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올 여름휴가 포기"…개미들 결국 백기투항, 6700억 팔았다

댓글 1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중앙일보

코스피와 코스닥이 이틀 연속 연저점으로 추락한 23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에서 직원이 전광판 앞을 지나고 있다. 이날 코스피는 전 거래일보다 1.22% 내린 2314.32에 장을 마쳤다. 코스닥은 전날보다 4.36% 급락한 714.38에 마감하며 이틀 연속 4%대 하락률을 기록했다.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주식 수익률이 -28%인데도, 끝내 손절(손절매)했네요. 올해 여름 휴가는 포기에요.”

회사원 박모(34씨)는 1년여간 모아왔던 주식을 이달 들어 나눠 팔고 있다. 주식이 오를 기미가 보이지 않아서다. 그는 주가가 바닥권이라고 생각해 지난해부터 삼성전자와 네이버, 카카오 등 코스피 시가총액 상위 10위 종목에 적립식으로 투자했다.

꾸준한 '물타기'(매수 단가를 낮추기 위한 추가 매수)로 누적 투자금은 3000만원을 넘겼지만, 현재 수익률은 -28% 정도다. 그는 “바닥 아래 지하실이 있다더니, 무서워서 더는 매수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국내 증시 버팀목 역할을 했던 ‘동학 개미’가 돌아서고 있다. 바닥없이 미끄러지는 시장에 지친 개인투자자 ‘팔자’엔 나서자 개미의 ‘항복 신호’라는 시각도 나온다.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22일(현지시각) ‘경기 침체 가능성’을 언급하며, 주가 추가 하락에 대한 개인의 공포감에 불을 지폈다.

중앙일보

회사원 박모(34)씨의 증권 계좌 수익률. 독자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23일 코스피는 전날보다 1.22% 내린 2314.32에 마감했다. 52주 최저치(2339.64)를 다시 갈아치웠다. 장 중에는 2306.48까지 밀리며 2300선도 위태로웠다. 코스닥은 투자자는 할 말을 잃었다. 전날보다 4.36% 급락한 714.38에 장을 마쳤다. 역시 52주 최저치를 새로 썼다.

이날 주가를 끌어내린 건 개인이 던진 매도 폭탄이다. 개인은 코스피(6711억원)와 코스닥(640억원) 시장에서 모두 '팔자'에 나섰다. '셀코리아' 중인 외국인은 이날도 코스피에서 2969억원어치를 팔아치웠다. 기관(9264억원)이 코스피에서 개인과 외국인이 던진 물량을 받았지만 하락을 막지는 못했다.

개미의 '팔자'는 시장은 인내심이 바닥난 개인투자자의 ‘항복 신호’란 진단이다. 이달 들어 15거래일 동안 개인이 순매도로 거래를 마친 건 이 날 포함 4거래일(3일·16일·21일·23일)뿐이다. 특히 코스피가 하락 마감한 날 개인이 순매도를 기록한 건 이달 들어 처음이다. 순매도 규모도 이달 들어 가장 컸다.

그동안 세 차례 있었던 개인투자자의 순매도는 시장 반등 시 손실 폭을 줄이기 위한 것이었다면 이날은 손해를 무릅쓴 ‘투매’의 성격이 강했다는 게 시장의 시각이다. 박광남 미래에셋증권 디지털리서치 팀장은 “코스피와 코스닥이 한 달간 10~18% 급락하자 투자 심리가 완전히 무너졌다”며 “소위 백기 투항의 모습”이라고 진단했다.

무너지는 시장의 잔해 속에도 개인투자자는 국내 증시에 대한 믿음 보여왔다. 23일 기준 연초 이후 코스피 시장에서 외국인(14조4020억원)과 기관(12조7740억원)이 27조1760억원어치 팔아치울 때 개인만 25조4190억원 순매수를 기록했다. 이렇게 국내 증시를 지켰던 개인이 등을 돌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경민 대신증권 투자전략팀장도 “최근 국내 증시가 (다른 시장보다) 유독 약했다”며 “수급 중심에 있던 개인이 버티지 못하며 매물이 쏟아졌다”고 설명했다. 지난 한 달간 뉴욕 3대 지수가 4~5% 하락하는 동안 코스피와 코스닥은 각각 11.19%, 17.42% 급락했다.

중앙일보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개미의 변심은 주식을 팔아치우는 것만으로 끝이 아니다. 증시 대기자금은 올해 들어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23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22일 기준 투자자예탁금은 56조3946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 9일(56조9970억원) 18개월 만에 56조원 밑으로 떨어진 뒤 올해 들어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투자자예탁금은 투자상품 거래를 위해 개인 투자자가 증권사에 맡긴 자금이다. 코로나19 사태 속 각국이 유동성을 풀며 주식 시장의 호황을 이어가던 지난해 7월 투자자예탁금은 77조원을 넘어섰으나 1년 만에 20조원 넘게 줄어들었다.

중앙일보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은 22일(현지시각) 미 상원 은행위원회에 출석해 물가 상승(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금리를 올린 결과 경기가 침체에 빠질 수 있다고 인정했다. 제공=AFP,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개인투자자가 시장을 떠날 기미에 국내 증시의 변동성은 더 커질 전망이다. 이경민 투자전략팀장은 “전 세계적인 긴축과 기업 실적 악화 우려 등 거시 경제 환경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개인 수급마저 불안해지면서 단기간에 주가 반등을 기대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이웅찬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3분기 이후 통화 긴축 속도가 완만해지기 전까지는 보수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외국인이 국내 주식을 계속 던지며 원화 가치 약세도 이어지고 있다. 23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달러당 원화가치는 전날보다 4.5원 내린 달러당 1301.8원에 거래를 마쳤다. 장 중엔 원화가치가 달러당 1302.8원까지 흔들리며 연저점을 경신했다. 원화가치가 달러당 1300원 선을 내준 건 지난 2009년 7월 14일(1303원) 이후 약 13년 만이다.

이태윤 기자 lee.taeyun@joongang.co.kr

중앙일보 '홈페이지' / '페이스북' 친구추가

넌 뉴스를 찾아봐? 난 뉴스가 찾아와!

ⓒ중앙일보(https://www.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