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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헌재, 10년간 심리하고도 “단순파업 업무방해죄 처벌 합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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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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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해고에 반발해 휴일근무를 거부한 노동자들을 업무방해죄로 처벌하는 것이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헌법재판소가 판단했다. 헌법이 보장하는 파업은 본질적으로 업무방해의 목적을 띠고 있다. 그런데도 파업에 단순 참가한 노동자들을 형법상 업무방해죄로 처벌할 수 있다는 판단을 고수한 것이다. 헌재가 사건을 접수하고 10년이나 시간을 끌고도 대법원을 의식해 소극적인 결정을 내렸다는 지적이 나온다.

헌재는 26일 A씨가 형법상 업무방해죄가 헌법에 어긋난다며 낸 헌법소원 사건에서 재판관 4(합헌)대5(위헌) 의견으로 합헌 결정했다. 위헌이라는 의견이 다수였지만 위헌 결정을 위한 정족수(6명)에 미치지 못했다.

이 사건은 헌재의 최장기 미제 사건이었다. 현대자동차 전주공장이 2010년 3월 하청업체 소속 비정규직 노동자 18명을 정리해고한다고 하자 비정규직 노조 간부인 A씨 등은 조합원들과 휴일근무를 거부했다. 검찰은 위력으로 하청업체의 업무를 방해했다며 A씨 등을 재판에 넘겼고, 법원은 유죄를 선고했다.

A씨 등은 2012년 2월 자신들에게 적용된 형법 314조1항에 대해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휴일근무를 안했다는 이유로 형사처벌하는 것은 헌법이 보장하는 파업권(단체행동권)에 대한 지난친 제약이라는 것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2011년 판례가 헌법소원에 영향을 미쳤다. 종전까지는 작업장 점거, 물리력 행사 없이 노무제공만 거부하는 ‘단순 파업’에도 업무방해죄를 적용했는데,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단순 파업이 전격적으로 이뤄져 막대한 손해를 끼쳤을 때’ 업무방해죄를 적용할 수 있다고 판례를 변경했다. 당시 5명의 대법관은 “단순히 집단적으로 노무제공을 거부하는 파업은 업무방해죄의 위력에 해당하는 것으로 봐서는 안 된다”는 소수의견을 냈다. 이에 A씨 등이 헌법소원을 제기한 것이다.

그러나 10년 만에 헌재가 내놓은 결론은 ‘합헌’이었다. 앞서 헌재는 형법 314조1항에 대해 1998년, 2005년, 2010년에도 합헌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이선애·이은애·이종석·이영진 재판관이 합헌 의견을 냈다. 이들은 “단체행동권은 제한이 불가능한 절대적 기본권이 아니므로 기본권 제한의 대상이 된다”며 “단체행동권은 집단적 실력행사로서 위력의 요소를 가지고 있으므로 무조건 형사책임이나 민사책임이 면제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또 2011년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판례가 업무방해죄의 적용범위를 축소시킨 점을 거론하며 “단체행동권의 과도한 제한이나 위축가능성의 문제는 해소됐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했다.

유남석·이석태·김기영·문형배·이미선 재판관은 위헌 의견을 냈다. 이들은 “이미 노동조합법은 쟁의행위의 시기, 절차, 방법 등을 제한하는 규정과 함께 형사처벌 조항도 마련하고 있다”며 “심판대상 조항은 위력에 의한 업무방해라는 포괄적인 방식으로 단순파업 자체에 대해서도 형사처벌이 가능하도록 규정하면서 노동조합법의 처벌조항보다 더 중한 형으로 규정해 단체행동권 행사를 주저하게 하는 위축효과를 초래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단순파업은 형사처벌에 의존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해결할 수 있음에도 제재수단으로 형벌을 택한 것은 형벌의 최후수단성 원칙에 부합한다고 보기 어렵다”며 “오늘날 주요 국가에서 정당성을 결여한 쟁의행위는 주로 민사책임이나 징계책임의 문제로 다뤄지고 파업 그 자체를 형사처벌의 대상으로 삼는 사례는 발견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헌재와 대법원의 주도권 다툼 탓에 노동자의 기본권과 직결된 사건의 결론이 나오는 데 10년 넘게 걸렸다는 시각도 있다. 당초 헌재 안팎에서는 이번 사건에서 ‘한정위헌결정’이 나올 수 있다는 관측이 나왔다. 한정위헌은 법 조항 자체가 위헌은 아니지만 법원의 법 해석과 적용에 위헌 소지가 있을 경우 내려지는 결정이다. 대법원은 헌재가 법원의 결정을 다시 판단하는 ‘재판소원’에 해당한다며 한정위헌결정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대법원의 판단을 뒤집기 위해 헌법소원을 내는 ‘4심제’로 귀결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선 헌법재판이 입법·행정·사법의 인권침해를 막는 일인 만큼 사법부 판단의 위헌성 여부 역시 헌재의 심판 대상이 돼야 한다는 반론이 맞서 있다.

법원행정처가 2015~2016년 이 사건과 관련한 헌재의 내부정보를 수집한 사실이 ‘사법농단 사건’ 때 일부 드러나기도 했다. 대법원은 이 사건과 관련해 헌재 내부에 한정위헌 의견이 다수라는 보고를 받고 대책을 수립한 것으로 파악됐다. 법원행정처가 2015년 작성한 문건에는 “전합 판결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최초 사례가 될 것”, “한정위헌은 민주노총의 숙원”, “파업공화국을 초래하게 된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런 일을 거치면서 헌재의 이 사건 심리가 한동안 중단되기도 했다.

헌재는 이날 “어떠한 범죄의 구성요건이 침해범인지 위험범인지 하는 문제는 일반법규의 해석과 적용의 문제이므로, 이는 헌법재판소의 심판대상이라 할 수 없다”고 했다.

이효상 기자 hs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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