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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이슈 박항서의 베트남

'축잘알 박항서'는 이렇게 만들어졌다 [국영호의 스포츠人사이드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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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항서 감독은 경기장에선 지나치게 다혈질이다. 삿대질하거나 미간을 찌푸리거나 팔짱을 끼거나 인상을 쓰거나 하는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다. 경기에 관해선 누구에게도 지기 싫어하는 성격이라서 그렇다. 선수 시절에는 물불 안 가리고 방전될 때까지 뛰어 ‘빠떼리’(배터리)라 불렸고, 지도자가 되어서는 이런 기질을 통해 ‘결과’를 만들어냈다. 예전에 언제는 스스로를 “비주류”라고도 했다. 그래서 주류에 맞서는 도전 및 저항 의식이 강한 것 같은데, 그렇게 생긴 승부욕은 무서운 집념으로 이어졌고, 마침내 팀을 하나로 뭉치는 응집력으로 표출시켰다. 그게 베트남에 가서 꽃을 피워 '쌀딩크'가 된 것이라고 본다.

박 감독은 경기장 밖에서는 천상 ‘아저씨’다. 경기가 끝나고 베트남 선수들에게 살갑게 진심으로 대하는 ‘미담’이 나오는 건 우연이 아니다. 2002 한일월드컵 때도 선수들이 가장 잘 따르던 코치라고도 하지 않았나. K리그 감독 시절인 10여년 전부터 지켜봐온 박 감독은 이런 진솔하고 소탈한 모습을 갖췄다.

최근, 지난해 7월 이후 거의 1년 만에 귀국한 박 감독은 어딘가 후련한 모습이었다. 지난 달 베트남 23세 이하 대표팀을 마지막으로 이끌고 동남아시안(SEA)게임에서 2회 연속 우승을 하고 나서 지휘봉을 같은 한국인인 공오균 감독에게 넘겨줘 마음 한켠이 여유로워진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본다.

그런 박 감독에게 평소와는 다르게 실없게 보일 수 있지만, 오랜만에 만나 농반진반으로 가벼운 질문을 여러 개 던졌다. 베트남에서 모처럼 국내로 ‘한 달 휴가’ 나온 박 감독도 은근히 즐기는 모습이었다. 그래서 ‘밑밥’부터 하나씩 던져봤다.

-‘축잘알’인가요, ‘축알못’인가요?
“그게 뭔데?”

-축잘알은 ‘축구 잘 알고 있는 사람’이고, 축알못은 ‘축구 알지 못하는 사람’이죠.
“그럼 축잘알! 내가 축구 감독이니 축잘알이 당연하지.”

-손흥민 아버지는 아들이 월드클래스가 아니라고 해서 ‘축알못’이라고 하는데, 손흥민이 ‘월클’이 맞다고 보시나요?
-“톱 월드클래스! 손웅정 씨가 말하는 건 아버지로서 하는 얘기고. 내가 전문가인 감독으로서 얘기하면, 최고의 정상급 리그에서 득점왕이 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앞으로 한국축구 선수 중에 5년, 10년, 100년 안에 (프리미어리그 득점왕) 나온다는 보장이 있습니까. 그러니 손흥민은 월드클래스가 감독으로서는 맞다고 생각합니다.”

-프리미어리그(PL)에서 역대 최고의 한국 선수는 누구냐는 논쟁도 있습니다. 손흥민과 박지성, 누가 최고라고 보시나요?
“무승부! (Q.둘 다 똑같다?) 똑같다! (Q.팬들을 의식하신 건가요?) 내가 우리 자랑스러운 두 선수, 보배를 감히 평가할 수 있겠습니까. 내가 선배지만 나보다 훌륭한 후배들인데 내가 어떻게 평가하겠습니까.”

-그럼, 베트남 대표팀에 한 명을 영입할 수 있다면 메시와 호날두 중에 누구를 데려오겠습니까?
“메시! 내가 메시 팬이기 때문에. (Q.왜 메시의 팬인가요?) 그 선수의 능력이 뛰어나니까. 기술이 완벽한 선수이기 때문에. (Q.메시가 베트남 축구에 더 맞을까요?) 그렇다고 봐야죠. 베트남 선수들과 신체조건도 비슷하고 스타일을 보면 호날두보다는 맞지 않나 생각해요.”

-올해 카타르월드컵에서 한국이 결승에 진출할 수 있다고 하셨는데, 맞나요?
“바람인데, 결승에 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우리가 4강(2002년 대회)에 갔기 때문에 이제 4강의 벽을 넘을 수 있어야 한다고 보는데, 지금 우리 선수들이 경쟁력을 갖췄다고 보기에 그런 말을 한 것입니다.”

실없는 얘기는 여기까지였고, 베트남 축구대표팀 생활에 대한 많은 얘기를 나눴다. 지난 달 SEA게임 2회 연속 우승을 끝으로 23세 이하 대표팀 지휘봉을 공오균 감독에게 넘긴 속사정도 물었다.

“올해 10월 14일이 되면 베트남에서 5년째 생활합니다. 작년에 2년 계약이 끝나고 ‘1년 추가 계약’할 때 베트남축구협회에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내가 두 팀을 4년간 이끌다 보니 힘들고 선택과 집중이 안된다. 23세든 대표팀이든 한군데만 집중할 수 있게 해달라’고요. 이걸 베트남축구협회가 승낙을 했는데, 다만, 베트남에서 올해 5월에 SEA게임이 있으니 그 대회까지만 맡아달라고 했고, 서로 합의가 된 것이죠. 4년을 두 팀을 맡다보니까 힘도 들지만 또 중복되는 대회가 있고, 한국처럼 전임 지도자가 아니라 코치들도 데려와서 합류시켜야 하기 때문에 정보도 어두워집니다. 그래서 대표팀을 이원화시키는 게 좋겠다고 해서 재계약할 때 그 부분을 제시해서 수용이 된 것이죠.”

-U-23 대표팀 후임인 공오균 감독은 직접 추천한 건가요?
“베트남축구협회가 여러 추천을 받아서 감독선발위원회를 거쳐서 (공 감독이) 선발된 것으로 알아요. 협회가 물어보기에 훌륭한 감독이라고는 했는데, 협회에서 충분히 검토했겠죠. 후임이 꼭 한국인이어야 한다는 전제는 있었어요. 제가 국가대표팀을 맡으니까 그 아래 23세 이하 대표팀도 한국 감독이 와야 서로 융합이 될 수 있다고 베트남축구협회가 얘기해서 후임이 한국인이어야 한다는데에는 논쟁이 없었던 것으로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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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는 베트남이 사상 처음 진출해 치른 (카타르) 월드컵 최종예선으로 이어졌다. 결과는 1승1무8패로 B조 최하위 마무리였다. 박 감독이 베트남을 지난 5년간 23세 이하 대표팀을 이끌고는 아시아 챔피언십 준우승, 아시안게임 4강 진출, SEA게임 2연패, 또한 국가대표팀을 이끌고는 스즈키컵 우승 등 ‘최초’이자 ‘최고’ 성과를 냈지만, 아시아 최고 팀들이 나서는 월드컵 최종예선에서는 어느 정도 부진이 예상됐다. 그래도 그동안 눈부신 성과로 인해 ‘까방권’(까임방지권)이 있을 줄 알았지만, 당장 성적이 좋지 못하면 어느 나라나 비판과 압력이 가해지는 것 같다. 박 감독도 다르지 않았다는 얘기다.

“한 6연패, 7연패 하고 나니까 (현지 분위기가) 장난이 아니더라고요. 여러 가지 심각한 문제, 경질 위기가 대두되지는 않았지만, 중국에 3대 1로 이기니까 조용해지고, 그게 뭐 감독의 삶인 것 같습니다. 어디를 가도 (비판하는 건) 미디어의 생리인 것 같아요.”

-베트남에서 이룰 수 있는 모든 걸 이뤘다고 보는데, 남은 목표가 있다면요?
“올해 남은 목표는 스즈키컵이라고 최근에 스폰서가 바뀐다는 얘기가 들리는데(미쓰비시 일렉트릭컵), 그 대회가 카타르 월드컵이 끝나고 12월21일쯤에 열릴 것 같습니다. 스즈키컵에서는 지지난 대회 우승을 했었지만 지난 대회 때는 태국한테 처음 져서 결승에 진출하지 못했었습니다. 그게 동남아 팀에 유일하게 졌던 건데. 올해는 결승 진출을 목표로 해서 2022년 마지막 대회를 장식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대회를 마치면 내년 초에는 재계약 협상을 해야 하죠?
“지금은 협상 단계는 아니고, 회사 대표(이동준 DJ매니지먼트 대표)가 베트남축구협회와 잘 협상을 하겠죠. 만남이 있으면 이별도 시기를 잘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언젠가는 제가 장담할 수는 없지만, 아름다운 이별도 하겠죠? 어느 시점이 될지 모르겠지만 그런 부분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이별 얘기라 오해를 살 것 같은데, 어찌됐든 이별 시점은요?
“시기는 그게 좀 어려운 거죠. 감독이라는 역할이 항상 결과물에 대해서 평가받는 것이기 때문에 결과를 못냈을 때는 책임을 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높음이 있으면 낮음도 있는 것이죠. 중요한 것은 나도, 우리 대표팀 감독도 정말로 필요한 것인가, 변화가 필요한 것인가. 변화가 필요하다면 서로 휴식기를 맞는 게 맞습니다. 그래서 그런 시점을 고민을 해야 하는 것이죠. 내가 그 자리(대표팀)에 있는 것이 낫고 도움이 되면 남아야 하는 것이고, 나나 우리 대표팀에서 새로운 변화가 필요하다고 하면 물러나는 것이 당연하고, 새로운 분이 와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잘 생각하고 그 시기를 봐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결국 올해 연말 열릴 대회의 내용과 결과에 따라 ‘고민의 결과’가 나올 것 같다.

-대단한 성과를 냈지만 앞으로 채워나갈 부분이 있다면요?
“베트남 대표팀이 큰폭은 아니지만 소폭이라도 세대교체가 이뤄져야하는 시점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혹시 제가 관두더라도 이게 순환이 잘 되도록 세대교체가 자연스럽게 이뤄져야 하지 않나 싶고, 이런 부분에 집중하고 싶습니다.”

박 감독은 사실 과거에도 재계약 시점이 오면 ‘만남&이별’ 얘기를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자리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마음가짐이다. 내년이면 한국 나이로 65세가 되니 ‘많은 고민’을 하게 될 것이다. 한 사이클을 더 할지, 다른 역할로 기여를 할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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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감독은 이번에 올해 100세를 맞은 모친 백순정 여사의 생일 축하를 겸해 귀국했다. 본래 9월이지만, 베트남 일정 때문에 형제들과 이번 한 달 휴가 기간 축하연을 열기로 했다고 한다. 이런 사정을 들은 응우옌 쑤언 푹 베트남 주석은 박항서 감독에게 축하 액자를 선물해 화제가 됐다. 예전에 박 감독으로부터 주석과 국무총리, 국회의장 등과 정기모임이 있다고 들었는데, 정말로 사이가 돈독한 것 같다. 박 감독을 많이 아끼고 고마워한다는 게 맞지 않을까 싶다.

“베트남 주석실에 방문했을 때 주석님께서 우리 어머니 100세 생신이란 걸 아시고 성함과 만수무강 문구를 넣어서 귀중한 선물을 주셨습니다. 장수 숫자를 넣어서 액자를 주셨죠.”

-모친께는 효자신가요?
“어머님이 몇 년 전부터 치매를 앓으셔서 저를 잘 기억하지 못해요, 마음이 아프고 그렇습니다.”

-아들로서는 스스로에게 몇 점 줄 수 있을까요?
“제가 4남1녀 중 막내인데, 어머니한테 애를 먹이거나 문제아는 아니었어요. 그래도 항상 자식은 부모님 마음에 다 들 수는 없잖아요. 저는 뭐 한 70점!”

박 감독은 베트남 감독으로서는 스스로 80점을 주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선수 시절이나 감독이 되어서나 방전될 때까지 열정적으로, 그리고 인간적으로 살아왔기에 100점을 줘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다. 그의 삶의 태도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은 물론, 동년배에게나 많은 시사점을 던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내가 뭐 대단한 사람이라고”는 하지만 적어도 축구에서만큼은 올곧은 모습을 보여온 그가 지금껏 그래왔듯 축구를 통해 앞으로도 한국과 베트남 사회에 긍정 에너지를 발산해주길 기대한다.

[국영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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