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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철판값 불똥까지 튄 조선업, ‘불안의 시간’ 또 치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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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김수헌의 투자 ‘톡’

조선 3사에 다시 드리운 먹구름



작년 수주 풍년에 기대치 컸지만

발주처 인수 포기로 잡힌 재고에

우크라 전쟁과 후판값 인상 겹쳐

조선업계 전체에 불안감 확대돼


한겨레

우크라이나 전쟁과 원자재값 인상 등 영향으로 조선업계에 다시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다. 사진은 경남 거제시 대우조선해양 본사에서 선박 건조작업을 하는 모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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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와 내년은 조선업 투자자들에게는 ‘약속의 시간’이었다. 올 하반기부터 조선 3사(한국조선해양·삼성중공업·대우조선해양) 실적이 가시적으로 개선되고 내년부터는 영업흑자를 낼 것이라는 전망이 압도적이었다. 올 4분기 조기 턴어라운드하여 영업흑자를 내는 업체가 있을 것으로 내다보는 전문가도 있었다.

지난해 수주 풍년이 그 근거였다. 고정비 부담이 큰 조선업체는 도크를 놀려선 안 된다. 몇년치 일감 확보로 도크가 채워지면 발주처에 대한 가격 협상력도 생긴다. 이른바 신조선가가 올라가는 것이다. 지난해와 올해 제값을 받고 수주한 선박들이 건조작업에 들어가면 실적이 나아지는 것은 당연하다.

돌연 전쟁과 원자재값 상승에 발목

그런데 최근 들어 조선업계의 장밋빛 전망에 찬물을 끼얹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실적 개선 기대감을 버려야 한다거나 전망을 크게 수정해야 할 정도까지는 아니나, 분위기는 냉랭하다.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일반 제조기업과 달리 도급계약을 맺고 선박을 건조하는 조선업체의 재고자산에는 미완성 선박(선박 재공품)이나 완성 선박(선박 제품)은 원칙적으로 없어야 맞다. 조선업체에 소유권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난해 말 기준으로 삼성중공업에는 9559억원의 완성선박 재고가, 대우조선해양에는 5891억원의 재공품 재고가 잡혀 있다. 과거에 수주했던 드릴십(시추선)들이다. 발주처가 인수를 포기해 소유권이 조선업체로 넘어오는 바람에 재고자산으로 분류됐다. 이렇게 떠안은 재고자산은 시세가 떨어지면 재고자산평가손실을 안긴다. 완성 선박은 특히나 유지보수비용도 만만찮게 들어간다.

삼성중공업은 지난달 드릴십 재고 4척을 사모펀드에 매각한다고 밝혔는데, 매각 구조가 특이하다. 회사가 사모펀드에 직접 5900억원을, 여타 기관투자자들이 1600억원을 출자한다. 사모펀드는 금융회사로부터 3200억원을 빌린다. 이렇게 하여 마련한 1조400억원으로 사모펀드는 삼성중공업의 드릴십들을 인수한 뒤 제3자 매각에 나선다. 회사는 매각대금 1조400억원과 출자금 5900억원의 차액인 4500억원만큼의 현금을 얻게 되는 셈이다. 드릴십이 손익에 끼치는 영향을 차단하고 유동성을 확보하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보인다. 높은 가격에 잘 팔리면 삼성중공업은 출자자로서 차익분배를 기대할 수도 있다. 대우조선해양도 지난 1분기에 드릴십 1척 인도 계약을 체결하여 현재 재공품 장부가격은 4075억원으로 감소한 상황이다.

그런데 조선업체들의 재공품 선박 재고가 앞으로 크게 증가할 수 있는 상황이 최근 발생하였다. 러시아로부터 수주받아 건조 중인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들의 계약유지가 불투명해진 것이다. 대우조선해양은 이달 중순 엘엔지선 3척 가운데 1척(공사진행률 46%)에 대한 계약을 해지했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러시아에 대한 국제금융제재가 본격화하면서 선주가 선박대금을 결제하지 못했다. 선박대금은 일반적으로 계약금 20%, 중도금으로 10%씩 3회, 그리고 완성선박을 인도한 뒤 50%를 수령하는 ‘헤비테일’ 방식으로 주고받는다. 1차 중도금을 납입하지 못한 것으로 추정된다. 아직 중도금 결제 시기가 도래하지 않은 나머지 2척(공사진행률 각각 30%, 19%)에 대한 계약유지도 어려울 것으로 업계는 내다보고 있다.

계약파기가 확정되면 대우조선해양은 추가공사를 진행하면서 제3자 매각에 나설지를 결정해야 한다. 진행률이 낮은 선박의 경우 공사 예정원가가 예상 매각가격을 크게 웃돈다면 건조작업을 포기할 가능성도 있다. 최근 조선용 후판값이 많이 올라 원가 부담이 커진 상황이기 때문이다. 엘엔지선에 대한 국제수요는 강한 편이지만 러시아 발주선박이 쇄빙엘엔지선이라 실제 수요는 한정적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원매자가 있어도 조선업체가 가격협상에서 주도권을 쥐긴 어렵다는 이야기다. 소송 가능성도 골칫거리다. 러시아 선주가 귀책사유를 온전히 받아들이면 대우조선해양은 최초 계약금을 몰취할 수 있다. 그러나 소송을 제기한다면 장기간 법적 분쟁과 불확실성 증가라는 유무형의 비용을 치러야 한다.

업계에서는 조선 3사의 러시아 관련 수주잔액을 총 10조원으로 추정한다. 삼성중공업이 50억달러(6조3000억원), 대우조선해양은 25억달러(3조1500억원), 한국조선해양이 5억달러(6300억원) 수준이다.

최근 들어 조선업계의 발목을 잡는 이슈로는 후판(두께 6㎜ 이상의 두꺼운 철판)값 상승과 카타르 프로젝트의 대규모 적자 가능성이 있다. 지난해 조선 3사는 모두 4조4500억원가량의 영업손실을 냈다. 상반기에만 3조원 영업적자를 기록하였는데 후판값 상승 영향이 가장 컸다.

선박 건조원가의 20% 정도를 차지하는 후판값이 급등하면 손익계산서는 크게 망가질 수 있다. 이른바 공사손실충당부채(공사손실충당금) 때문이다. 예컨대 선박을 만들던 중 후판값 급등으로 이 선박공사에서 결국 적자가 날 것으로 예상된다고 하자. 이럴 경우 완공 시점까지 미래에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손실추정액을 현시점의 결산에서 공사손실충당부채로 반영해야 한다. 동시에 손익계산서에는 공사원가로 밀어넣는다. 이번 결산에서 미래의 손실분까지 다 회계적으로 당겨 반영한다면 적자가 엄청 커질 수 있다. 지난해 조선업체의 대규모 영업손실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이 하반기 후판값 급등과 이에 따른 공사손실충당금이었다.

또 불안의 시기 겪게 될까

후판값 불똥이 이제는 카타르 프로젝트에까지 영향을 끼치고 있다. 2020년 6월 카타르석유공사(QP)와 한국조선 3사는 협약을 체결하여 2027년까지 엘엔지선 110척 발주 본계약을 맺기로 하였다. 그런데 본격적인 발주를 앞두고 카타르 쪽에서 당시 잠정합의하였던 선박가격을 고집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 원자재값 상승분을 반영한 가격으로 조정하지 않으면 조선 3사가 자칫 큰 손실을 볼 가능성이 크다. 조선업계는 시장의 우려가 과도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기는 하다. 초기물량에서는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같은 배를 반복해서 제조하기 때문에 설계비용 절감 효과 등을 통해 프로젝트 전체로는 장기적으로 이익을 낼 수 있다는 설명이다.

조선업 투자자들은 사실 그래서 더 불안하다. 지금까지 수년 동안 침체기를 겪었고 이제 약속의 시간이 다가오면서 어깨를 좀 펴려는 참이다. 그런데 또다시 ‘장기적으로는 이익’이라는 식의 설명이 덧붙여지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약속의 시간’이 ‘고민의 시간’ ‘불안의 시간’으로 바뀌지나 않을지 마음이 편치 않은 것이다.

김수헌 | 경제이슈분석 미디어 ‘코리아모니터’ 대표. <기업공시완전정복> <이것이 실전회계다> <하마터면 회계를 모르고 일할 뻔했다> <1일 3분 1회계> <1일 3분 1공시> 등을 저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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