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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복 양식 가업 돕다 늦깎이 어류학자로…'남극 물고기' 통해 질병치료 실마리 찾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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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부모님의 양식장 일을 거들며 얻은 경험은 한국에 남극 물고기를 키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큰 도움이 됐다. 김진형 극지연구소 책임연구원이 최근 송도 극지연구소에서 남극 물고기 표본을 설명하며 웃고 있다. [한주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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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한 말이지만 남극의 바다에도 물고기는 산다. 우리가 아는 물고기들과는 다른 점이 있다. 어떤 물고기는 피가 하얗고, 어떤 물고기는 뼈가 연하다. 차가운 바다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진화된 '남극 물고기'만의 특징이다.

인류는 아직 남극 물고기의 생태에 대해서는 모르는 게 많다. 남극에서 여름이 아닌 계절에는 바다가 얼기 때문이다. 이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가을만 돼도 추적·관찰할 수 있는 방도가 없다. 김진형 극지연구소 책임연구원의 연구는 그래서 특별하다. 그는 한국에 남극 바다와 유사한 환경을 만들고 물고기를 데려와 키운다. 이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어떻게 다음 세대를 탄생시키는지 연구하기 위해서다. 그의 노력으로 남극 물고기를 데려와 키울 수 있는 환경이 전 세계 최초로 한국에 만들어졌다.

엘리트 코스를 밟은 정통 연구자는 아니었다. 전문대에서 전자통신을 공부했고, 부모님의 양식장에서 일손을 거들기도 했다. 그러나 흉내 낼 수 없는 그만의 고유한 경험이 '남극 물고기 양식'이라는 꿈을 향해 나아가는 밑거름이 됐다. 매일경제는 인천 송도에 위치한 극지연구소를 찾아 남극 물고기와 그의 삶에 대해 들었다. 아래는 일문일답.

―남극 어류를 연구하는 학자라니, 생소하다.

▷처음부터 남극 어류를 연구하려던 건 아니다. 어류의 생태 연구자였는데, 극지연구소에서 어류 전공자가 필요하다며 공고를 냈다. 어떻게 보면 내가 남극 어류 연구를 선택했다기보다는 우리나라 극지 연구의 시대적 흐름이 나를 남극 어류학자로 만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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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류를 공부하게 된 이유가 궁금하다.

▷처음엔 대학 입학에 실패해 전문대에 들어갔다. 전공도 전자통신이었다. 그렇게 2년 학교를 마치고 군대도 다녀왔다. 나름 괜찮은 직장에도 들어갔다. 1년 정도 근무하니 내가 꿈꾸는 직장생활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해외 어학연수를 계획했는데 갑자기 한국에 IMF 사태가 터졌다. 어쩔 수 없이 경기도 김포에서 부모님이 운영하던 양식장에서 일했다.

―가업을 잇다 보니 어류 연구자가 된 것인가.

▷그렇다. 부모님은 황복을 양식해왔다. 황복은 알을 낳으러 담수로 돌아오는 어종이다. 한 1년 지나고 보니 어류를 양식하는 데서 재미를 찾았다. 동시에 전문적인 교육의 필요성도 절감했다. 부모님은 당시에 양식 경력이 30년이 넘었다. 그러나 교육을 받은 건 아니고 감에 의존해 양식을 해왔다. 다음날이 물고기 출하인데 장비가 갑자기 고장 나 집단 폐사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일들을 겪으며 더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편입시험을 보고 인하대 해양학과에 들어갔다.

―주위 학생들과는 나이 차이가 꽤 났겠다.

▷그때 이미 29세였다. 교수님들은 "김 사장, 김 사장" 하고 불렀다. 실제 양식을 해보고 오니까 전공이 재밌고 쉬웠다. 열 살 가까이 차이 나는 학생들과 다니는데, 30명 중 1등으로 졸업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석·박사 학위까지 취득했다. 학위도 황복을 다룬 논문으로 취득했다.

―남극 물고기는 어떻게 연구하게 됐나.

▷박사 학위를 마치고 캐나다 밴쿠버에 있는 정부 산하기관 같은 곳에서 박사후과정을 했다. 유전체 변화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고 있었는데 마침 극지연구소에서 공고가 났다. 미지의 분야를 한다는 흥미도 있었다. 지금도 면접에서 받은 질문이 기억난다. 남극도 가고 오지에서 생활할 일이 많은데 상관없겠냐는 것이었다. 해양생물을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직접 현장에 갈 수 있다는 것은 영광이자 특권이라고 답했다.

―생소한 분야인 만큼 연구 과정에 어려움도 있을 듯하다.

▷플랑크톤이나 미생물처럼 작은 개체에 대한 연구는 물만 떠오면 할 수 있다. 그런데 중대형 이상 어류를 남극에 가서 계속 관찰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바다가 얼지 않는 11~3월 기간에만 지속적으로 연구가 가능한데, 중대형 생물을 연구하기에는 너무 짧은 기간이다. 그래서 송도에 있는 극지연구소에 남극 물고기가 살아갈 수 있는 시설을 만들었다. 중대형 이상의 남극 어류를 자국으로 데려와 연구하는 시설로는 세계 최초다.

―남극 물고기를 키우며 가업을 잇는 모양새다.

▷아직 양식이라고 할 수준은 아니다. 유지하고 배양시키는 정도다. 데려온 물고기들이 다음 세대를 생산할 수 있을 때까지 키우고, 인공 산란을 유도해 알을 받고 새끼를 얻을 수 있을 때, 그리고 이들이 다시 커서 같은 과정이 반복될 때 양식이라고 할 수 있다. 아직은 갈 길이 멀다.

―어떤 종을 국내에서 키우고 있나.

▷트레마스 토머스 버나키라고 하는 종이다. 아직 한글명이 지어지지 않았다. 남극 물고기는 지금까지 123종이 알려졌는데, 세종기지와 장보고기지 주변에 많이 사는 5종씩, 총 10종 정도를 데려와 키워봤다.

―어떤 기준으로 물고기를 정해 데려왔나.

▷우리나라가 남극에서 물고기를 잡을 수 있는 방법은 낚시밖에 없다. 하나하나 잡아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선택한 물고기를 키우는 게 아니라 많이 잡히는 걸 키워야 한다.

―남극 낚시도 궁금하다.

▷실험 대상을 채집하는 유일한 방법이 낚시다. 남극 낚시가 스포츠나 유희가 돼선 절대 안 된다는 생각이다. 남극 생물을 채집하기 위해서는 조약에 따라 사전 허가를 받아야 한다. 또 고무보트를 타고 나가서 채집하다 보면 위험하고 멀미도 많이 난다. 즐거운 작업은 아니다.

―수족관의 환경은 남극과 최대한 유사하게 만들어야 할 것 같다.

▷남극 바닷물을 그대로 가져올 수는 없다. 어쩔 수 없이 인위적으로 남극 환경과 가능한 한 똑같이 유지하려고 한다. 가장 중점을 두는 것은 온도다. 일반적인 광어나 넙치, 우럭 양식장은 바다 근처에 설치하고 바닷물이 양식장을 거친 다음엔 다시 바다로 버려진다. 그런데 여기에는 해수를 차갑게 만드는 데 들어가는 에너지가 많다. 찬물은 이미 비싼 물이라고 보면 된다. 바로 버릴 수가 없다. 그래서 순환여과시스템을 만들어 한 번 쓴 물이라도 물리적 여과, 생물학적 여과를 거쳐 다시 사용한다. 문제는 여과를 위해 미생물이 활동해야 하는데, 0도에 가까운 온도에서는 이들이 활동할 수 없다. 그래서 이렇게 나온 물을 히터로 다시 15도까지 올린다.

―올렸다 내렸다 하는데 유지비가 많이 들겠다.

▷당연히 온도를 올리는 데도 엄청나게 에너지가 소모된다. 그래서 열교환기를 만들어 열전도율이 높은 알루미늄 관으로 물이 흐르게 해 서로 온도가 맞춰지게 한다. 전기에너지를 사용하지 않고도 15도까지 데워진 물의 온도를 1.5도까지 떨어뜨린다. 국내뿐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특허를 취득한 기술이다.

―생물을 전공했는데, 기계·전기적인 문제까지 어떻게 다 해결할 수 있었나.

▷누군가는 삥 돌아왔다고 할 수 있는 길을 걸어왔다. 그 길의 경험들이 있었기에 남극 물고기를 관찰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게 가능했다. 처음 입학한 전문대에선 전자통신을 전공했고, 대학에서는 수산 양식을 배웠다. 거기다 가업으로 실제 양식을 해보지 않았나. 물고기의 생리를 전공했지만 기초 지식들이 있었기에 시설을 보고 뭐가 필요한지를 알고 구현해낼 수 있었다.

―남극에 사는 물고기만 갖는 특징이 있나.

▷몇 가지 있다. 가장 중요한 건 차가운 물속에서도 체액이나 혈액이 얼지 않고 유지되도록 하는 항동결단백질이다. 만약 냉장고에서 물을 얼린다고 하면, 먼저 물 안에 얼음핵이 생기고 여기에 다른 얼음이 덧붙는 식으로 점차 얼음이 커진다. 그런데 이 항동결단백질은 핵 주변을 감싸 다음 조각이 달라붙는 것을 막게 한다.

―과거 피가 하얀 물고기가 남극에서 잡혔다는 기사도 있었다.

▷남극빙어, 아이스피시라고 알려진 종이다. 우리가 흔히 '빙어 축제' 등으로 아는 빙어와는 전혀 다르다. 아이스피시는 18종 정도가 있다. 전 세계 모든 척추동물 중에 혈액이 투명한 유일한 종류다. 혈액이 붉은 것은 혈액 내 헤모글로빈에 철이 들어 있는데, 철이 붉은빛을 띠기 때문이다. 이 극지 어류는 비극지 어류 대비 헤모글로빈을 10%밖에 갖고 있지 않다. 그렇다 보니 혈액의 색깔도 투명해진다.

―헤모글로빈이 없는데도 잘 살아갈 수 있나.

▷극지 해양의 특성 때문이다. 워낙 물이 차갑다 보니 물에 산소가 많이 녹아들어 있다. 헤모글로빈은 심장에서 산소를 붙여 말단 기관까지 운반하는 역할을 한다. 이 남극 빙어 입장에서는 바다에 산소가 너무 풍부하기 때문에 굳이 심장에서 산소를 전달받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또 다른 특징도 궁금하다.

▷남극 빙어는 부레도 없다. 일반적인 물고기는 부레를 통해 부력을 향상시킨다. 그 덕분에 물속에서도 상대적으로 힘들이지 않고 유영한다. 그런데 차가운 물에서는 조금만 이동해도 엄청나게 에너지가 많이 필요하다. 그래서 남극 어류는 대부분 바닥에 머물도록 진화했다.

그래도 먹이나 짝을 찾기 위해서는 이동해야 한다. 이동에 최대한 에너지를 덜 쏟기 위해 뼈가 연골화되는 방향으로 진화했다. 그렇게 자신의 몸을 가볍게 만들었다.

―생각지 못한 특성이 나타나는 듯하다.

▷가령 헤모글로빈이 적다는 건, 사람으로 치면 빈혈이다. 뼈가 연골화됐다는 건 사람으로 치면 골다공증을 앓고 있는 거다. 그런데 이들은 아무 문제없이 생식하고 산란한다. 이런 물고기들의 생리 현상은 향후 인간의 질환 치료에도 하나의 실마리가 되지 않을까 기대한다.

―실제 남극 물고기를 먹어본 적이 있나.

▷원양어업 업체들이 목표한 수산물 외 부수적으로 잡힌 남극 물고기들을 연구소로 보내는 양이 꽤 많다. 3년에 걸쳐 지금 받고 있다. 이들을 이용해 의약 관련 연구도 진행하지만, 실제 전문 요리사를 초빙해 요리한 뒤 맛에 대한 평가도 진행해본 적이 있다. 조리 대상은 남극 빙어였다. 다들 맛있다고 좋아했다. 끓였을 땐 혈액이 없어서 그런지 지리 같은 느낌도 났다.

▶▶ 김진형 책임연구원은…

1971년 인천 강화군 석모도 출생. 동양공전을 졸업한 후 잠깐 직장생활을 했으나 다른 길을 찾아 퇴사했다. IMF 사태로 준비하던 어학연수가 좌절되며 부모님의 양식장에서 일손을 거들었다. 2001년 인하대 해양학과에 편입해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2012년부터 캐나다 수산해양부, 양식 및 해양환경 연구소에서 박사후연구원을 지냈다. 2016년 극지연구소에 입사해 국내 최초 극지 어류 전문연구자의 길을 걸었다. 저서로 '슬기로운 남극 물고기'가 있다.

[정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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