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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미국?러시아? 이기는 편이 우리편"…복잡해진 베트남 신냉전 셈법 [신짜오 베트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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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15일(현지시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개막한 상트페테르부르크 국제경제포럼(SPIEF)에 참석해 연설하는 모습이 스크린에 비치고 있다. /사진=상트페테르부르크 [AFP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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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짜오 베트남-199] 최근 러시아에서는 러시아의 다보스포럼(러시아는 이 얘기를 좋아하지 않겠지만)이 열렸죠.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국제경제포럼(SPIEF)이 바로 주인공입니다.

매년 열리는 이 포럼은 수만 명 이상이 참가하는 러시아 최대 포럼으로 유명했습니다. 하지만 올해는 흥행 성적이 예년만 못했죠.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의 군사 행보 때문입니다. 미국과 유럽 대다수의 나라가 포럼을 보이콧하며 포럼은 반쪽짜리 행사로 전락했습니다.

최근 국제사회를 보면 한동안 잊고 지냈던 '냉전'이라는 키워드가 급부상하는 듯합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시절 본격화된 미국과 중국 간 무역 갈등 때까지만 하더라도 이것은 정치의 영역이라기보단 경제의 영역이었습니다.

주변 국가들 역시 미·중 갈등으로 불거질 경제적 파급 효과 분석에 급급할 뿐 이걸 굳이 정치적 담론으로 소화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기저에 미국과 중국 간 패권 다툼이 깔려있었다 하더라도 말이죠.

하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가 불거진 이후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과거 미국과 소련으로 갈려 치열한 갈등을 벌였던 '냉전시대 패러다임'이 스물스물 올라오고 있습니다. 특히 우크라이나 침공이 러시아의 처절한 패배로 돌아갈 것이라던 예측이 빗나가면서 정말로 신냉전 시대가 본격화되는 게 아니냐는 물음표가 수면위로 급부상했습니다.

SPIEF에서 연설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자신감에 가득 찬 모습이었습니다. 아예 공식적으로 미국 비난에 열을 올렸습니다. 푸틴은 "미국은 냉전에서 승리했을 때 자신을 신의 대리인이라고 했지만 이들은 아무 책임은 없고 오직 이익만을 가진 사람들이다. 일방통행으로 세계가 불안정해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또 푸틴은 "서방 국가들이 자신들의 문제를 러시아 탓으로 돌리고 있다"며 "러시아 제재로 피해는 오히려 서방이 보고 있다"고 얘기했죠.

포럼에 참가한 러시아 측 관계자는 이렇게 얘기하기도 했습니다. "유럽이 러시아 자원 사용을 포기하는 건 현재로서는 불가능하다. 러시아 제재 이후 유가가 큰 폭으로 올라 러시아는 오히려 큰돈을 벌었다. 수출은 덜했는데 가격이 올라 이득은 훨씬 크게 봤다. 설사 서방에서 러시아 에너지 사용을 줄이더라도 중국 수출만 늘려도 훨씬 남는 장사다."

실제 전쟁 발발 이후 독일은 치솟는 기름값을 감당하지 못해 다시 석탄발전소를 돌리겠다고 두 손을 들었고, 미국에서는 '유가를 잡지 못하면 바이든 재선은 없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심각한 상황입니다. 이에 반해 러시아는 올라갔던 기준금리가 다시 내려가고, 루블화 가치가 뛰고 증시가 반등하는 등 차별화된 양상을 보이고 있으니 푸틴이 의기양양한 것도 무리가 아닙니다.

이번 포럼은 향후 국제질서가 어떻게 흘러갈지 단초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전 세계는 3개 그룹으로 나뉠 것 같습니다. 미국과 유럽 등 전통의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축으로 한 그룹. 러시아와 중국을 축으로 한 하나의 그룹. 그리고 두 그룹 사이를 떠돌며 애써 중립을 지키려고 하는 다른 하나의 그룹이 될 듯합니다.

이번 포럼에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온라인 연설을 했는데요. 중국은 앞으로도 러시아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반미 선봉대 핵심에 설 것으로 보입니다. 카심조마르트 토카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도 행사에 참가했는데 구소련 일원이라 납득이 가는 측면이 있고요. 또 하나 주목할 만한 인물은 압델 파타 엘시시 이집트 대통령의 참석입니다.

이집트에서 장기 집권 체제를 구축하려는 엘시시 대통령은 포럼에 참가해 "이집트와 러시아 경제 관계가 최근 몇 년간 최고 수준에 올라섰다. 이집트는 러시아 연방과의 확고하고 역사적인 우호 관계를 소중히 여긴다. 이집트와 러시아는 지난 몇 년간 더 많은 경제적 진보를 실현하려는 야심 찬 프로젝트를 진행했다"고 말했습니다.

엘시시 대통령은 2017년 4월에는 미국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지기도 했는데요, 엘시시 대통령이 이번에 이 포럼에 참가했다고 해서 그를 바로 친러시아 인사로 부를 수는 없을 듯합니다. 적당히 가운데서 줄을 타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외에 쿠바, 베네수엘라, 미얀마 등 인사가 포럼에 참석했는데 베트남도 포럼을 통해 러시아와 경제적 협력을 추구하고 있어 관심을 끕니다. 베트남 국영석유가스그룹인 페트로베트남 회장단이 포럼에 참가해 가스프롬을 비롯한 러시아 에너지 공룡과 사업 협력을 논의한 것입니다.

최근 베트남은 중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적극적으로 미국 편에 붙으려는 행보를 보이고 있는데요. 베트남도 최근 에너지 가격 인상으로 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입고 있습니다. 국가 정상이 포럼에 참석하지는 않았지만, 국영기업 수장을 포럼에 보내 러시아와 에너지 협력의 끈은 가지고 가려고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입니다. 지금 베트남의 지도자 중에는 구소련 시절 모스크바 등에서 공부한 유학파 출신이 많은데요, 이 같은 점도 베트남이 러시아와의 관계를 포기할 수 없는 원인으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홍장원 기자(하노이드리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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