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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싸이월드 "고인 된 회원 사진·영상 상속인에 전달"…디지털유산 논란 재점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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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월드, 사진 등 디지털유산 상속 규정 마련
누리꾼들, "잊힐 권리" VS "기억될 권리" 의견 맞서
구글 등은 디지털유산 상속자 '미리 지정'
전문가 "디지털유산 상속자 지정 제도 필요"
한국일보

싸이월드 운영사 싸이월드제트는 최근 디지털유산 상속 관련 규정을 만들고, '디지털 상속권 보호 서비스'를 도입했다. 싸이월드제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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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 싸이월드 미니홈페이지(미니홈피)가 2019년 서비스 종료 3년 만에 '부활'했다. 3,200만 명에 이르는 회원들의 사진과 영상이 복구되면서 그 사이 세상을 떠난 고인들의 사진과 영상도 복구됐다. 여기에는 톱스타 A씨의 미니홈피도 포함됐다. A씨 유족은 싸이월드 측에 게시물 관련 접근권을 요구했지만, 마땅한 법적 근거와 규정이 없어 이뤄지진 못했다.

#. 2010년 3월, 천안함 피격 사건 당시 천안함 장병들의 싸이월드 미니홈피는 무사귀환을 기원하는 사람들의 '파도타기(홈페이지 연속 방문)' 행렬이 이어졌다. 이에 천안함 유족들은 싸이월드 게시물과 이메일에 대한 접근권을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진 않았다.

'토종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전성 시대를 열었던 싸이월드가 세상을 떠난 고인의 사진과 영상 등 저작권을 유족에게 넘기는 규정을 만들면서 '디지털유산 상속' 논의에 불이 붙었다.

싸이월드 운영사 싸이월드제트는 고인이 된 회원들의 사진과 동영상, 다이어리 자료 등의 저작권을 유족에게 이관하는 '디지털 상속권 보호 서비스'를 시작한다고 24일 밝혔다. 구체적으로 ①고인이 된 회원의 유족 등 상속인②이용자의 사망사실과 상속관계를 증명할 경우 ③공개설정된 사진과 영상 등 게시물의 저작권을 넘겨주는 내용이다. 디지털유산을 보호하거나 상속하기 위한 구체적 법 규정은 없지만, 고인을 추모하기 위한 유족 등의 디지털유산 상속 요구가 계속되자 자체 규정을 만들었다. 싸이월드 측은 우선 고인의 '디지털자산 보호'에 초점을 두고 있는 개인정보보호법 등과 충돌하지 않는 수준의 제한된 정책을 시행할 계획이다. 하지만 디지털유산 상속에 의한 개인정보 침해 우려와 디지털유산 상속의 확대를 요구하는 소비자 입장이 충돌하는 만큼 사회적 논쟁은 뜨거워질 전망이다.

네이버·싸이월드 빼곤 기업들 디지털유산 관리 무관심

한국일보

싸이월드와 네이버 등 소수의 IT기업들은 자체 규정을 통해 고인이 된 사용자의 게시물 일부를 유족 등 상속자에게 이관하고 있다. 다만 현행법은 '개인정보 보호'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개인정보 침해 우려도 남아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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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기술(IT) 업계에 따르면 '디지털유산'은 한 개인이 죽기 전 남긴 디지털 흔적을 뜻한다. 통상 SNS·블로그·미니홈피 등 온라인 공간에 남긴 사진과 영상, 일기장, 댓글 등이 디지털 유산으로 분류된다. 다만 국내에선 디지털유산이 개념과 상속에 대한 법적 근거가 없는 상태로, 대부분의 게시물을 '개인정보' 차원에서 다루고 있다. 이런 이유로 싸이월드와 네이버 등 몇몇 IT 기업들은 자체 규정을 통해 디지털유산을 관리하고 있다. 별도의 관리 규정이 없는 대부분 회사들은 유족이 원하면 사망한 회원의 계정 폐쇄 요구 정도만 가능하다.

'디지털 상속권 보호 서비스'를 도입한 싸이월드는 최근 소비자 이용 약관 13조를 새로 만들었다. 약관은 '회원의 사망 시 회원이 서비스 내에 게시한 게시글의 저작권은 별도의 절차 없이 그 상속인에게 상속된다'고 규정했다. 상속인이 이용자의 사망사실과 상속관계를 증명하면 별도의 허가를 얻거나 이용자의 생전 동의가 없어도 저작권이 넘어간다. 싸이월드는 비공개 게시물과 아이디, 비밀번호 등은 공개 대상에서 제외할 계획이지만 디지털유산을 규정하는 구체적 근거가 없어 해석에 따라 해당 내용도 상속될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 나온다. 싸이월드 측은 "디지털상속을 위한 약관을 우선 만들어 놓은 것"이라며 "게시물 정보를 제공하되 미니홈피를 (모두) 열어주는 것까진 아닐 것 같다"고 설명했다.

네이버는 조금 더 구체적인 디지털유산 정책을 펼치고 있다. 2014년 관련 정책을 시작한 네이버는 디지털유산의 종류를 ①아이디·비밀번호 등 '계정정보' ②이메일 등 '이용정보' ③카페와 블로그 등에 작성한 글·사진·영상 등 '공개 정보'로 나누고 있다.

네이버는 유족 등이 요청하면 작성자가 공개한 블로그 글 등 정보만 따로 자료 백업을 돕고 있다. 네이버 측은 "살아 있을 때 이용자 프라이버시 보호를 위해 비공개 이용 정보와 아이디 및 비밀번호와 같은 '계정 정보'는 제공하지 않는다"면서 "고인은 원하지 않았는데 비공개 정보를 유가족에게 제공할 경우 비밀누설죄 위반에 해당될 수 있다"고 말했다. 네이버의 디지털유산 정책 이용 횟수는 1년에 평균 1, 2회 정도에 그친다.

네이버와 싸이월드 모두 이용자의 사망 사실과 유족 등 상속 관계를 자체적으로 판단하긴 어려운 만큼, 디지털유산 상속자가 사용자의 사망 사실과 상속 관계 등을 직접 증명해야 한다.

김승주 교수 "디지털유산 상속자 지정 꼭 필요"

한국일보

전문가들은 디지털유산 상속에 따른 개인정보 침해 문제 등을 예방하기 위해 디지털유산 상속자를 사전 지정하는 제도 도입을 요구하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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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유산 상속에 대한 소비자들 의견은 엇갈리고 있다. '기억될 권리'와 '잊힐 권리'가 첨예하게 맞붙은 것.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 등 SNS를 이용하는 이모(30)씨는 "비공개 설정한 게시물이 공개되는 것은 꺼려지지만 공개 설정된 게시물로 제한된다면 가족에게 사진과 영상을 남기고 싶다"면서 "내 흔적이 모두 없어지는 것보다 남아 있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반면 또 다른 이모(34)씨는 "SNS를 10년 넘게 이용하면서 공개 게시물이라도 어떤 것들이 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가족이나 친구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은 것들이 있다"며 "내가 동의하지 않는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게시물의 관리를 맡기는 것보다 삭제되는 게 낫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디지털유산 상속자를 사전에 지정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승주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현재와 같은 디지털유산 상속은 개인정보 보호 문제가 분명히 생길 수 있다"면서 "해외 기업들처럼 생전에 내 계정에 접근할 수 있는 사람을 지정하는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디지털유산 상속 관련 별도의 법을 만들거나 개정할 수는 있다"면서도 "현행법에서도 기업들이 디지털유산 상속자를 지정하면 원하지 않는 사람에게 디지털유산이 상속되는 문제는 해결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현재까지 싸이월드와 네이버는 디지털유산의 사전 상속인을 지정하는 절차는 없다.

반면 구글과 애플 등 디지털유산 정책을 선제적으로 실시한 해외기업들은 이용자가 생전에 지정한 디지털유산 상속자에 한해 게시물 접근 권한을 주고 있다. ①2013년 '비활성 계정 관리' 기능을 도입한 구글은 계정 비활성화 3개월 후부터 사전에 사용자가 지정한 사람이 해당 계정을 관리할 수 있게 했다. ②메타(옛 페이스북) 역시 2015년부터 '유산 접근' 기능을 도입해 계정 주인이 사망한 경우, SNS 계정 관리권을 사전에 설정할 수 있도록 했다. ③애플은 지난해 12월 '디지털 유산' 기능을 만들었는데, 사용자가 사망할 경우 사용자의 아이폰 계정에 접속해 사진과 연락처 등을 볼 수 있는 전화번호를 미리 지정할 수 있도록 했다.

송주용 기자 juyo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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