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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7 (수)

“죽거나 다치지 않는다고 아동학대가 아닌 건 아니다”[플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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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100번째 어린이날(5월5일)을 맞아, 방송에서도 다양한 프로그램을 내놨다. 특선 영화를 비롯해 동요 만들기, 신동 소개 등 밝은 분위기의 방송들이 넘쳤다. 교육채널 EBS는 조금 달랐다. <다큐프라임>에서 지난 9일부터 6부작 특집 프로그램을 내놨는데 제목은 ‘어린人권’이다. 대한민국 아동인권의 현주소를 살펴보는 기획으로, 초점은 아동학대에 맞춰져 있다. 조금은 무거운 주제를 어린이날 100주년에 들고 나온 이유는 무엇일까. 프로그램을 연출하고 있는 빈정현 PD를 전화로 인터뷰했다. 그는 “이번 기획은 양천구 정인양 아동학대 사건에서 비롯됐다”고 말했다.

기획은 지난해 3월부터 준비됐다. 2020년 10월 양부모의 학대로 사망한 ‘정인양’ 사건이 사회문제가 되던 때다. 빈 PD는 “EBS에서도 정인양 사건에 대응할 만한 프로그램을 내놔야 하지 않냐는 지시가 있었다. 준비를 하면서 마침 2022년에 어린이날 100주년도 되니, 기획을 키워보는 것이 좋겠다고 건의해 6부작 시리즈가 됐다”고 말했다. 배우 이영애가 시리즈의 내레이션을 맡았다. 이씨가 정인양의 묘소를 찾는 등 아동인권에 대한 관심을 보여왔기 때문에 제작진에서 먼저 연락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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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의 어린이날 100주년 기획 <다큐프라임 -어린人권>에 출연한 ‘어른이 된 아동학대 피해자’들. 방송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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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아동학대 자진신고 1년의 기록: 내 이웃의 아이’에서는 아동학대를 자진신고한 부모와 아이의 1년의 기록을 담았다. 2부 ‘살아남은 아이들’은 어른이 된 아동학대 피해자들의 인터뷰를 주로 내보냈다. 3부에서는 한국의 아동인권 100년사를, 4부는 아이에 대한 ‘잔소리’를 키워드로 어린이를 미숙한 존재로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을 짚어봤다. 5부는 아동학대를 당하는 아이를 발견하고 신고해 구해낸 선생님의 이야기였다.

24일 방송되는 시리즈의 마지막회에는 오랫동안 소년범을 만나온 ‘호통 판사’ 천종호 판사 등 다양한 인물들을 만나 아이들을 위해 어른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 살펴본다.

제목을 ‘어린人권’이라 정한 이유에 대해서는 “어린 사람의 인권이라는 것과, 어린이들의 인권 자체가 어리고 유약한 한국 사회의 상황을 담고 싶었다”고 했다. 시리즈 6회 중 절반 이상이 아동학대와 관련된 내용으로 채워진 것에 대해서 빈 PD는 “EBS가 학교 교육의 이야기를 많이 다뤘는데, 취재하면서 아이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장소, 영향받는 존재는 누구인가 생각해 보니 가정과 부모였다. ‘집 안의 인권’에 대해서 다루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며 “그동안 EBS가 아동학대에 대한 탐사보도가 많은 회사는 아니었으니 부담이 있기도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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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의 어린이날 100주년 기획 <다큐프라임 -어린人권>을 연출한 빈정현 PD. 본인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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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부에서 다룬 가정 내 잔소리와 체벌 문제가 특히 주제 의식을 많이 담고 있다고 했다. 빈 PD는 “심각한 아동학대 사건을 뉴스로 보면서 사람들은 분노한다. 그리고 ‘저런 일에 비하면 내가 아이에게 하는 일은 아동학대가 아니다. 별것이 아니다’라고 생각하곤 한다”며 “그러나 경찰에 신고된 아동학대 사건의 상당수가 죽음이나 큰 상해까지 가지 않는 어찌 보면 사소한 사건들이다. ‘아동학대라는 게 남일이 아니다’라는, 나 역시 해당할 수 있다는 뜻으로 담론을 확대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시리즈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촉법소년 연령 하향, 노키즈존 논란 등 어린이와 청소년 문제에 대한 엄격한 기준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커졌다. 최근엔 오은영 박사가 출연한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의 애티켓(아이+에티켓) 캠페인을 두고도 비판 목소리가 나왔다. 캠페인에 오 박사가 식당이나 공원에서 아이가 서투른 행동을 할 때 어른들이 “괜찮아”라고 먼저 말해주라는 내용이 담겼는데, 이를 두고 ‘아이의 잘못은 엄격히 꾸짖어야 한다’, ‘부모가 먼저 사과해야 한다’는 의견이 상당수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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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의 어린이날 100주년 기획 <다큐프라임 -어린人권>에 출연한 ‘어른이 된 아동학대 피해자’들. 방송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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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PD는 “ ‘어린 세대는 나를 귀찮게 하는 존재’라는 어린이와 청소년에 대한 분노와 혐오의 시선이 있는 것 같다”며 “6부의 천종호 판사를 인터뷰할 때, 판사께서 촉법소년 연령 하향 등 아이들에 대한 형사처벌을 강화하려면 그들에게 투표권이 있어야 한다는 말을 하셨다. 죄에는 엄격함이 필요하지만, 아이들이 잘못되지 않도록 어른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먼저 생각하는 사회여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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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를 하며 한국 사회가 어린이를 바라보는 시선을 개선해야 한다는 깨달음도 얻었다. 그는 “흔히 ‘어린이는 우리의 미래’라고 말하는데, 어린이는 우리의 미래가 아니라 그 현재를 살고 있는 하나의 존재”라며 “어린이들이 지금 현재에 좀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사회가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희진 기자 gojin@khan.kr

플랫팀 twitter.com/flatflat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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