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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800만원이면 보름 뒤 대학 졸업장”… 서울 구청장 후보도 이 대학 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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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NWSSU 경영대학 건물 /NWSSU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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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이번 지방선거가 끝나면 좋은 자리를 맡게 될 것 같은데, 대학원 졸업장이 필요합니다. 좀 급해서… 빨리 딸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기자)

“네에~ ○○씨는 연 3학기제를 이수했으며, 2018년 6월 국립노스웨스트사마르대학교 공공행정학과에 학사과정 입학, 2021년 2월에 행정학사를 취득하며, 2021년 2월 대학원 석사과정에 입학, 2022년 6월에 석사학위를 수여받게 됩니다.” (브로커)

조선닷컴이 필리핀의 한 공립대 브로커에게 손님을 가장해 접촉, 주고받은 대화 내용이 이랬다. 대화를 주고 받은 일시는 2022년 5월26일. 그러니까 브로커 말은, ‘과거를 조작해주겠다’는 뜻이다.

최근 조선닷컴에는 이번 지방선거 출마자를 포함한 전현직 여야 지방 정치인들이 ‘학위 공장’에서 학위를 구매했다는 제보가 접수됐다. 확인 결과, 실제로 국내에서는 800만원 정도에 필리핀 공립대의 학사 학위가 거래되고 있었다.

◇소개서엔 “8개월이면 대학 졸업장”… 급행은 15일이면 OK

25일 조선닷컴은 수소문 끝에 암암리에 학위 거래를 주선하고 있다는 학위 브로커 A씨에게 손님을 가장해 연락을 취했다. 그는 “전화 말고 직접 만나자”라고 했다. 기자는 26일 오후 서울 은평구의 한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A씨는 자신을 ‘필리핀 노스웨스트 사마르 주립대(NWSSU) 국제협력단장’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그 자리에서 “학사 학위를 받으려면 6400달러, 석사 학위는 6000달러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수수료 등을 포함해 한국돈 1611만원이면 학사와 석사 학위를 동시에 취득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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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가 필리핀 노스웨스트 사마르 대학교 '학위 인증서'라며 소개서에 올려놓은 이미지. 잘 보면 학장 임명증이다. 이 학교는 일정 금액을 내면 2주 정도 안에 학사와 석사 등 졸업증을 준다. /NWSSU 소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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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가 건넨 NWSSU ‘한글’ 소개서에 따르면 학사 학위를 따는데 걸리는 시간은 고작 8개월이었다. 이 학교에 있는 ‘특별학위과정’은 1년 3학기제 기준으로 학사 학위를 받으려면 8학기 이수가 필수였다. 최소 2년8개월이 걸린다는 것이다. 특별학위과정이란 현지에서 학교를 다닐 필요 없이, 한국에서 인터넷으로 수업을 듣고 학사와 석사, 박사 학위를 따는 과정이었다.

하지만 여기에는 꼼수가 숨겨져 있었다. 2학기만 이수하면 나머지 학기는 과거 업무 경력을 ‘학기’ 단위로 인정해주는 ‘ETEEAP(Expanded Tertiary Education Equivalency and Accreditation Program·경력인정학기수료)’라는 방식으로, 8개월 만에 학사 학위 취득이 가능하다는 설명이 적혀 있었다.

실제로는 8개월도 필요 없었다. 15일이면 됐다. 기자는 A씨에게 “급하게 학위가 필요하다”고 하자, A씨는 “내 계좌로 1611만원을 입금하면 당신은 2018년 6월 NWSSU 공공행정학과 학사 과정을 입학해 2021년 2월 학사를 취득한 사람이 된다”며 “그런 뒤 2021년 2월 대학원 석사 과정에 입학한 것으로 처리돼, 다음 달 10일 석사 학위를 수여 받게 된다”라고 말했다.

◇정계·언론계·민간기업과 공기업… 사회 곳곳 ‘학위 공장’ 출신들

취재 결과, NWSSU의 특별학위과정은 2016년 무렵부터 운영됐다. 그 전까지 똑같은 과정을 운영하던 학교는 필리핀의 국립대 ‘율로지오 아망 로드리게스 과학기술원(EARIST·이리스트)’이었다. A씨는 “NWSSU의 특별학위과정은 원래 이리스트에서 운영하던 것”이라고 했다.

이리스트가 해당 과정을 2010년대 초반부터 운영하다가 2016년을 전후해 중단했고, 그걸 NWSSU가 넘겨받았다는 것이다. 당시 이리스트에서 부총장으로 해당 과정을 담당하던 한국인 김모씨는 현재 NWSSU에서도 부총장 역할을 하고 있었고, 이리스트에서 국제협력단장을 하던 A씨 역시 NWSSU에서 같은 일을 하고 있었다.

필리핀 현지 이리스트 관계자는 25일 조선닷컴 통화에서 “2016년쯤 특별학위과정을 폐지(Abolish)했다. 이리스트에서 특별학위과정을 진행했던 한국인은 현재 NWSSU에서 그 과정을 계속 하고 있다”며 “특별학위과정생의 이리스트 성적증명서와 졸업증명서 등 학적증명서를 발급 받으려면 우리 쪽이 아니라 그 사람 혹은 NWSSU로 연락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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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WSSU의 소개서에 나온 졸업생 현황. NWSSU 졸업장으로 유수의 국내 대학이나 기업으로 진출한 수많은 사람들의 이력이 고스란히 적혀 있다. /NWSSU 소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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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가 건넨 NWSSU 한글 소개서에 따르면 NWSSU 졸업생은 현재 한국 사회 여러 분야에 포진해 있었다. 소개서에는 ‘서울시의원을 2번 하고 ○○○구청장에 출마한 B씨 등 정계뿐만 아니라 C방송사 기자 등 언론계, D석유화학·E마트·코레일·서울시시설관리공단 등 산업계에도 NWSSU 출신이 있으며, 가톨릭대 이모 교수, 동국대·목원대 산학협력 전담교수 등 학계에도 NWSSU 출신이 많다’는 취지의 소개 글이 적혀 있었다.

◇서울시 구청장 출마자 “그 대학 나왔지만 온라인 수업 다 들었다”

소개서에 나온 인물 가운데 실존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인물이 있었다. 서울시의원 출신 민주당 구청장 후보 B씨였다. 그는 선거 때마다 공식 기록에 출신 대학을 공개하지 않았다. 시의원 출마 당시엔 선거 벽보에 ‘S대 4년 제적, S시립대 1학기 재학 중’이라고만 썼고, 이번 구청장 선거 공보물엔 ‘M고 졸업, S시립대 대학원 졸업’이라고만 썼다.

확인 결과, 그는 실제 ‘이리스트 졸업생’이었고, 브로커 A씨를 통해 이 학교와 연결됐다. B 후보는 조선닷컴 취재 요청에 “잘 기억 안 나지만 2010년부터 2013년 사이 이리스트로 편입해 2년간 온라인으로 학점을 이수해 졸업했다”며 “A씨로부터 소개 받긴 했지만, 난 사이버 수업을 다 들었고 학위를 돈 주고 구입하진 않았다”라고 말했다.

B 후보 외에도 한나라당 소속 전 서울시의회 부의장과 과거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던 새누리당 서울시당 부대변인 등 다른 정치인들도 이리스트에서 학위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최훈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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