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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너머 탱크 보인 날, 친구는 남고 우린 한국으로 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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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커버스토리

광주 온 우크라 난민 10대들 만나보니

친구 좋아하는 평범한 중학생들

전쟁 뒤 폴란드 등 거쳐 한국행

참전한 부모와 헤어지고 오기도

“체리 무르익은 고향이 그리워”


한겨레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을 피해 한국으로 온 고려인 청소년 김알비나(왼쪽부터), 최마르크, 코가이 올레그, 야놉스카야 아나스타샤가 광주고려인마을 종합지원센터 2층 사무실에서 전쟁 전후의 생활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 모였다. 광주/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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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10일 오후 6시, 광주고려인마을 종합지원센터 2층 사무실. 전쟁을 피해 한국에 온 우크라이나 고려인 청소년 4명이 모인 이곳이 순식간에 떠들썩해졌다. 이들은 지난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3월 초부터 4월 중순에 걸쳐 고향에서 탈출했다. 루마니아, 몰도바, 폴란드 등을 거쳐 이들이 도착한 곳은 한국이었다. 전쟁으로부터 90여일. 전쟁 난민이 된 것도, 한국행도, 이들에게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여전히 모든 게 갑작스럽지만, 조금씩 한국 생활을 익혀가고 있다. 이들이 경험한 전쟁, 그리고 한국에서의 삶에 대해 들어봤다.

―자기소개를 부탁할까요?

김알비나(알비나) : 4월 중순에 왔고요. 원래 중학교 2학년, 14살이고, 여기에 와서는 1학년으로 편입했습니다.

최마르크(마르크) : 저는 3월 중순에 왔어요. 13살입니다.

코가이 올레그(올레그) : 저는 11살, 아이티(IT) 쪽 기술자를 하고 싶은데. 공부를 잘하지는 못해요.(웃음)

야놉스카야 아나스타샤(아나스타샤) : 동생이랑 같이 왔어요. 13살이고요.

―전쟁 전 우크라이나에서 생활은 어땠나요?

마르크 : 학교 다니는, 그냥 평범한 학생이었죠.

올레그 : 친구들이랑 몰려다니기 좋아했어요, 저는.

알비나 : 전쟁을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한적한 시골에 살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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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포격 소리, 그리고 피란


넷 모두 우크라이나 남부 미콜라이우에서 왔다. 하지만 하나같이 (러시아식 지명인) “니콜라예프에서 왔다”고 했다. 이들이 우크라이나 안에서 러시아어를 주로 쓰는 소수민족이라는 사실을 의미하기도 한다.

―전쟁이다, 이렇게 느꼈던 순간이 기억나요?

마르크 : 텔레비전?

알비나 : 어느날 새벽 크게 울린 천둥소리요.

―천둥소리요?

알비나 : 쿵, 소리가 들려 시계를 보니 새벽 6시였어요. 다시 쿵, 하길래 바깥을 보니 화창해서 아무래도 이상하다 싶어 일어나 텔레비전을 켰더니, 전쟁 얘기가 나오더라고요. 폭탄 소리가 그렇게 클 줄은 몰랐는데….

러시아는 침공 개시 이틀 뒤인 2월26일 크림반도에 있던 대규모 군 전력을 우크라이나 드니프로강 쪽으로 전개했다. ‘흑해의 진주’라고 불리며 우크라이나 교통과 물류의 중심인 전략 요충 항구도시 오데사를 노린 것이다. 오데사로 가는 길목인 미콜라이우에도 폭격이 집중됐다. 도심 외곽에 살던 알비나가 들은 소리는 이즈음 교전에서 일어난 폭발음으로 보인다.

아나스타샤 : 엄마가 깨우더라고요. 느닷없이. “떠나야 한다”면서. 진짜 전쟁이 났나 보다 했죠.

올레그 : 가족들이랑 막 짐을 싸면서 느꼈죠.

―떠나던 날 얘기를 좀 더 들려준다면요?

아나스타샤 : (정신을 차려보니) 총소리에, 폭탄 소리까지.

마르크 : 엄마가 그러더라고요. “다시 돌아올 거야. 걱정하지 마. 우리 다시 만날 거야.”

알비나 : 창 너머로 탱크가 보이기 시작한 날, 가족 모두 떠나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친구, 친척들과 작별 인사도 제대로 못 했겠네요.

마르크 : 친구 대부분 우크라이나에 남았어요. 지금도 항상 연락하려 하고요.

―지금 연락을 할 수 있다고요?

알비나 : 인스타그램 있잖아요. 안부도 서로 묻고 그러는데.

아나스타샤 : 저도 디엠(에스엔에스상 메시지)으로.

―떠나면서 가장 안타까웠던 건 뭔가요?

마르크 : 엄마가 남았어요.

―함께 나오지 못했나요?

마르크 : 군인이거든요. (마르크 엄마는 아들의 탈출을 도운 뒤 전장으로 향했다.)

올레그 : 할머니가 고향에 남을 테니 돌아오라고….

아나스타샤 : 우린 아빠가 남았는데…. 아빤 비행기표를 구하지 못했거든요. 아빠 보고 싶어.

장난기 가득한 아나스타샤 얼굴에 그늘이 졌다. 표를 구했더라도 아나스타샤 아빠는 국경을 넘지는 못했을 것이다. 계엄령이 떨어진 우크라이나에서 성인 남성은 강제 징집 대상이다. 마르크도, 알비나도 얼굴이 어두워졌다.

―남은 사람들이랑 집이 그립겠네요.

마르크 : 저는 넒은 우리 집 마당이 기억에 생생해요.

―왜요?

마르크 : 딸기, 체리, 사과… 정말 없는 게 없어요.

우크라이나 평원은 비옥한 흑토다. 전세계 밀·옥수수 곡물 수출량의 1할 안팎을 차지하는 곡창지대다. ‘유럽의 빵 바구니’로 불리는 까닭이다. 과일 산지로도 유명하다. 고향은 곧 체리 철이다. 마르크는 체리를 입에 가득 넣은 듯 볼을 부풀리며 익살스럽게 웃었다.

―한국 와서 가장 먼저 한 일이 기억나요?

아나스타샤 : 인터넷 켜서 새로운 친구부터 찾았죠.

올레그 : 저도요.

―어떤 친구?

올레그 : 한국 친구들요.

휴대전화는 낯선 세계의 불안을 잠식하는 요술 지팡이 노릇을 했다. “입국하자마자 휴대전화를 통해 고려인 청소년 커뮤니티에 초대됐”(알비나)고, “한국에 이미 들어와 있던 우즈베키스탄 고려인 친구에게 한국 생활 ‘요령’을 배웠”(아나스타샤)다. 자연스럽게 지난 어린이날, 친구들과 시내 구경을 다녀온 얘기로 이어졌다.

―어린이날은 즐거웠나요?

아나스타샤 : 그렇긴 했지만…. 우크라이나였다면 친구들이랑 콘서트를 갔을걸요.

올레그 : 우크라이나에도 어린이날이 있거든요.

이구동성 : 6월1일!

올레그 올해도 스카스카(Skazka Children Park City·놀이공원)에 갔을 텐데.

―새 친구들은 좀 사귀었나요?

알비나 : (새날)학교에서 만났죠.

아나스타샤 : 아, 학교에 가고 싶어요. 친구들이랑 어울리고 싶어요.

올레그 : 저도요.

한겨레

알비나는 인터뷰 직전까지 한국어 공부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광주/ 이정용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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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가서, 친구 만나고 싶어요”


광주시교육청은 최마르크를 비롯한 학령기 전쟁난민이 입국하자 곧바로 학교 등록 절차를 간소화했다. 이전 학교 성적증명서 등이 없더라도 여권, 출입국 서류, 국내 체류 관련 서류 등으로 학력심의위원회를 거쳐 학교를 다닐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마르크와 알비나가 이에 해당한다. 하지만 아나스타샤처럼 우크라이나 국경을 넘으면서 차와 중요한 물건이 담긴 짐조차 급히 버려야 했던 경우가 흔하다. 올레그도 마찬가지다. 둘은 “학교에 가고 싶다”는 말을 반복했다. 아나스타샤와 올레그의 바람은 국제인권규약, 유엔 아동권리협약·이주노동자권리협약 등에서 “즉각적이고 개별적인” 권리로 규정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지금 이후 어떤 일이 하고 싶나요?

아나스타샤 : 집에 가고 싶어요.

알비나 : 우크라이나에 있을 때는 경찰이 되고 싶었어요. 여기 와서는 통역사 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죠.

알비나가 장래희망을 얘기하자 너 나 할 것 없이 한마디 거든다.

아나스타샤 : 저도 경찰요.

마르크 : 원래는 운동선수를 하고 싶었는데, 요즘은 요리사요.

6월이 다 되도록 “학교에 가고 싶다”는 아나스타샤와 올레그의 바람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주아동교육권은 국제인권규약, 유엔 아동권리협약·이주노동자권리협약 등에서 “즉각적이고 개별적인” 권리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광주고려인마을은 우크라이나를 탈출해 한국으로 오길 원하는 고려인에게 항공권을 무상으로 보내기 위한 성금을 모금 중이다. (농협 351-0706-6907-63 예금주:사)고려인마을) 관련한 문의는 고려인마을(062-961-1925).
광주/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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