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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7 (수)

[중국은, 왜] 솔로몬과 동해에 中그림자…베일 벗는 '제3도련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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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외교부장 남태평양 8개국 순방

차이나머니로 美의 포위전략 맞불

시진핑, 서태평양 단독 영향권 야심

하와이 서쪽 제3도련선 설정 의구심

블링컨 美국무, "대중 전략 환경 바꾼다"

中안보 약점 파고들어 견제 가속화 수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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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인민해방군 공군 소속의 H-6 폭격기와 호위 전투기.[사진=인민망 캡처]


#1. 24일 중국ㆍ러시아 폭격기 등 군용기 6대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ㆍ카디즈)과 일본방공식별구역(JADIZ) 무단 진입.

#2. 중국 외교부 왕이부장, 25일 밤 솔로몬제도의 제1섬 과달카나에 위치한 수도 호니아라 도착. 열흘간 남태평양 8개국 순방하며 안보ㆍ무역ㆍ기술 협력 관련 포괄협정 체결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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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달카날 대안의 툴라기섬. 중국 기업들이 섬쇼핑에 눈독을 들였던 장소다. 〈사진=더컨버세이션 캡처〉


#3. “중국이 스스로 궤도를 수정하는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 개방적이고 포용적인 국제 질서 실현을 위해 베이징 주변의 전략 환경을 바꿀 것.”(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 26일 워싱턴DC 조지워싱턴대에서 대중 전략 발표)

이번 한 주간 미ㆍ중의 전략 경쟁이 숨가쁘게 전개됐습니다. 봇물 쏟아지듯 굵직한 외교안보 사안이 터져 정신이 없을 정도입니다. 어떤 함의가 있는지 시간순으로 하나씩 짚어보겠습니다.

24일 합동참모본부에 따르면 독도 동북방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ㆍ카디즈)에 중국 H-6 폭격기 2대가 진입한 후 이탈했다고 합니다. 중국 폭격기의 침범 행위에는 러시아 군용기도 동참했다는군요. KADIZ는 영공은 아니지만, 진입 전 한국에 알리는 게 국제 관례입니다. 우리도 상대국의 방공식별구역에 진입하게 되면 사전에 알려줍니다. 우발적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서입니다.

■ 中 폭격기 동해 출몰…유사시 미해군 차단 전력

중국 인민해방군 소속 군용기가 동해 카디즈를 침범하는 일은 최근 2017년 이래 거의 연례적으로 일어나고 있다는 점에서 비상한 경계감을 불러 일으킵니다. 중ㆍ러 군용기들의 역대 비행 항적과 최근 행적을 살펴보면 중국과 러시아가 제주 남방 해역-대한해협-독도를 잇는 가상의 선을 설정한 게 아닌가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입니다. 즉, 이런 폭격기가 한두번도 아니고 연례적으로 동해 해상을 떠돌다 갔다는 것은 이 해역을 작전 범위에 넣고 있다는 강력한 정황이기도 합니다.

H-6 폭격기는 전함 공격용 공중 미사일 플랫폼 성격이 강합니다. 대륙간 이동이 가능한 장거리전략폭격기는 아니지만 중거리 작전 수행에는 문제가 없다는 평입니다. 중국 대륙에서 한반도 해역이 딱 떨어지는 작전 반경에 들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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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인민망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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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동해를 휘젖고 돌아간 H-6K 전략폭격기는 3000km가 넘는 전투행동반경 뿐 아니라 사거리가 2000km, 핵탄두를 얹을 수 있는 공대지 순항 미사일(CJ-10)을 최대 6발까지 탑재할 수 있는 무장 능력을 확보한 게 아니냐는 관측도 있습니다. 지상 공격용이지만 대함 미사일을 기반으로 개발돼 항모 공격도 가능하다는 평가입니다. 이런 플랫폼이 동해 상공에 떠 있으면 유사시 동해를 통해 들어오는 미군 지원 전력은 별도로 차단 작전을 펼쳐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됩니다.

따라서 이런 전략폭격기들이 카디즈에 불쑥 들어왔다 나가는 행위는 상대국에 위협이 되는 무력 시위입니다. 동해 수역에 날아와 벌이는 무력 시위라는 점에서 비상한 경계감을 자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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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0월 중국을 방문해 리커창(李克强) 중국 총리(오른쪽)와 만난 솔로몬제도의 마나세 소가바레 총리.〈사진=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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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중국은, 왜] 칼럼(『中, 호주에 “우크라이나 꼴 난다”…신경질적 비난, 왜?(4.9)』,『태평양전쟁 美ㆍ日 첫 육상 교전지 과달카날…'섬 쇼핑' 中 눈독(4.14)』)에서 호주 앞 솔로몬제도에 중국의 그림자가 짙어지면서 앞으로 이 지역이 뜨겁게 달아오를 것이라고 전망했는데 상황 전개는 예상보다 더 뜨거웠고 더 긴박했습니다.

중국과 남태평양의 솔로몬제도가 안전보장협정을 체결하면서 치안 유지와 중국 교민 안전을 이유로 중국이 군대와 무장경찰을 파견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우려가 늘 현실이 되는 건 아니지만 안보에선 저의를 알 수 없으니 행동을 보고 최악의 상황을 설정하게 마련입니다. 이 협정을 기반으로 나중에 중국의 원양해군전력이 기항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높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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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나세 소가바레 솔로몬제도 총리가 2019년 10월 베이징에서 리커창 중국 총리와 함께 의장대를 사열하고 있다. [사진=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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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부랴부랴 29년 전 철수한 주(駐)솔로몬 대사관을 다시 연다고 발표하고는 커트 캠벨 백악관 인도태평양 조정관을 파견해 현지 정부를 압박했습니다. 역내 영향력이 가장 큰 호주도 관계 장관들을 급파하면서 솔로몬 정부를 만류했지만 결국 중국의 뜻대로 협정은 체결됐습니다.

솔로몬제도는 호주 해군이 서태평양을 북진할 때 쓰는 주요 통로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군사적으로 솔로몬제도는 더 심중한 의미가 있습니다. 미군의 서태평양 거점인 괌 기지의 남쪽에 있기 때문입니다.



■ 괌 후방의 솔로몬제도…호주군 움직임도 제어 가능한 위치

미군은 괌이 인민해방군의 DF-26 미사일의 타격권이라 백업용으로 호주 북동부 다윈기지를 미 공군의 전략거점으로 고도화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유사시 대만해협을 작전권으로 하는 대규모 공군급유기지를 건설하고 있다는 보도도 나왔습니다. 보급과 물류의 허브로 삼겠다는 겁니다.

이 다윈기지를 견제하고 미군의 셈법을 복잡하게 만들 수 있는 중국의 포석이 솔로몬제도입니다. 이곳에 쿠바 위기 때처럼 미사일 기지를 건설하거나 미사일로 무장한 전투함들이 기항한다면 상황이 급발진하게 됩니다. 특히 호주군이 남중국해 유사시 전력을 전개할 경우 등 뒤의 비수 같은 자리가 솔로몬제도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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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0월 솔로몬제도의 마나세 소가바레 총리의 방중을 환영하는 깃발이 천안문 광장에 걸렸다.〈사진=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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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전쟁에서 미군과 일본군이 처음으로 육상에서 교전한 솔로몬 제도의 제1섬이 과다카날입니다. 중국이 남태평양 그 먼 바다까지 눈독을 들여 원양해군전력을 투사하기까지는 정말 먼 얘기입니다. 전투함으로 구성된 항모전단과 보급함 등 원양작전을 수행할 만한 전력을 갖추려면 오랜 시간 동안 축적된 작전경험과 함정 제작 기술 등이 뒷받침돼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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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년 8월 과달카날에 상륙하는 미해병대. 〈사진=더 내셔널 2차대전뮤지엄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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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안심하기는 어렵습니다. 중국은 노선을 결정하는 중국공산당이 권력을 계속 쥐고 있기 때문에 한번 정한 전략 방침은 속도는 느릴 수 있어도 일관된 방향성을 갖고 추진됩니다. 대표적인 게 도련선(島?線·island chain) 전략입니다.

중국은 1980년대부터 남중국해와 남태평양의 섬과 섬을 연결한 도련선을 그어 단계적으로 해양 진출과 함께 미 해군의 활동에 제약을 가하려는 전략을 추진해왔습니다.

1단계인 '제1도련선'은 믈라카해협-필리핀-대만-센카쿠(尖閣)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를 잇는 선으로 설정했습니다. '제2도련선'은 괌-사이판-파푸아뉴기니 앞바다까지 시야에 넣고 있습니다.

현재는 제1도련선을 오가는 수준입니다. 미 해군을 견제하기는 커녕 존재감이 느껴지면 뒤로 물러나는 처지입니다. 따라서 제2도련선 얘기는 실감이 안나는 게 현실입니다.

그런데 제2도련선과 멀찌감치 떨어진 남태평양의 섬나라에 차이나머니를 앞세워 중국이 안보상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이 상황은 뭘까요.



■ 시진핑이 드러낸 남태평양 야심

중국공산당 지도부의 속내에 있던 남태평양이 밖으로 드러난 것은 뜻밖에도 미·중 정상회담 자리였습니다. 2013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을 만난 시진핑(習近平) 주석은 신형대국관계를 갖자면서 “태평양은 미ㆍ중 양국을 모두 포용할 만큼 충분히 넓은 공간”이라고 말했습니다.

미ㆍ중이 태평양 양안에 위치한다는 점에서 동서 태평양을 반분 하자는 얘기를 돌려서 한 겁니다. 태평양전쟁에서 하와이를 기습한 일본군이 미드웨이해전에서 타격을 입은 뒤 하와이 서쪽의 서태평양을 시야에 두고 대동아공영권을 설정한 것과 묘하게 포개지던 발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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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바이두백과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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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도련선과 제2도련선이 서태평양의 북부 해역에 설정됐다면 남태평양은 너무 멀어서 방치하는 걸까요. 아닙니다. 2018년부터 '제3도련선'이라는 말이 서방 일각에서 자주 언급되기 시작했습니다.





■ 제3도련선 구축 위한 남태평양의 일대일로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산하 아시아해양투명성이니셔티브(AMTI)의 윌슨 본딕 연구원(전 해군 장교 출신)은 AMTI 웹사이트를 통해 중국의 팽창 전략이 '제3도련선' 뿐 아니라 인도양을 동서로 양분하는 제4ㆍ제5도련선까지 확장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물론 중국은 이를 공식적으로 밝힌 적은 없습니다.

아래 지도에서 보면 하와이에서 뉴질랜드까지 이어진 제3도련선에 포함된 해역이 남태평양이고 솔로몬제도를 비롯해 이번에 중국의 왕이 외교부장이 순방하는 8개국이 밀집해 있습니다. 이번 순방은 저개발국가에 SOC 건설 자금을 빌려주고 개발을 지원하는 일대일로 사업을 남태평양 도서 국가들까지 확대하는 큰 그림 속에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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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요엘 사노 피치솔류션 글로벌정치리스크 본부장 트위터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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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산하 아시아해양투명성이니셔티브(AMTI) 홈페이지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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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끌레오 파스칼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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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남태평양 외딴섬에 중국이 존재감을 드러내는 일은 시 주석의 발언과 서방의 제3도련선 의심과 맞물려 묘한 여운을 자아냅니다.

사태가 이렇게 흘러가자 미국도 10년짜리 대중 전략을 천명합니다. 바이든 정부 출범 후 1년 4개월만에 나온 대중국 전략입니다. 여기서 미국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은 “전략 환경을 바꾸겠다”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등골이 으스스하게 합니다.

권오중 외교국방연구소장은 “표현의 강도나 시점으로 볼 때 중국의 팽창전략이 레드라인을 넘었다는 공감대가 이미 미국 조야에 퍼진 것”이라며 “소련 몰락과 냉전 해체 이후 30년 과도기를 거쳐 새로운 질서를 구축하는 분수령이 될 수도 있어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외교안보 영역에서 전략이라는 말은 종종 안보라는 말과 혼용해서 쓰이곤 합니다. 따라서 블링컨의 이 말은 “중국의 안보 환경이 바뀌게 하겠다”는 말이나 진배없습니다. 중국은 대내외 안보환경이 취약한 처지입니다. 대외 의존도가 높은 에너지 안보 뿐 아니라 신장ㆍ위구르 지역과 티벳 지역의 분리독립 열기를 제어하느라 신경이 곤두서 있는 나라입니다.

■ "中전략 환경 바꾸겠다" …취약점 공략 본격화

블링컨이 말은 점잖게 '전략 환경'을 바꾼다고 했지만 중국의 약점을 집요하게 공격하고 견제하겠다는 얘기로 풀이됩니다.

이런 말을 듣고 가만 있을 중국이 아닙니다. 관변 학자와 미디어를 동원해 발끈하는 속내를 내비칩니다. 대만 해협을 넘어 중국의 전략폭격기들이 떼로 몰려가 무력 시위를 벌이는 일들이 속출하고 미군도 비례 원칙에 따라 전략 자산들을 풀어 무력 시위에 나설 겁니다.

특히 대만해협의 파고가 높아지면 한반도 주변의 긴장 수위도 높아집니다. 중국과 북한이 안보상 밀접하게 엮여 있는 한 대만해협과 한반도의 안보는 서로 연계돼 있습니다. 미ㆍ중의 각축이 강 건너 불구경이 아닌 이유입니다.

정용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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