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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최신 총기 팝니다"…참사 나흘만에 텍사스서 총기박람회 강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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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진 기자(hjkim@pressian.com)]
미국 텍사스주 유밸디 롭 초등학교 4학년인 젬마 로페즈(10)는 24일(현지시각) 교내 어딘가에서 "폭죽소리"처럼 들리는 큰 소리를 듣고 침착하게 교실 불을 끄고 책상 밑으로 숨었다. 이 시각 이 학교에선 초등생 19명과 교사 2명의 목숨을 앗아간 총기난사가 벌어지고 있었다. 로페즈는 <뉴욕타임스>(NYT)에 학교 총격에 대비해 "유치원 때부터 연습을 많이 했다"며 배운대로 행동했다고 말했다. 스스로 "쉽게 겁을 먹지 않는다"고 말한 로페즈는 다른 급우들이 겁에 질려 소리칠 때 "조용하게 있어야 한다"고 다독였다고 한다. 하지만 총소리가 계속되자 눈물이 나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결국 경찰관이 교실로 들어와 길 건너편 장례식장으로 서둘러 피하라고 말했고, 10살인 로페즈는 "태어나서 제일 빨리 뛰었다." 대피에 성공했지만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그 남자(총격 용의자)가 장례식장까지 올 것 같았어요."

적어도 21명의 목숨을 앗아간 총격 사건 뒤 생존자와 유가족의 안타까운 사연이 이어지고 있다. 26일엔 총격으로 희생된 교사 이르마 가르시아(48)의 남편 조 가르시아(50)가 심장마비로 숨졌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르마의 조카인 존 마르티네즈는 소셜미디어(SNS)에 조가 "슬픔으로 인해 세상을 떠났다"며 비통해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조가 이날 오전 롭 초등학교 밖에 마련된 총격 희생자 추모비에 꽃을 바치고 집에 돌아온 직후 부엌에서 갑자기 쓰러진 뒤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숨졌다고 보도했다. 전날 마르티네즈는 매체에 23년 교직 생활 전부를 롭 초등학교에서 보낸 이르마가 "아이들을 단지 학생이 아니라 본인의 자녀처럼 여겼고 아이들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쳤다"고 말했다. 20년 넘게 결혼생활을 이어 온 조와 이르마 부부에게는 12살 막내를 비롯해 4명의 자녀가 있으며 조는 식료품점에서 일했다. 친족들은 며칠새 부모 모두를 잃은 자녀들을 위한 모금을 진행 중이다.

또 다른 교사 희생자 에바 미렐레스(44)의 딸 아달린 루이즈는 소셜미디어에 "자신이 어떻게 될지 상관하지 않고 학생들을 지키기 위해 뛰어들었다"며 "엄마, 당신은 영웅이에요"라고 썼다. 희생된 10살 아동 우지야 가르시아의 할아버지는 가르시아가 "내 손자라서 하는 말이 아니라 내 평생 가장 사랑스러운 소년"이었다고 <AP>에 말했다.

참사 3일째인 26일 텍사스에선 총기난사 때 경찰의 늑장대응 의혹이 도마에 올랐다. <워싱턴포스트> 등 외신을 참조하면 총격 용의자 살바도르 라모스(18)가 24일 오전 집에서 자신의 할머니에게 총을 쏜 뒤 트럭을 몰고 롭 초등학교로 향했다. 텍사스주는 정확한 시각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총상을 입은 라모스의 할머니로부터 신고가 들어왔다고 밝혔다. 할머니는 목숨은 건졌지만 중태로 알려졌다.

이후 학교 근처에서 내린 라모스가 총기를 소지한 것 같다는 신고가 11시28분께 경찰에 접수됐다. 그러나 라모스가 차에서 내려 지나가던 시민 두 명을 쏘고 10여분 뒤 학교에 진입할 때까지 누구도 그를 저지하지 않았다. 빅터 에스칼론 텍사스주 공공안전국장은 라모스가 11시40분께 학교에 들어갈 때 어떤 방해도 없었다고 말했다. 앞서 텍사스 당국은 라모스가 진입할 당시 학교에 배치된 경찰과 맞닥뜨렸다고 발표했는데, 이 정보가 잘못된 것이라고 정정한 것이다. 학교 경찰은 자리에 없었고 교문도 잠겨 있지 않았다. 총격은 라모스가 교문을 통과한지 채 3분이 지나지 않아 시작됐고 학교 쪽은 11시43분에 교내에 총격이 있음을 알렸다.

경찰은 라모스가 학교에 진입한지 4분만인 11시44분에 도착했지만 라모스를 진압한 것은 오후 1시가 넘어서였다. 총격 사실을 듣고 학교 앞에서 발을 동동 구르던 학부모들은 경찰의 대응을 이해할 수 없다고 성토했다. 경찰이 학교에 즉시 진입해 총격을 막는 대신 특수전술팀이 올 때까지 거의 한 시간 동안 기다렸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학부모들은 경찰에 거세게 항의하며 학교에 진입하려 시도하기도 했다.

<워싱턴포스트>는 1999년 컬럼바인고등학교 총기난사 사건 뒤 희생자를 최소화하기 위해 경찰들이 전술팀을 기다리는 대신 학교로 즉각 진입해 가능한 빨리 총격범을 추적하는 훈련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매체는 유밸디 경찰의 자체 지침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텍사스 경찰서장협회가 지역 경찰에 제공한 정책 매뉴얼 예시에는 처음 집결한 2~5명의 경관이 한 팀을 이뤄 구조물에 진입해야 한다고 적혀 있다고 보도했다.

에스칼론은 출동한지 1분만에 두 명의 경찰이 교실에 진입하려 시도하다 총에 맞았고 그 시점에서 전술팀 지원을 요청했으며 현장 경찰들은 학생들을 대피시키는 데 집중했다고 설명했다.

사고 나흘만에 텍사스서 총기박람회 강행…트럼프·텍사스 상원의원 등 총출동

미국총기협회(NRA)는 3일 전에 유밸디에서 일어난 총기참사에도 불구하고 텍사스주 휴스턴에서 27일 예정된 협회 연례회의 및 총기박람회를 강행하기로 했다. 협회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전 대통령, 그레그 에벗 텍사스주지사, 텍사스가 지역구인 공화당 테드 크루즈와 존 코닌 공화당 상원의원 및 댄 크렌쇼 공화당 하원의원, 크리스티 노엠 사우스다코타주지사 등 여러 저명인사들이 행사에서 연설할 예정이라고 공지했다. <AP> 통신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총격 사건 하루 뒤인 25일 행사에 여전히 행사에 참석할 의향이 있다고 말했고 노엠도 참석 예정이라고 26일 보도했다.

사건 발생지인 텍사스 의원들과 주지사는 다소 여론의 눈치를 살피는 듯 했다. <AP>는 코닌 상원의원과 크렌쇼 하원의원이 일정 문제로 이번 행사에 참석하지 않기로 했다고 전했다. 애벗 주지사는 현장에 참석하진 않고 사전 녹화한 영상을 대신 보내기로 했다고 <뉴욕타임스>가 보도했다. 애벗은 대신 27일 오후 유밸디를 방문해 기자회견을 가질 예정이다. 그러나 크루즈 상원의원은 행사에 참석할 것이라고 확인했다고 미 NBC5 방송이 26일 전했다. 

크루즈는 총기 규제는 학교 총격 사건 예방에 효과가 없고 민주당의 "정치적" 의제일 뿐이며 오히려 학교에 무장 인력을 늘리는 것이 학생들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길이라고 거듭 주장해 왔다. 이날 미국에선 크루즈의 외신기자와의 인터뷰 영상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26일 영국 매체 스카이뉴스 기자가 "이제 총기법을 개혁해야 할 때가 아닌지 묻고 싶다"며 "왜 이런 일이 오직 미국에서만 일어나는지 설명해 달라. 왜 미국예외주의는 이렇게 끔찍한가"라고 묻자 크루즈는 "당신의 정치적 의제일 뿐"이며 "미국예외주의가 끔찍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유감"이라며 돌아섰다. 이에 기자가 "답할 수가 없는 것 아닌가"라고 되묻자 크루즈는 다시 기자에게 가서 격앙된 어조로 "왜 전 세계 사람들이 미국으로 오는지 아나? 여기가 지구상에서 가장 자유롭고 안전하고 번영한 나라이기 때문이다. 선동은 그만두라"고 말했다. CNN은 크루즈가 결국 왜 미국에서만 이런 식의 총기참사가 반복되는지에 대한 질문에 대한 답변은 거부한 셈이라고 보도했다.

미국총기협회는 홈페이지 첫 화면에서 유밸디 총기참사 희생자들에 대한 애도 성명과 3일간 열리는 이번 총기박람회 행사 안내를 함께 배치했다. 협회는 상단의 성명을 통해 총격 사건의 "희생자와 가족들에게 조의를 표한다"며 "수사가 진행 중이지만 우리는 이것이 고독한 정신이상자의 소행임을 안다. 우리는 여기 휴스턴에 모여 애국적 회원들과 함께 학교를 안전하게 만들기 위한 우리의 서약을 더 강하게 지키기로 약속할 것"이라고 밝힌 뒤 바로 밑에서 이번 행사에서 "업계 가장 유명한 회사들의 최신 총기를 선보일 것"이라며 행사를 홍보했다.

10살 이하의 어린이들이 다수 사망한 이번 참사를 계기로 지금까지 많은 총기규제 법안을 좌절시킨 미 상원에서 규제에 대한 합의가 나올 수 있을지 관심이 모인다. <뉴욕타임스>는 26일 민주당과 공화당이 소수의 초당파적 협의체를 꾸려 총기 구매시 신원조회 범위를 확장하고 잠재적 위험인물의 총기 소지를 제한하는 소위 '적기법(red flag laws)'에 대한 논의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그러나 영국 일간 <가디언>은 최소 17명이 숨진 2018년 플로리다주 파크랜드 고교 총기참사 뒤에도 총기규제에 관한 초당적 협의가 이뤄졌지만 트럼프 당시 대통령에 대한 탄핵 의제가 부상하면서 흐지부지된 바 있다고 지적했다.

프레시안

▲26일(현지시각) 미국 텍사스 유밸디에 세워진 추모비 앞에서 친구를 잃은 아동이 울고 있다. 24일 이 지역 롭 초등학교에 총격범이 난입해 최소 21명이 숨졌다.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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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진 기자(hjkim@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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