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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정치인 박지현’을 보는 n개의 시선…문자폭탄에도 연대는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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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번방 추적 활동가가 정치인으로

소모되던 청년 정치인과 다른 길


한겨레

박지현 더불어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오른쪽)이 지난 23일 오후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을 찾아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3주기 추도식에 입장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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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현 위원장은 비상대책위원중에서도 가장 나이가 어리고 여성이고 파격이다, 이렇게 생각하실 수는 있겠습니다만 (중략) 앞으로 우리 당이 2030세대가 보다 더 가까이 할 수 있는 정당으로 쇄신해 나갈 것이라는 방향성을 예고한 것입니다.”

대선 패배 직후인 지난 3월13일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은 박지현 공동비대위원장 인선을 발표하면서 이런 기대를 밝혔다. ‘엔(n)번방 사건’을 최초 보도한 ‘추적단 불꽃’의 활동가 박 위원장이 영입될 때 정치권에선 ‘선거용 총알받이’가 될 거란 전망도 있었지만 그는 여느 청년 영입인사들과 다른 길을 택했다. 선거에 패배한 민주당이 급하게 추진하는 검찰 수사-기소권 분리 입법에 쓴소리를 하고, 당이 미적대는 차별금지법 입법을 지속적으로 압박했다. 민주당 의원들의 성폭력 문제에 ‘무관용’ 원칙에 입각한 비판과 사과를 거듭 내놨다.

그가 지난 24일 민주당의 ‘내로남불’을 반성하며 대국민 호소문을 낸 데 이어 25일 지도부 내 논의가 숙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우리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구체적으로 사과하고, 당 쇄신에 대한 대국민 서약을 해야 한다”고 밝히자 민주당 내에선 ‘올 것이 왔다’는 반응이 나왔다. 지난 두 달여 비대위를 끌어오는 동안, 비공개 회의에서도 ‘바지 사장’ 노릇에 그치지 않고 공세적으로 의견을 내놔 “할 말은 하는 엠제트(MZ) 세대”의 모습을 보여주며 아슬아슬한 상황을 연출해왔기 때문이다. 박 위원장과 가까운 당직자는 “(박 위원장과 기존 지도부 간의) 논쟁이 끝나지 않는 탓에 통상 30분이면 끝나는 비대위 비공개 회의가 3시간씩 걸린 게 전조라면 전조일 것”이라고 전했다. 그는 26일 당 윤리심판원에 회부된 최강욱 의원의 성희롱 사건에 대해 ‘비상징계권’을 거론하며 지방선거 이전에 징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박 위원장의 행보를 긍정적으로 보는 쪽은 그를 향해 “기개가 있다”거나 “정무감각을 타고났다”고 평가한다. 그동안 비대위에서 내놓은 날카로운 메시지들도 대부분 박 위원장 스스로 고민한 결과라고 한다. 민주당 관계자는 “먼저 말하지 않았다면 상대 진영에서 공격받을 내용들을 그가 짚고 감으로써 잘 타고 넘어온 면이 있다”며 “외부에서 영입한 청년 여성이 그 정도 얘기도 안하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고 말했다. 일각에선 선거를 코앞에 두고 느닷없이 ‘586 용퇴’를 포함한 쇄신론을 내놓은 박 위원장의 ‘배후’를 의심한다. 박 위원장을 발탁한 이재명 총괄선대위원장이 모종의 목적을 가지고 운을 뗀 것 아니냐는 것이다. 하지만 박 위원장과 가까운 인사는 “이번에 내놓은 쇄신 주장은 박 위원장의 평소 소신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라며 “칼을 뽑았으면 직진하는 스타일”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큰 틀에서 박 위원장의 주장에 동의하는 이들도 선거운동 시기 지도부 안에서 충분히 공유되지 않은 쇄신론에는 아쉬움을 나타낸다. 왜 하필 지금일까. 최근 한달 동안 거듭 불거진 당내 성폭력 문제와, 이를 사과한 박 위원장과 피해자에게 쏟아진 문자폭탄에 단서가 있다. “성범죄자들을 좇는 활동가로 이름을 알린 박 위원장이 희망을 찾아 합류한 민주당에서 목도한 또 다른 폭력에 절망하지 않았겠냐”(민주당 당직자)는 것이다. 박 위원장과 가까운 또 다른 인사도 “그가 정치를 하는 이유의 중핵을 건드린 것”이라고 전했다. 실제로 박 위원장은 25일 밤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성폭력을 징계하겠다는 저에게 쏟아지는 혐오와 차별의 언어는 이준석 지지자들의 것과 다르지 않았고, 제 식구 감싸기와 온정주의는 그들보다 오히려 더 강한 것 같다”, “제가 가장 가슴 아팠던 것은 저를 향한 광기 어린 막말이 아니었다. 그 광기에 익숙해져 버린, 아무도 맞서려 하지 않는 우리 당의 모습이었다”고 밝혔다.

당내 파열음이 커질수록 박 위원장에겐 우군이 줄어드는 분위기다. 한 당직자는 “참 좋은 재능을 갖춘 인재인데 이 혼탁한 정치판에서 저렇게 가면 타버릴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정치적 미래’를 도모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정치인 박지현’에겐 동지가 적지 않다. 트위터에서는 2030 여성들이 ‘#박지현을_지키자’는 해시태그를 달고 지지 선언을 올리고 있다. “박지현이 살아남아야 20대 여성인 나도 한국에서 살아남는다”, “침묵하는 다수 대중, 국민의 마음을 읽어주는 사람을 지지합니다”, “여성들은 더 이상 ‘해일 앞에 조개 줍냐’고 폄하 당해온 역사를 반복할 생각이 없다”는 등의 응원이다. 박 위원장을 저격하는 민주당 강성지지층의 공격에 함께 어깨를 겯고 버텨주는 모양새다. 박 위원장과 가까운 당직자는 “박지현이 (당을) 나가면 민주당을 더 이상 안 뽑는다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으니, 민주당이 어떻게든 변신을 하라는 명령 아니겠냐”고 말했다.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 임재우 기자 abbad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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