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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승자 없는 미·중 무역전쟁…베트남, 어부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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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중국산 수입품 전체의 75% 관세 부과로 인플레 압박 심화
중국, 미국산 수입 늘린다는 1단계 합의도 안 지켜
중국도 경제성장 원동력 무역 약화 부담
베트남 대미 무역흑자 3배 늘어…중국 업체, 현지에 생산거점 구축


이투데이

대미 수출 증가율 추이. 단위 %. ※2017년 기점. 위에서부터 베트남/대만/EU/멕시코/중국/일본. 출처 월스트리트저널(WSJ)


미국과 중국은 2018~20년 서로 고율의 무역관세를 발동하는 등 1930년대 이후 최대 규모 무역전쟁을 벌였다. 그 결과 금융시장에 혼란을 초래해 세계 경제의 리세션(경기침체) 위험을 키웠다. 이후 무역전쟁은 경제학계의 주요 연구 주제가 된 것은 물론 양국의 정치적 퍼포먼스에도 이용됐다.

두 나라 중 누가 승리했는지 그 대답은 놀라울 정도로 복잡하며 관세를 무기처럼 휘두르려는 많은 국가에 교훈을 제공하고 있다고 최근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보도했다. 베트남이 미·중 무역전쟁에 어부지리를 얻었다는 정황도 분명하다.

미국, 대중국 압박 총력전 실패로 끝나


무역전쟁은 양측 모두의 비용을 증가시켜서 승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경제학자들의 일반적인 생각이다. 만약 그렇다면 중국산 수입품의 75%에 관세를 부과한 미국은 패배한 것이라고 WSJ는 지적했다.

미국이 패배했다는 증거는 곳곳에서 볼 수 있다. 도널드 트럼프 전 정부 고위 관리들은 2018년 5월 베이징을 방문하는 동안 대중 무역적자 2000억 달러(약 253조 원) 감축, 첨단기술 보조금 중단, 미국 기업에 대한 기술 이전 압력 중단, 지식재산권 보호 강화 등 요구 사항을 제시했다.

목록이 너무 광범위해서 허드슨연구소의 중국 전문가이자 트럼프 전 대통령이 좋아했던 ‘대중 강경파’ 마이클 필스베리마저 “중국인이 워싱턴D.C.에 와서 미국 헌법을 바꾸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고 표현할 정도였다.

트럼프 전 정권은 중국 정부를 압박하기 위해 4차례에 걸쳐 관세를 인상했다. 그 결과 중국산 제품에 대한 평균 관세율은 3.1%에서 21%로 높아졌다. 중국도 유사한 관세로 보복했다.

양국은 2020년 1월 1단계 무역협정에 서명, 일시적으로 정전했다. 그러나 거의 모든 관세가 유지돼 중국에 대한 미국의 압력은 계속됐다.

또 중국은 1단계 합의에서 2년에 걸쳐 2000억 달러에 달하는 미국 제품을 추가로 수입하기로 했지만, 약속한 것보다 40%나 부족하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에 따르면 기술 이전 압력이나 기술 절취, 기타 불법 행위에 대해서도 중국의 진전은 거의 없었다.

트럼프 시절 무역 협상팀의 일원이었으며 현재 로펌 에이킨검프 파트너인 클레트 윌렘스는 “분명히 중국은 변하지 않았다”며 “아직 무역전쟁 승자가 누구인지 선언하기는 이르지만, 우리가 더 많은 비용을 치렀음에도 그들은 동일한 정책을 시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조 바이든 행정부는 인플레이션 압박에 대중국 관세 일부를 철회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

중국도 패배한 것은 마찬가지…“GDP 손실 미국 3배 달할 것”


중국이 패했음을 보여주는 데이터도 풍부하다. 중국 경제는 성장에 있어서 미국보다 더 무역에 의존하고 있어서 관세는 그만큼 중국을 더 취약하게 만든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중국인들이 먼저 총알이 바닥날 것”이라고 말할 때 이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고 WSJ는 전했다.

베이징대와 푸단대 등 중국 유수의 대학 경제학자들에 따르면 미국 관세 표적이 된 중국 기업은 대미 수출과 고용이 감소한 것은 물론 연구·개발(R&D) 예산도 축소를 강요당하고 있다.

푸단대 경제학 교수인 양저우는 “무역전쟁에서 전체적으로 중국의 국내총생산(GDP) 손실은 미국의 3배에 달한다”고 추정했다.

미국 다트머스대의 경제학자인 데이빈 쵸와 홍콩대의 리빙징은 중국의 공식 통계가 소위 ‘조작과 검열’ 대상이 될 수 있음을 우려해 중국 밤하늘에 대한 위성 이미지를 연구했다. 그 결과 관세가 부과된 산업지역이 그렇지 않은 지역보다 밝기가 적은 것이 현저해지고 있어 경제활동 저하가 확인됐다고 밝혔다. 또 관세 대상 지역에서의 1인당 수입은 그렇지 않은 지역에 비해 2.6% 감소했다.

시진핑 국가주석 등 지도부는 무역전쟁이 자신들에게 중요한 정치적 이익을 가져다 준 것으로 보고 있다고 WSJ는 전했다. 중국이 홍콩 국가보안법을 밀어붙였던 2020년 여름 미국이 홍콩 자치를 지키려는 노력을 그다지 많이 하지 않은 것은 1단계 무역합의가 취소될 가능성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 중국 관리들은 자국 제품에 대한 관세로 미국의 물가가 가파르게 오르고 인플레이션은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바이든 정부에 강력한 위협이 되고 있다는 점을 들면서 무역전쟁이 미국에 더 큰 상처를 주고 있다고 믿고 있다.

여전히 무역전쟁으로 중국은 미국산 기술에 대한 의존도를 낮출 필요성이 더 강해졌으며 이를 위해 국가주도의 경제모델에 더 주력하게 됐다. 트럼프 전 정권이 바꾸려고 했던 그 경제모델이다.

진정한 승자는 베트남


컨설팅 업체 커니 분석에 따르면 관세가 중국산 수입 비용을 증가시켜 중국은 2018년 대비 2021년에 미국에 공산품을 500억 달러 덜 출하했다. 같은 기간 미국 관세 부담이 덜한 베트남은 미국으로의 공산품 출하량을 500억 달러 더 늘렸다.

베트남은 무역전쟁 이전부터 제조업 거점이었지만, 이전에는 의류나 가구 등 노동집약형 산업이 중심이었다면 현재는 한국 삼성전자와 미국 인텔이 거액의 투자를 하는 전자제품 수출 거점으로도 떠오르고 있다.

무역전쟁 기간 미국의 대베트남 무역적자는 폭발적으로 늘어 약 3배 증가한 900억 달러에 달했다.

트럼프 전 정권 시절 USTR는 베트남도 주목해 관세 발동도 염두에 두고 무역 관행에 관한 2개의 조사를 시작했다. 그러나 대중국 견제에 있어서 베트남과 연계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바이든 정권은 조사도 중단했다.

미국만 베트남에 집착하는 것은 아니다. 중국 제조업체들도 베트남에 잇따라 생산 거점을 신설하고 있다. 커니는 베트남의 대미 수출 증가분 절반 이상을 중국계 기업 공장이 차지하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중국의 베트남 투자는 2017년 이후 두 배 늘어 2020년에는 19억 달러에 달했다.

[이투데이/배준호 기자 (baejh94@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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