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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 합의했어도…정년 연장없이 인건비만 줄이면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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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금피크제 제동 ◆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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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이 '합리적 이유'가 없는 임금피크제가 무효라는 판단을 내리면서 산업 고용시장에 후폭풍이 예상된다. 임금피크제와 관련해 대법원이 처음으로 구체적인 기준을 제시함에 따라 임금피크제가 이미 정착된 공공기관과 기업들은 임금체계 재설계와 노사 간 재협상이 불가피해졌다. 또 임금피크제로 임금을 덜 받아 온 고령 노동자들의 차액 청구 소송도 빗발칠 것으로 보인다.

임금피크제는 노동자가 일정한 연령에 도달하면 고용 보장이나 정년 연장을 조건으로 임금을 감축하는 제도다. 고령화 추세 속에서 고용 안정을 위해 정년 보장과 임금 삭감을 맞교환하자는 취지로 2000년대 도입이 시작됐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연령을 이유로 노동자를 임금 등 분야에서 차별하지 못하게 한 고령자고용법과 임금피크제의 충돌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지에 관한 첫 판단이다. 대법원은 "고령자고용법의 규정 내용과 고용의 영역에서 나이를 이유로 한 차별을 금지해 헌법상 평등권을 실질적으로 구현하려는 입법 취지를 고려하면 (연령 차별 금지) 조항은 강행 규정에 해당한다고 봐야 한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아무리 노사가 합의했더라도 △임금피크제 도입 목적의 타당성 △대상 근로자들이 입는 불이익의 정도 △임금 삭감에 대한 대상 조치의 도입 여부 및 그 적정성 △임금피크제로 감액된 재원이 임금피크제 도입의 본래 목적을 위하여 사용되었는지의 적정성 등을 따져야 한다는 기준을 제시했다. 이런 '합리적 이유' 없이 단순히 연령을 기준으로 노동자의 임금을 삭감하는 것은 차별이라는 의미다.

대법원이 임금피크제의 한계를 명시하면서 산업계의 고심은 커졌다. 공공기관과 기업들은 기존 임금체계를 재설계해야 할 뿐 아니라 임금을 덜 받아 온 고령 노동자들에게 임금피크제 도입 전 임금을 기준으로 차액을 지급해야 할 의무가 생겼다. 오태환 법무법인 화우 변호사는 "이번 판결로 현장마다 각 사의 임금피크제 무효 여부에 대한 관심이 급증할 것"이라며 "성과급이 평균임금에 포함된다는 지난 대법원 판결 이후 사기업들에 관련 소송이 많이 제기된 것처럼 임금피크제 관련 소송이 빗발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기업들의 부담도 급증할 것으로 전망된다. 임금피크제는 정년 보장을 조건으로 고령 노동자의 임금을 줄인 건데, 이미 정년이 늘어난 상황에서 임금피크제가 무효가 되면 기업은 연공급제에 따라 높아지는 고령자의 임금을 고스란히 부담해야 하기 때문이다. 임금피크제는 이미 상당수 공공기관과 기업들에 정착된 상태다.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확산된 임금피크제는 2013년 고령자고용법 개정(2016년 시행)으로 노동자의 정년이 60세 이상으로 늘면서 본격적으로 확산됐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300인 이상 기업 중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기업은 2016년 46.8%에 달한다.

김동욱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는 "기업 입장에선 정부가 정년을 늘리면서 도입을 권고해 임금피크제를 채택한 건데 이제 와서 대법원이 임금피크제를 사실상 무력화시킨 것"이라며 "기업들은 경영에 어려움을 겪고 공공기관의 경우 국민의 세금으로 부담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법조계에서는 이번 대법원 판결로 임금피크제가 폐지된 것은 아니라고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정상태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는 "임금피크제가 무조건 무효라는 의미는 아니다"며 " 대상 판결에서 설시한 임금피크제 도입의 '합리적 이유'가 있는지에 따라 유·무효가 갈릴 것"이라고 밝혔다. 박재우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는 "이번 판례는 정년이 유지되면서 임금피크제가 도입된 것에 해당한다"며 "정년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임금피크제만 도입한 사업장만 문제가 될 것이고 임금피크제가 무효인지 아닌지는 케이스별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향후 임금피크제 관련 소송에서 법원이 회사 측의 손을 들어주는 것은 힘들어졌다는 주장이 나온다. 대법원이 '합리적 이유'의 기준으로 제시한 사항들이 사실상 충족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김 변호사는 "임금피크제는 태생적으로 고령자의 임금을 줄이기 위한 제도"라며 "임금 삭감의 대가로 기업이 고령자에게 쉬운 업무를 주거나 보상을 해준 것을 인정받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 말했다.

임금피크제에 한계가 지워지면서 산업계에서 연공급제에서 직무급제로의 전환이 가속화됐다는 의견도 제시된다. 고령자의 임금을 삭감할 수 없을 경우 연차만 쌓이면 임금이 높아지는 연공급제를 유지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김 변호사는 "연공급제를 하는 나라는 많지 않다"며 "정년이 연장된 상황에서 임금피크제를 못 하게 하면 하는 일에 따라 돈을 주는 직무급제로 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형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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