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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10대 때 호기심에 접한 마약, 60년 버리는 것… 경각심 가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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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남규 서울청 마약수사대 팀장 인터뷰]
21년 마약수사 전담 우수수사팀 전국 1위
"단속보다 공급 틀어막는 것이 훨씬 중요 "
"자긍심 하나로 버텨…정책 지원 절실하다"
한국일보

박남규 서울경찰청 마약범죄수사대 경감이 24일 마포구 사무실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하며 마약범죄의 심각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고영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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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가 마약을 접하면 남은 인생 20년을 버리는 거지만, 10대 때 마약을 하면 60년을 낭비합니다. 그런 아이들이 늘고 있어 진짜 경각심을 가져야 해요.”

26일은 ‘세계 마약퇴치의 날’. 베테랑 수사관의 눈에도 국내 마약류 확산 추세가 심상치 않나 보다. 10대는 물론, 우울증이나 공황장애를 앓는 평범한 회사원, 주부 등 마약 사범은 이제 나이와 계층을 가리지 않는다. 마약이 한국사회에 뿌리내렸다는 게 박남규(51) 경감의 진단이다.

실제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확산, 비트코인 등 대체결제 수단의 등장, 텔레그램을 통한 비대면 거래 활성화 등으로 마약은 점차 일상으로 스며들고 있다. 대검찰청 마약류 월간동향 자료를 보면, 올해 4월까지 단속된 마약사범은 1,230명. 전년 동기 대비 5.3% 늘었다. 2020년에는 20대 마약사범이 30대와 40대를 처음 앞지르기도 했다. 10대 적발 규모도 큰 폭으로 증가했다.

박 경감은 서울경찰청 마약범죄수사대 2계 1팀장을 맡고 있다. 18년 4개월을 수사에 몸담았고, 마약범죄 수사를 한 지도 벌써 5년 가까이 됐다. 24일 만난 그는 마약 근절을 위해 공급 차단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마약 범죄의 특성상 투약자보다 판매자, 판매자보다 총책을 검거하는 것이 확산을 막는 데 효과적입니다. 수사기관에 붙잡히는 투약자는 빙산의 일각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박 경감이 이끄는 팀은 지난해 3월 인터폴과 공조해 태국에서 21만 명이 동시 투약할 수 있는 필로폰 약 6.3㎏(210억 원 상당)을 국내로 들여와 유통한 밀수입 판매총책을 현지에서 검거했다. 이른바 동남아시아 벨트 ‘한국인 마약왕 5인방’을 포함해 20명을 붙잡고, 8명을 구속했다. 필로폰 4.3㎏도 압수했다. 덕분에 지난해 하반기 ‘마약수사 전담 우수수사팀’ 전국 1위에 오르기도 했다. 2018년 1월부터 그가 검거한 마약류 유통사범만 667명, 이 중 136명이 구속됐다.

성과를 내곤 있지만, 마약 수사는 어려운 부분이 더 많다. 국내 유통 마약 대부분을 동남아에서 들여오는데, 공항ㆍ항만 단속 권한은 관세청에 있다. 공조를 한다 해도 말처럼 원활하지 않다. 마약류 지정은 식품의약품안전처, 감정은 행정안전부 소속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각각 담당한다. 미국 마약단속국(DEA)처럼 일사불란한 대응을 기대하기 어려운 이유다.

가장 큰 장벽은 마약수사의 특수성을 배려하지 않는 문화다. 마약거래는 거의 야간에, 또 은밀히 이뤄져 잠복근무가 부지기수다. 당연히 외부활동은 많아질 수밖에 없고 위장거래 등 다양한 수사 지원도 필요하지만, 수당이나 초과근무는 다른 부서와 별반 차이가 나지 않는다. 잠복 차량을 렌트할 비용도 올해 처음 지급되기 시작했다. 마약거래가 디지털화하면서 증거 수집은 힘들어지는데, 제도적 뒷받침은 제자리에 머물고 있는 셈이다. 더 이상 ‘나쁜 놈 잡는다’는 자부심 하나로 버틸 수 없는 직원들은 조금씩 부서를 떠나고 있다.

박 경감은 “마약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사회 전체가 병들게 된다”고 단언했다. “마약수사대 직원들이 힘든 일을 하는 유일한 버팀목은 사회의 안녕을 지킨다는 자긍심입니다. 현장을 누비는 마약 수사관들이 긍지를 잃지 않도록 정책적 지원이 있었으면 합니다.”

김도형 기자 namu@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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