨가 큰 상처를 받는 일이 생겼습니다. 맥주를 마시고 술에 취한 상태에서 과장님이 동진씨의 말더듬에 대해서 지적을 한 것입니다. “동진씨, 말할 때 바, 바, 바, 하지 않고 말할 수 없나? 답답해서 못 듣겠어~.” 농담처럼 과장님이 한 말에 함께 술을 마시던 직장 동료들이 모두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하지만 동진씨는 웃을 수 없었고 도저히 참을 수 없을 정도로 화가 났습니다. “과장님 다시 한번 말씀해보세요. 뭐라고 하셨지요?” 동진씨가 갑자기 정색을 하며 묻자 과장은 “농담이야. 바, 바, 바, 해도 괜찮아~” 다시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동진씨는 술잔을 식탁에 탁 내리치고는 울면서 회식 자리를 나갔습니다.

그 이후로 동진씨는 회사에 사직서를 내고 출근하지 않았습니다. 집 안에서 갑자기 혼자서 소리를 지르고 책상을 내려치기도 했습니다. 식사도 하지 않고 밤에 잠도 이루지 못했습니다. 걱정하는 부인에게 “내가 왜 이렇게 못났는지 모르겠다” “앞으로 이렇게 살아갈 자신이 없다” “왜 이렇게 내 자신에게 화가 나는지 모르겠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체중이 3개월 동안 8㎏이나 빠지고 집중력이 흐려져 간단한 메일도 확인하기 어려웠습니다. 가족들의 설득으로 동진씨는 인근 정신건강의학과 의원을 방문했습니다.

담당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진찰한 결과 동진씨는 ‘말더듬증’으로 진단이 되었습니다. 말더듬은 특정 소리나 음절을 빠른 속도로 반복하거나 지연하는 언어 유창성의 장애를 의미합니다. 동진씨는 말을 할 때 혀가 마비되거나 턱이 당겨지는 듯한 느낌을 받기도 했습니다. 말더듬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서 이를 유발하는 어려운 단어를 피하거나 조절해서 말하는 습관이 있습니다. 하지만 동진씨는 말을 처음 시작할 때 첫음절을 반복하는 증상 이외에는 사람들과 대화를 할 때 소통에 문제는 없었습니다.

더 큰 문제는 말더듬으로 인한 어린 시절부터의 트라우마였습니다. 동진씨는 초등학교 때부터 말더듬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로 인해 학교에서 ‘왕따’를 당했습니다. 같은 반 아이들은 그에게 말을 더듬는다며 ‘말더듬이’에서 ‘말’을 빼고 ‘더듬이’라는 별명을 붙여 동진씨를 놀렸습니다. 불량한 친구들은 ‘더듬이’라고 수시로 놀리며 때리기도 하고 빵 셔틀을 시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도와주는 사람이 없었고 같은 반 아이들은 동진씨가 놀림을 당할 때 웃으며 정신적 가해를 했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힘든 것은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돌아가면서 책을 읽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동진씨는 자신이 걸릴까 봐 항상 조마조마했고 자신의 번호가 호명되면 하늘이 하얗게 되는 불안을 느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저, 저, 저… 바, 바, 바” 단어를 반복하면 같은 반 아이들이 큰 소리로 책상을 두들기며 웃었습니다. 동진씨에게는 아이들이 웃는 일이 너무 큰 상처가 되었습니다. 동진씨의 학창 시절은 지금도 악몽 같은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동진씨는 이로 인한 트라우마로 어른이 된 지금까지도 사람들 앞에서 발표할 때면 긴장이 심하게 되고 숨이 막히는 느낌이 듭니다.

말을 더듬는 증상은 초등학교 때부터 시작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때 주위 친구들이 이해하고 도와주면 저절로 없어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말더듬으로 인해 어린 시절에 왕따를 당하고 트라우마로 남으면 대인관계를 할 때마다 불안과 공포가 생기고 불안과 공포는 말더듬 증상을 악화시키고 성인기까지 없어지지 않고 유지시키는 구실을 하게 됩니다.

동진씨는 직장 과장과 동료들이 자신의 말더듬을 놀리던 그날, 어린 시절부터 자신을 압도하는 트라우마가 현재로 소환이 되었습니다. 자신이 어린 시절 왕따를 당하며 느꼈던 무력감, 공포감을 다시 느끼면서 자존심이 바닥으로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과거의 아픈 기억 속으로 마치 늪처럼 빠져들어갔습니다. 과장이나 동료들에 대한 분노에서 과거에 자신을 놀린 친구들에 대한 분노감으로 확산되었습니다. 결국은 그때 무기력했던 자신에 대한 불만과 분노가 생각나면서 자신을 공격하게 되었습니다. 밤에 자려고 하면 어린 시절의 장면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각이 나 한숨도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우울증이 시작되었고 더 이상 직장을 다닐 수도 없었고 그 사람들을 다시 볼 엄두도 나지 않았습니다.

언어치료와 주변 도움 있으면


동진씨는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우울증을 치료하며 동시에 언어치료를 받았습니다. 언어치료를 꾸준히 받으면서 단어의 반복이 줄어들고 조금씩 구음이 편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말더듬증 치료에는 다른 사람들의 반응에 무감각해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말더듬이 심하게 발생하는 상황이나 문장을 파악하고 반복 연습을 해 익숙하게 만드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말더듬은 장애가 아니고 사실 대화를 하는 데는 문제가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개인의 치료에 대한 노력도 필요하지만 다른 사람이 말더듬이 있을 때 이를 지적하지 말고 편안하게 들어주는 사회적 인식과 태도가 중요합니다. 학교에서도 말더듬는 학생들이 ‘왕따’가 되지 않고 친구들과 편하게 어울릴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사회와 학교가 노력한다면 저절로 없어질 수도 있었던 말더듬이 평생의 상처로 남아 우울증까지 일으키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매우 예민한 사람들을 위한 책>을 썼습니다. 자세한 것은 전문의와의 상담과 진료가 필요하며, 이 글로 쉽게 자가 진단을 하거나 의학적 판단을 하지 않도록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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