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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땅도 아닌데 길 막았다…국민 통행권 막은 '헌법 정신' [뉴스원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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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호 내셔널팀장의 픽: “공관 폐쇄”로 불똥 튄 등산로 폐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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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삼청동 헌법재판소장 공관 모습. 대지 2810㎡(850평), 임야 8522㎡(2578평)의 넓은 부지 위에 자리 잡고 있다. 이수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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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 산이 아닌가 보다…”

나폴레옹이 1800년 5월 대군을 이끌고 알프스산맥을 넘던 중 한 얘기랍니다. 갑작스런 난관이나 황당한 상황을 일컫는 이른바 ‘아재 개그’ 입니다. 당시 나폴레옹은 다시 길을 내려가 다른 봉우리에 올라서서 또다시 탄식을 합니다. “아! 아까 그 산이었나 보다…”

220여년이 흐른 지난 19일. 서울 북한산 등산로에서도 유사한 말이 쏟아졌답니다. 가족과 함께 청와대 전망대 쪽으로 향하던 등산객들의 당혹스런 반응입니다. 이들은 길을 막아선 바리케이드를 본 후 난감한 표정으로 말합니다. “아! 이 길이 아니었나 보다…”







“소음 등 피해”…등산로 폐쇄 요청한 헌재



나폴레옹과 달리 이날 등산객들은 길을 잘못 든 게 아니었답니다. 청와대 개방과 함께 열렸던 등산로가 헌법재판소장 공관 측의 요청으로 다시 폐쇄된 겁니다. 국내 의전 서열 4위인 헌재소장의 공관은 닫힌 등산로 안쪽에 있습니다. 대지 2810㎡(850평), 임야 8522㎡(2578평), 건축 연면적은 959㎡(290평) 규모랍니다.

오랜 관습의 장막에 가려졌던 헌재소장 공관 앞 등산로는 지난달 10일 그 존재가 알려집니다. 이날 개방한 청와대와 함께 공관 인근의 길도 열린 겁니다. 일반에 공개된 길은 주말이면 3000명의 등산객이 몰릴 만큼 인기를 끕니다. 블로그를 비롯해 온라인상에는 해당 코스를 소개하는 글과 사진도 쏟아졌답니다.



다시 가려진 구중궁궐 길…등산객·상인 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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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소장 공관에 막힌 청와대 등산로.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오랜 기간 구중궁궐(九重宮闕)에 가려졌던 길은 얼마 못 가 다시 닫힙니다. 등산로 개방에 따른 소음 피해 등을 호소한 헌재 측 요청에 의해 지난 2일 길이 폐쇄된 겁니다. 이후 이곳을 찾은 시민들은 400~500m 떨어진 삼청안내소나 춘추관 입구까지 돌아서 산행을 하고 있습니다.

등산객과 인근 상인들은 불만이 큽니다. 우선 가족을 다독여 북한산을 찾은 가장들은 이른바 ‘모냥’ 빠지는 경험을 합니다. “아빠는 길도 모르느냐”는 힐난에 체면을 구기는 겁니다. 인근의 식당·카페도 등산로 개방 후에 반짝했던 특수를 떠올리며 빈 테이블만 노려봅니다.



국민들 분노…닫힌 등산로 열어라



이 소식이 알려지자 국민이 분노합니다. 온라인을 중심으로 “닫힌 등산로를 열어라”는 비난이 쏟아진 겁니다. 서울이 아닌 타지역 네티즌조차 비판 대열에 가세합니다. “청와대까지 일반에 개방된 마당에 왠 공무원 관사냐”는 반응입니다. “이참에 특권적인 후진국형 공관 관례 자체를 매각하거나 없애야 한다”는 말까지 나옵니다. 헌재소장 공관은 조선시대 경복궁의 별궁이었던 태화궁(太和宮)이 있던 자리랍니다.

사실 이번 논란엔 청와대 개방이 기름을 끼얹은 효과도 있습니다. 청와대 개방 이후 옛 청와대 고위 공직자들이 사용하던 공관은 모두 문을 닫아섭니다. 이번에 폐쇄된 등산로 주변에서 운용 중인 관사 또한 헌재소장 공관이 유일합니다. 앞서 6·1 지방선거를 통해 당선된 시장·도지사들도 속속 관사 폐지를 약속한 바 있습니다.



‘보행자 통행’ 등 공공공지…땅주인도 헌재 아닌 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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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 오후 폐쇄된 금융연수원 앞 등산로 입구. '출입금지' 표시와 함께 '청와대~북악산 탐방안내소 이전' 안내문이 붙어있다. 이수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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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 측 요청에 의해 등산로가 다시 닫힌 지 3주째. 주말을 앞둔 국민들은 더욱 황당한 소식을 접합니다. 길이 막힌 등산로 땅주인이 헌재 측이 아닌, 종로구청이라는 겁니다. “자기들 땅도 아닌데 왜 길을 막느냐”는 너무도 당연한 말이 쏟아진 배경입니다.

막힌 등산로 일대가 토지이용계획 상 ‘공공공지(公共空地)’라는 점도 놀랍습니다. 공공공지란 보행자 통행과 휴식공간 등을 확보하기 위한 시설공간을 말합니다. 국민 일상생활의 쾌적성·안정성을 위한 공간을 사실상 법적인 근거 없이 폐쇄한 셈입니다. “국민의 기본권인 통행권은 물론이고 국민의 재산권까지 침해한 격”이라는 비판이 나옵니다.



권성동, “북촌도 폐쇄해야…과잉예우”



상황이 이쯤되자 정치권도 목소리를 냅니다. “헌재는 소장을 과잉예우하지 말고 오늘 당장, 이번 주말부터라도 폐쇄했던 도로를 개방하기 바란다.”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가 24일 국회에서 한 말입니다. 그는 “지난 주말 헌재 소장 공관 쪽으로 해서 한번 걸어봤는데 정말 막혀있더라”며 “그런 논리라면 북촌의 관광객이 골목골목 얼마나 다니느냐. 그 골목을 다 폐쇄해야 한다”라고 말합니다.

“(공관이) 도로에서 좀 떨어져서 안쪽으로 굉장히 부지가 크다”라는 말에도 힘이 실립니다. “사람들이 통행한다고 해서 무슨 소음 피해가 클 것 같지도 않다”는 취지의 말입니다. 사실 등산로가 끊긴 곳은 헌재소장 공관에서 100여m 떨어진 삼청로 초입부터랍니다.



“길 폐쇄는 위헌적”…與, “당장 개방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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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와 문화재청 소유의 땅이 아닌데 폐쇄된 삼청동 등산로.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급기야 “등산로 폐쇄는 위헌적”이라는 지적도 나옵니다. 헌법 제10조와 제35조에 명시된 행복추구권과 건강권을 침해한다는 이유에서입니다. 헌법재판소가 헌법과 직결된 쟁점을 전담하는 기관임을 정면으로 겨냥한 발언입니다.

국민의힘 이용호 의원(전북 남원시·임실·순창군)은 “헌재소장의 사생활 보호, 소음으로부터의 보호도 물론 존중받아야 하지만 국민의 행복추구권, 쾌적, 건강을 생각해서 헌재 측에 폐쇄된 도로 개방을 요청드린다”고 말했습니다. “청와대 개방 후 북한산 등산로를 많은 시민이 이용하고 있는데 여기(헌재소장 공관) 때문에 옥에 티가 되고 있다”는 말과 함께 입니다.



“헌재소장 공관, 북한산 등산로 옥의 티”



북한산 등산로 폐쇄를 다룬 기사마다 수백, 수천개의 댓글이 달리고 있습니다. 헌재소장 공관과 관련된 기사인 탓인지 헌법과 직결된 문구들에 유난히 눈길이 쏠립니다. 누구나 잘 알고 있는 대한민국 헌법 제1조에 관한 댓글입니다. ‘모든 사회적 폐습과 불의를 타파하며…’라는 헌법전문과도 궤를 같이하는 내용입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헌법 1조1항)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헌법 1조2항)”





















최경호 기자 choi.kyeong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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