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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물가와 GDP

짜장면값 올리면 ‘위생’ 보복…민주화 이후 ‘MB물가’ 감시, ‘통계 조정’도[돌아온 인플레이션 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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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짜장면(왼쪽 사진)은 1970년대 정부가 가격을 직접 관리한 대표적 품목이었다. 2011년 물가상승률 조사 구성 품목에서 금반지(가운데)를 제외하자 물가상승률 목표치 4.0%를 맞추기 위한 조치가 아니냐는 의혹을 낳았다. 이명박 정부는 금융위기 이후 물가가 치솟자 배추, 무, 마늘 등 서민 생활과 밀접한 52개 품목으로 구성된 ‘MB물가지수’를 만들고 물가관리에 나섰지만 큰 성과는 없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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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70년대 두 자릿수 상승률
성장 발목 잡을까 긴축은 ‘죄악시’
가격 통제·임금 인상 억제로 관리
1980년대부터 재정지출 틀어막기

지금이야 4%대 물가상승률로도 비명이 쏟아지고 있지만, 1980년대 초까지 한국의 물가상승률은 그야말로 살인적이었다. 특히 1960~70년대는 1973년 3.2%를 제외하면 거의 매년 두 자릿수 물가상승률을 기록했다. 1970년 16%였던 물가상승률은 1971년 13.5%, 1972년 11.7%을 기록했다가 1973년 잠시 내려앉은 뒤 1차 오일쇼크 직후 24~25%대로 치솟았다. 1980년대 초반까지도 물가는 불안정한 상태를 유지하며 상승률이 10%를 웃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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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가난을 벗어나는 것이 국가적 과제이자 사명이었던 시대, 성장의 발목을 잡을 수 있는 긴축은 죄악시됐고 정책 집행의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이 때문에 물가는 ‘안정시키는 것이 아니라, 안정됐다고 느끼도록 만들어야 하는’ 목표에 가까웠다.

■물가관리 단골 정책은 가격통제…가격 인상 중국집에 ‘위생점검’ 보복

정부 수립 직후부터 한국은 지속적으로 물자 부족에 시달렸다. 일본의 패망 이후 산업시설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고, 한국전쟁으로 그나마 남아 있던 시설도 파괴되면서 웃돈을 줘도 물건을 구할 수 없는 고물가 상황이 지속됐다. 이때 정부가 빼든 첫번째 카드가 바로 가격과 임금 통제였다. 값싼 인건비에 기대 경공업부터 일으키려다보니 임금 인상은 최대한 억제됐고, 낮은 임금에도 생활이 가능하도록 물가 역시 낮은 수준으로 관리하는 것이 최대 정책과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60년대 내내 물가는 불안했다. 정부 주도의 경제재건 정책이 지출 확대로 이어지며 시중의 통화량이 폭증했기 때문이다. 한국은행 자료를 보면 1964년 말 617억원이었던 광의통화(M2)는 1969년 6090억원으로 5년 새 10배 가까이 늘어났다.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군사정부가 ‘물가조절 임시조치법’ 같은 서슬 퍼런 가격통제 조치를 실시했음에도, 물가상승률이 1960년대 10% 아래로 떨어진 해가 없었던 이유다.

경공업 기반 경제구조를 중공업으로 전환하는 작업이 한창이던 1970년대에도 이 같은 기조는 이어졌다. 독과점 품목 가격규제나 공공요금 규제, 생활필수품 가격규제 등 인위적으로 가격을 낮추기 위한 가격통제 정책이 총망라됐다. 대표적 서민 음식인 짜장면은 소비자물가 구성에서 빼놓을 수 없는 주요 품목이었는데 1970년대 초반 정부는 ‘가격협정요금’이라는 제도를 통해 짜장면값을 100원 아래로 묶어두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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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가루 등 재료비 폭등을 호소하던 서울시 중화요식협회가 기습적으로 가격을 인상하자 정부가 위생 감찰로 중국집들을 압박하는 일 등이 비일비재했다. 중국집들은 결국 협정요금 품목에 없는 변종 짜장면을 개발해 가격통제에 대항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때 등장한 신메뉴가 ‘삼선짜장’ ‘유니짜장’ ‘쟁반짜장’ 같은 것들이었다.

가격규제 일변도였던 한국의 물가관리 정책에 변화가 찾아온 것은 1980년대부터였다. 전두환 정부는 경제성장 우선전략 부작용의 하나였던 고물가를 안정시키기 위해 통화주의 경제정책을 도입했는데 팽창 일변도였던 재정지출부터 틀어막았다. 1982년과 1983년의 경우 전년 재정지출에 대한 고려 없이 아예 백지부터 예산을 짜는 ‘영점기준예산’이 도입됐다. 1984년에는 예산을 동결해 시중 통화량 감소를 유도했다. 그 결과 1981년부터 1989년까지 평균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3.8%로 안정화됐다.

■‘MB물가’ 등장과 ‘금반지’의 기적

MB 때 노골적 가격 통제 재등장
글로벌 원자재값 상승 ‘속수무책’
통계청 물가 계산 품목 구성 변경
‘금반지’ 제외해 상승률 4% 맞춰

민주화 이후 물가는 다시 한번 요동쳤다. 경제성장이 본궤도에 오르고, 임금 인상 등 권위주의 정부의 서슬 퍼런 감시에 억눌렸던 사회적 요구들이 한꺼번에 분출되면서다. 노태우 대통령 재임 기간 물가는 연평균 7.4% 상승했는데 이는 이전 전두환 정부의 2배에 육박하는 수준이었다. 1980년대 중후반 이른바 ‘3저’(저달러·저유가·저금리)에 힘입은 경상수지 흑자는 국민소득 증가를 이끌며 물가를 자극했다. 특히 1987년 민주화 이후에는 임금 인상 요구가 전국적으로 확산되며 1988~1992년 중 명목임금 상승률이 연평균 18%에 달했다.

과거와 같은 가격규제 정책을 전면적으로 시행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노태우 정부는 통화안정증권을 발행해 통화량을 흡수했다. 200만가구를 건설해 부동산 가격 안정을 유도, 1993년에는 물가를 4.8%까지 낮췄다.

노골적인 가격감시와 통제를 통한 물가관리가 다시 등장한 것은 ‘747’(연평균 7% 성장, 소득 4만달러 달성, 선진 7개국 진입) 공약을 내건 이명박 정부 때였다. 금융위기 이후 글로벌 인플레이션 압박은 임기 내내 이명박 정부를 괴롭혔다. 이명박 정부는 서민생활물가 관리를 위해 서민생활과 밀접한 배추, 무, 마늘 등 52개 품목으로 구성된 이른바 ‘MB물가’를 만들었다. 하지만 이들 집중관리 품목이 소비자물가지수보다 더 큰 폭으로 오르면서 사실상 유명무실한 가격감시 수단으로 전락했다.

정부는 가용한 모든 수단을 총동원했는데, 공정거래위원회가 물가감시기구를 자처하며 ‘가격불안품목 감시·대응 대책반’이라는 조직을 신설, 가공식품업체를 집중 감시하기도 했다. 담합과 편승인상을 막겠다는 취지로, 가격 인상 조짐이 보이는 품목이나 기업에는 노골적인 경고가 쏟아졌다. 프리미엄 라면을 표방하며 출시된 ‘신라면 블랙’의 경우 ‘설렁탕 한 그릇의 영양이 담겼다’는 광고 문구를 문제 삼아 과징금 처분을 내리기도 했다. 명목은 허위·과장 광고였지만 사실상 타깃은 가격이라는 얘기가 파다했다. 당시 교육과학기술부는 ‘교육비 안정화 점검단’을 구성, 원비를 올린 유치원의 리스트를 뽑아 교육청에 통보하고 원비 안정화를 요청했다. 대형 외식업체에는 가격 인상 자제에 협조해줄 것을 요청하는 공문이 쏟아졌다.

2011년 물가상승률은 상반기에만 정부 저지선인 4%를 훌쩍 뛰어넘었다. 3분기에는 4.8%까지 치솟았다. 글로벌 원자재값 상승에 따른 현상이었던 만큼 백약이 무효였다. 치솟던 물가는 그해 4.0%로 마감했다. 4%는 한은이 내놓은 연간 물가상승률 예상 한계치와 오차 없이 딱 맞아떨어지는 숫자였다. 당시 통계청은 물가를 계산하는 품목 구성을 바꿨는데 뒷말을 많이 낳았다. 통계청은 그해 11월 ‘소비자물가지수 개편안’을 발표하면서 물가 상승에 상당한 압력을 가하던 ‘금반지’를 제외했다. 그러면서 “새 지수에 따라 10월까지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4.0%”라고 공표했다. “국제 권고 기준에 따른 조정”이었다는 설명이었지만, 1993년에 등장한 권고를 18년이나 지난 2011년에 갑자기 이행한 이유까지는 설명하지 못한 금반지의 기적이었다.


이호준 기자 hj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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