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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3 (화)

[사설] ‘월북’ 단 한 번 나온다는 北 통신, 이게 ‘증거’라고 국민 버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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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북한군에 피살된 해양수산부 공무원의 유족들이 17일 오전 서울 서초구 변호사회관에서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과 관련, 향후 법적 대응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2.6.17/뉴스1 ⓒ News1 구윤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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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9월 서해에서 해양수산부 공무원 이대준씨가 북한군에 피살·소각된 사건과 관련해 국민의힘이 군의 특수정보(SI) 등을 확인한 결과 문재인 대통령은 이씨의 실종 보고를 받고도 구조 지시를 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정권 차원에서 이씨에 대해 섣부른 ‘월북 몰이’를 했다는 단서를 확보했다고 밝혔다. 남북 간 군사통신선이 막혀있어 대처가 어려웠다는 당시 문 대통령의 발언도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고 한다.

국민의힘 진상조사팀은 사건 당시 정황을 담은 북한군 통신 감청 정보를 받아 검토했다고 한다. 북한군 간 대화 녹취록에서 ‘월북’이란 단어는 한 문장에 한 번 등장하는데 그조차 바닷물 속의 이씨를 심문하기 시작해 2시간여가 지나 나온 것이라고 한다. 조사팀 소속 의원은 “상급 부대에서 ‘월북했느냐’고 하니까 현장의 병사가 ‘월북했다고 합니다’라고 한 것이 전부”라고 했다. 이것으로 월북의 진실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 진짜 월북 의도가 있었는지, 바다에 빠져 표류하던 이씨가 맞닥뜨린 북한군을 향해 살려고 ‘월북’ 이야기를 꺼낸 것인지 불확실하다.

이렇게 불확실한 상황에서 문 정권은 섣불리 이씨를 월북으로 몰아갔다. 이것이 어떻게 정부가 국민을 버리는 증거가 될 수 있나. 이씨 주변 사람들이 모두 ‘그럴 리 없다’고 하는데도 ‘도박 빚 등에 몰려 월북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발표했다. 청와대가 해경과 군에 ‘월북’으로 하라고 압박한 정황도 드러나고 있다.

조사팀은 문 전 대통령이 북한군에 억류된 이씨 상황을 서면으로 보고받고도 국방부에 아무런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고 했다. 이씨는 문 전 대통령에게 첫 보고가 이뤄진 뒤에도 3시간 생존해 있었다. 문 전 대통령이 발 빠르게 북한과의 소통을 지시했다면 이씨는 살아 돌아올 수 있었을 것이다. 문 전 대통령은 이씨 사망 후 6일 뒤 열린 청와대 회의에서 “이번 사건에서 가장 아쉽게 부각되는 것은 남북 간 군사통신선이 막혀있는 현실”이라며 통신선 두절을 핑계 삼았다. 하지만 조사팀은 이 또한 사실이 아니라고 하고 있다. 유엔사가 관리하는 판문점 통신 채널이 살아있었기 때문에 문 전 대통령 지시만 있었다면 군이 북한에 통지문을 보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미 해경과 국방부가 이씨에 대해 “월북 의도를 인정할 만한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다”며 유족과 국민에게 사과했다. 이들이 자신들만의 판단으로 섣부른 월북 몰이를 했을 리는 없다. 당시 남북 이벤트에 정신이 팔린 문 정권이 이 사건의 파장을 축소하고 자신들의 책임을 면하고자 월북 몰이를 했을 가능성이 있다. 진상이 밝혀져야 한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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