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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스웨덴 중립 포기 이어 "오스트리아, 너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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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도, 일반 국민도 "중립이 낫다"곤 하지만…

연임 도전 선언한 대통령의 의중이 핵심 변수

핀란드 대통령과 통화 후 "중립, 당연하진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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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가 중립을 포기하고 나토 합류를 선언할 가능성을 다룬 독일 공영방송 DW(도이체벨레)의 영어판 기사 표제. DW 홈페이지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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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스웨덴과 핀란드의 중립 포기를 낳는 등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질서, 특히 유럽의 안보 지형도가 완전히 무너진 가운데 이제 또다른 중립국 오스트리아에서조차 ‘우리도 중립 노선을 내던져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정부는 “오스트리아가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에 가입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으며 국민 여론도 중립 지지가 우세하지만, 사회지도층 인사들은 “지금 이대로는 안되고 뭔가 새로운 안보대책을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면서 공개적으로 문제 제기를 하고 나섰다.

◆정부도, 일반 국민도 "중립이 낫다"곤 하지만…

26일 독일 공영방송 DW(도이체벨레)가 최근 보도한 ‘오스트리아가 나토 합류를 위해 중립을 포기할 것인가’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면 오스트리아의 정계, 학계, 재계, 그리고 시민단체를 대표하는 저명인사 50명이 최근 알렉산더 판데어벨렌 대통령 앞으로 일종의 공개서한을 띄웠다. 이들 지식인은 서한에서 “오스트리아의 중립 정책이 지금 이 시대에도 과연 적절한 것인지 독립적으로 검토해달라”고 강하게 요구했다.

오스트리아보다 중립의 역사가 훨씬 깊은 스웨덴, 그리고 오스트리아와 비슷한 시기에 중립국이 된 핀란드 이 두 나라가 최근 중립 노선을 과감히 내던지고 나토 회원국 가입을 신청한 사실이 오스트리아 지성계를 뒤흔든 것으로 보인다. 스웨덴·핀란드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2차대전 이후 질서의 붕괴’로 규정하고 “새로운 시대에는 새로운 정책을 택해야 한다”며 나토 가입을 결심했다. 러시아로부터 자국 안보를 지키기 위해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서방 강대국들의 도움을 받겠다는 뜻이다.

오스트리아 정치학자 하인즈 게르트너는 DW와의 인터뷰에서 “오스트리아는 역사적으로 중립을 깨기 위해 여러 가지 노력을 해왔지만 항상 실패했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어떤 주요 정당도 그것(중립 파기)을 원하지 않고 국민 대다수도 원하지 않는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실제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오스트리아 국민의 무려 75%가 “중립을 유지하기를 원한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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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 네함머 오스트리아 총리.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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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으로 드러난 정부 입장 또한 확고하다. 알렉산더 샬렌베르크 오스트리아 외교장관은 최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유럽연합(EU) 회의에서 “오스트리아는 나토에 들어갈 의사가 없다”고 말했다. 카를 네함머 오스트리아 총리 역시 지난 4월 중순 러시아 모스크바를 방문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만난 자리에서 “전쟁을 멈춰달라”고 부탁하며 “오스트리아는 앞으로도 중립을 지킬 것”이라고 거듭 다짐했다.

◆연임 도전 선언한 대통령의 구상이 핵심 변수

오스트리아는 의원내각제에 가까운 정부 형태이나 국민 직선으로 뽑힌 대통령의 권한도 무시할 수 없어 사실상 이원집정제 국가로 분류된다. 기존 중립 노선을 재고하자는 지성계의 요구, 그리고 계속 중립국으로 남는 게 좋다는 일반 국민 및 내각의 정서 사이에서 판데어벨렌 대통령은 고심에 빠진 눈치다. 올해 78세의 판데어벨렌 대통령은 마침 최근 6년 임기의 대통령 재선에 도전할 뜻을 내비친 바 있다. 만약 연임에 성공한다면 오스트리아가 계속 중립국으로 남을지, 아니면 스웨덴·핀란드의 뒤를 따를지는 그의 임기 안에 정해질 공산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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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더 판데어벨렌 오스트리아 대통령. 그는 25일(현지시간) 사울리 니니스퇴 핀란드 대통령과 통화한 뒤 SNS를 통해 “오스트리아와 핀란드는 다르다”면서도 “우리의 중립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없다”고 밝혔다. 판데어벨렌 대통령 SNS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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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인지 판데어벨렌 대통령은 2차대전 후 중립국이 되었다가 최근 이를 포기하고 나토 가입을 신청한 핀란드의 사울리 니니스퇴 대통령한테 25일(현지시간) 전화를 걸어 조언을 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통화 후 그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글에서 “오스트리아의 지리적·역사적 맥락은 핀란드와 크게 다르고, 현 상황에서 오스트리아의 중립은 필수적”이라면서도 “그러나 우리는 우크라이나를 위해 뭔가 해야 한다. 우리의 중립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없다”고 말해 묘한 뉘앙스를 남겼다. 특히 ‘중립이 당연한 것은 아니다’라는 어구는 안보 여건의 변화에 따라 언제든 재검토가 가능하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DW가 인터뷰한 정치학자 게르트너는 오스트리아가 결국 중립을 내던질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 1980년대 말부터 아주 적극적인 구애를 펼친 끝에 1995년 결국 EU 회원국이 된 점에서 보듯 오스트리아는 서방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게 핵심 근거다. 게르트너는 “장차 오스트리아가 지금과 같은 중립을 포기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단언했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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