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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안보리 대북제재, 中·러 반대로 첫 부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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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北 도발 상황서 깊은 유감”

조선일보

지난 26일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의. /유엔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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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26일(현지 시각) 북한의 유류 수입 허용량을 줄이는 내용의 대북 추가 제재 결의안을 표결에 부쳤지만 중국과 러시아의 반대로 무산됐다. 안보리의 대북 제재 결의안이 부결된 것은 처음이다. 미·중 갈등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 서방과 중·러 사이 신냉전 기류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되며, 안보리 개혁 논의도 본격화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날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안보리 대북 제재안 표결에서 이사국 15국 중 13국이 찬성해 가결 마지노선(9표 이상)은 넘겼지만 상임이사국으로 비토권을 가진 중·러 2국이 반대했다. 이번 결의안은 북한이 지난 25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를 포함, 올해 들어 탄도미사일을 17차례에 걸쳐 23발 쏜 데 따라 추진됐다. ‘북한이 ICBM을 쏠 경우 대북 유류 공급 제재 강화를 자동으로 논의한다’는 기존 대북 제재 2397호의 ‘유류 트리거 조항’이 근거가 됐다.

외교부는 27일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 도발이 지속되고 핵실험 가능성도 제기되는 상황에서 안보리 신규 대북 제재 결의가 채택되지 못한 데 깊은 유감을 표한다”며 “우리 정부는 이번 표결에서 나타난 대다수 이사국의 의지를 바탕으로, 북한이 안보리 결의 위반 행위를 중단하고 비핵화의 길로 돌아올 수 있도록 국제사회와 공조해나가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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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지난 25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한국과 일본 순방 직후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안 화성-17형 등 탄도미사일 3발을 쏘아 올리는 무력시위를 감행했다. 이들 미사일은 모두 핵탄두 탑재가 가능하다. 사진은 지난 3월 24일 화성-17형 발사 장면. /노동신문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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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안보리는 지난 2006년 북한의 대포동 2호 발사와 1차 핵실험 이래 2017년까지 북한의 주요 도발 때마다 상정된 11건의 대북 제재를 매번 만장일치로 채택해왔다. 26일 표결은 5년 만의 안보리 표결이었다. 기존 제재 결의를 자동 업데이트(유류 트리거)하는 내용이 핵심인 데다, 기존 제재에 비해 특별히 강도가 높다고 해석될 만한 조항도 없었다. 그러나 중국과 러시아는 5년 전과 달리 완강히 반대했다. 올 들어 안보리는 이 두 나라의 반대로 북한 미사일 발사 규탄 성명조차 내지 못했다. 북한의 7차 핵실험 가능성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중국 등이 북한에 계속 면죄부를 줄 것이란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미국이 주도한 이번 결의안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쓰이는 핵심 연료인 유류 수입의 상한선을 기존 연 400만 배럴에서 300만 배럴로, 정제유 수입 상한선을 50만 배럴에서 37만500배럴로 각각 줄이는 내용이 골자다. 북한에 광물 연료와 광유(석유에서 얻는 탄화수소 혼합액), 이들을 증류한 제품, 시계 제품과 부품 등을 수출하지 못하도록 하고, 흡연자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겨냥해 국제사회가 북한에 담뱃잎과 담배 제품을 수출하지 못하게 막는 방안도 담겼다. 북 정찰총국과 연계된 국제 해킹단체 라자루스, 해외 노동자를 파견하는 조선남강 무역회사, 북한의 군사 기술 수출을 지원하는 해금강 무역회사, 탄도미사일 개발을 주도하는 군수공업부의 베트남 대표 김수일을 자산 동결 대상에 추가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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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쥔 유엔 주재 중국대사가 26일(현지 시각)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대북 추가 제재 결의안 채택이 불발된 뒤 "추가 대북 제재는 상황을 악화시킬 뿐"이라며 이번 결의안을 주도한 미국을 비판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 /유엔 제공=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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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리 대북 제재안이 16년 만에 처음 부결된 것은 최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둘러싼 국제사회 대립, 무역·안보 관련 미국과 중국의 갈등 격화가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다. 이날 장쥔 주유엔 중국 대사는 “이번 표결은 (자유 진영이) 북한과 한반도 상황을 자신들의 전략적·지정학적 어젠다 카드로 이용하려는 시도”라면서 “추가 대북 제재는 상황을 악화시킬 뿐이며, 오히려 제재 완화로 북한에 희망을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린다 토머스-그린필드 주유엔 미국 대사는 “세계는 북한의 분명하고 현존하는 위험에 직면해있다”며 “북한은 안보리의 침묵을 아무런 벌을 받지 않고 한반도 긴장을 고조해도 된다는 청신호로 받아들이고 있다. 실망스러운 날”이라고 말했다.

이번 유엔 안보리 표결에서 중국과 러시아의 반대가 예상됐는데도 5월 안보리 의장국인 미국과 영국, 프랑스 등은 표결을 강행했다. 북한의 무력 도발을 방치한 주체가 누구인지 기록을 남기는 데 의미를 뒀다는 말도 나온다. 지난달 유엔 총회에서 ‘안보리 상임이사국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총회에서 해당 문제를 토론해야 한다’는 규정이 채택됐기 때문에, 향후 총회에서 중국 등이 거부권 행사 이유를 밝히거나 다른 회원국들이 이 문제를 공개 규탄할 가능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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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 출범 이래 한국 외교부와 유엔 대표부는 미국과 대북 제재 등 국제 현안 논의에 빈틈없이 발맞추고 있다. 지난 11일 뉴욕 유엔본부에서 북한의 ICBM 발사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열린 안보리 회의에서 한국과 미국의 주유엔 대사가 주먹 인사를 하고 있다. 한국은 안보리 이사국이 아니지만 한반도 문제 당사자로 이날 회의에 참석했다. /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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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로 유엔 무용론과 안보리 개혁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이번 안보리의 대북 제재 무산이 이런 논의를 부채질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과 자유 진영은 77년 전 제2차 세계대전 승전국 중심으로 설계된 현 유엔 안보리 구도에 문제가 있다고 보고, 독일과 일본 등의 상임이사국 추가 편입을 물밑 논의 중이다. 실제로 일본은 최근 미·일 정상회담에서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의 일본 상임이사국 진출 지지를 받아냈다.

한편 불법 핵 확산을 주도하는 북한이 오는 30일부터 6월 24일까지 유엔 제네바 군축회의에서 알파벳 순서에 따라 순회 의장국을 맡게 돼 논란이 일고 있다. 유엔 군축회의는 65국이 가입한 세계 유일의 다자간 군축 협상 기구로, 각국 군비 축소와 비확산 의제를 다룬다. 제네바에 본부를 둔 유엔 감시기구 유엔워치는 “북한은 세계 최고의 무기 확산국”이라며 “유엔 사무총장이 북한의 군축회의 의장직 수임을 보이콧하고, 모든 회원국이 군축회의에 대사 파견을 거부해달라”고 요구했다.

[뉴욕=정시행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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