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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유튜브 문닫았지만 "보이루=여혐" 교수는 1심서 졌다…왜 [그법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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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사진 보겸TV 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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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법알 사건번호 45] '보이루' 논란, 판결문 뜯어보니



인기 유튜버 보겸(본명 김보겸)과 페미니즘 운동가 윤지선 세종대 교수의 ‘보이루’ 논란에 대한 법원의 첫 번째 판결이 지난 21일 나왔습니다. 이 사건을 심리한 서울중앙지법 민사86단독 김상근 판사는 "윤 교수는 김씨에게 5000만원을 지급하라"며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 김씨 일부 승소로 판결했습니다.





‘보이루’는 김씨가 자신의 이름과 ‘하이루(Hi루·온라인상의 인사 표현)’를 합성한 단어로 2013년께부터 인터넷 방송에서 인사말로 사용해 왔습니다. 김씨가 이번 사건으로 유튜브 방송을 중단하기 전까지 최대 구독자 수는 400만명이 넘어 이 용어는 초등학생들부터 20~30대 사이에서도 유행어처럼 사용됐습니다.

사건은 윤 교수가 지난 2019년 ‘관음충의 발생학: 한국 남성성의 불완전변태과정(homomorphism)의 추이에 대한 신물질주의적 분석’이라는 논문을 학술지에 발표하면서 시작됩니다. 윤 교수는 이 논문에서 “대한민국은 관음 문화가 널리 퍼져 있고, 이에 지속적으로 노출된 대한민국 남성은 어린이 시절부터 성차별적 환경에 놓여 성인이 될 때까지 몸 크기만 커질 뿐 큰 변화 없이 ‘관음충’으로 집단 생장·진화해 본인의 인식 여부와 무관하게 여성 비하를 하게 되고 디지털 성착취 범죄가 하나의 시스템으로 전개된다”고 주장했습니다. 논문 제목에 포함된 ‘관음충’의 ‘충(蟲)’은 벌레를 의미합니다. 김씨와 분쟁이 생긴 건 윤 교수가 이 논문에서 ‘보이루’가 여성의 성기와 ‘하이루’의 합성어라고 설명하며 여성 혐오의 의도를 가지고 있다는 내용을 담았기 때문입니다.

문제가 된 각주 18번 내용입니다.

“보겸이라는 유튜버에 의해 전파된 ‘보이루’란 용어는 보X+하이(Hi)의 합성어로, 초등학교 남학생부터 20~30대 젊은이에 이르기까지 여성혐오용어 놀이의 유행어처럼 사용되었다.”

김씨는 논문에 해당 내용이 기재된 사실을 인지한 뒤 “자신이 여성의 성기에 대고 인사하는 정신 나간 여성 혐오자로 학술 논문에 영원히 남게 됐다”며 억울함을 호소했습니다. 이후 윤 교수가 속했던 대학 등에 해당 내용은 허위 사실이라고 문제를 제기했고, 윤 교수는 결국 논문 내용을 아래와 같이 바꿉니다.

“이 용어는 수백만 명의 구독자를 거느린 유튜버, BJ 보겸이 ‘보겸+하이루’를 합성하여 인사말처럼 사용하며 시작되다가, 초등학생을 비롯하여 젊은 20~30대 남성에 이르기까지 여성 성기를 비하하는 표현인 ‘보X+하이루’로 유행어처럼 사용, 전파된 표현이다”

하지만 수정 이후에도 윤 교수는 김씨에게 사과할 의사는 없다고 했습니다. 김씨가 관련 기관에 조사를 요구하고 소송을 제기하는 등 논문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자 윤 교수는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논문 퇴출'이라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자 유튜브에서 각종 음모론과 허위 사실들을 유포하고 구독자들은 이를 무비판적으로 믿으며 퍼뜨리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김씨는 지난해 여성 혐오자로 낙인 찍힌 본인의 이미지를 개선하겠다며 얼굴 성형 수술을 했고, 지난해 6월부터 인터넷 방송을 사실상 중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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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선 교수 페이스북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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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질문!



윤 교수가 논문에서 '보이루'를 여성혐오 표현이라고 주장한 것은 허위 사실 명예훼손이 될 수 있을까요? 학문의 자유로 볼 수는 없나요?





관련 판례는?



대법원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명예 보호 사이에서 무엇이 우선할 것인지는 해당 표현 내용이 공적 관심 사안인지, 사적 영역에 속하는 사안인지에 따라 다른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판시하고 있습니다. 사적 영역에 속하는 사안이라면 언론의 자유보다는 명예의 보호가 우선 돼야 하고, 공공적·사회적 의미를 가진 사안이라면 언론의 자유 측면을 더 살펴야 한다는 취지입니다.



양측 주장은?



재판 과정에서 김씨 측은 “윤 교수가 수정 전 논문에서 구체적이고 명백한 허위사실을 적시해 명예를 훼손했다”며 “‘보이루’라는 인사말을 악의적으로 왜곡해 표현한 것은 인격권을 침해하는 불법행위”라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맞서 윤 교수 측은 “’보이루’라는 표현이 여성 혐오 표현으로 변질됐다는 점에 대한 단순한 의견 표명을 했을 뿐 구체적 사실 적시로 인한 명예훼손이나 경멸적인 표현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논문 발행은 ‘헌법상 학문의 자유’로 보호되는 학문적 활동이므로 명예훼손이나 인격권 침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반박했습니다.

그러면서 “논문 각주 내용이 사실의 적시라고 하더라도 ’보이루’가 유행어처럼 사용되고 있으므로 허위 사실이 아닌 객관적 사실에 해당한다”며 “또 논문에서 다루는 주제는 ‘공적인 관심 사안’에 해당하므로 불법 행위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덧붙였습니다.



법원 판단은?



김 판사는 윤 교수가 ‘보이루’를 여성 혐오 표현이라고 점에 대해 허위 사실이며, 김씨의 명예를 훼손한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김 판사는 판결문에서 “김씨는 ‘보이루’를 자신의 실명과 ‘하이루’를 합성해 인사말로 사용해 왔을 뿐 여성의 성기를 지칭하는 의미는 전혀 없었다”며 “윤 교수가 허위인 구체적 사실을 적시해 김씨의 사회적 가치 내지는 평가를 훼손시킴으로써 명예를 훼손한 것에 해당한다”고 판시했습니다.

‘학문의 자유’ 영역이라는 윤 교수의 주장에 대해서는 “잘못된 연구 결과, 사실과 다른 내용을 의도적으로 소개하는 행위 등을 통해 선의의 제3자를 해친다면 이는 학문의 자유를 넘는 위법한 행위”라고 짚었습니다.

김 판사는 김씨가 유튜브 방송 당시 구독자 400만명 이상을 가지고 있어 ‘공적인 관심 사안’에 해당해 불법 행위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윤 교수 주장도 배척했습니다. 김 판사는 “김씨의 유행어가 다수의 사람들에게 사용되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김씨의 인터넷 방송 인사말이 공인된 학술지 논문에서 다뤄져야 하는 공적 관심 사항이라고 볼 수는 없다”며 “윤 교수가 언급하고 있는 내용 자체도 김씨가 여성 혐오적 표현을 퍼뜨리는 존재라는 허위 사실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공적인 관심 사안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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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선 교수 페이스북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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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심은 김씨의 손을 들어줬지만, 판결이 확정된 건 아닙니다. 윤 교수는 1심에서 패소한 지난 21일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이 사태를 ‘여성 억압의 본보기’로 활용하고자 하는 가부장제 자본주의 사회의 폭압성을 명철히 기록하고 분석할 것”이라며 항소 의지를 밝혔습니다.

■ 그법알

‘그 법’을 콕 집어 알려드립니다. 어려워서 다가가기 힘든 법률 세상을 우리 생활 주변의 사건 이야기로 알기 쉽게 풀어드립니다. 함께 고민해 볼만한 법적 쟁점과 사회 변화로 달라지는 새로운 법률 해석도 발 빠르게 전달하겠습니다.

강광우 기자 kang.kwangw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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