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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경기 둔화보다 물가가 급했다…한은, 기준금리 0.25%p 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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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가 돌아왔다. 치솟는 물가에 중앙은행의 본능이 다시 꿈틀댔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연 1.75%로 0.25%포인트 인상했다. 한은이 두 달 연속 기준금리를 올린 건 2007년 8·9월(연 4.5→5%) 이후 14년 9개월 만이다. 통화정책 운영체계를 콜금리 목표제에서 기준금리로 제도를 바꾼 2008년 3월 이후로는 첫 두 달 연속 인상이다.

지난해 8월 금리 인상의 시동을 건 한은은 지난달까지 4차례에 걸쳐 기준금리를 1.0%포인트 올렸다. 그럼에도 이번 달에도 추가 인상 카드를 꺼내 든 건 치솟는 물가 잡기가 급했다는 이야기다. 한은은 올해 소비자물가가 지난해보다 4.5% 오를 것이라는 전망도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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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26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에서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 한국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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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 금융통화위원회는 26일 통화정책방향회의를 열고 기준금리를 연 1.5%에서 1.75%로 0.25%포인트 인상했다. 금통위원 6명 만장일치 결정이다. 지난달 0.25%포인트 인상(1.25→1.5%)에 이어 한 달 만의 추가 인상이다. 이창용 한은 총재도 취임 후 처음으로 주재한 금통위에서 금리를 올린 최초의 총재가 됐다.

한은이 이처럼 공격적으로 금리를 올리는 건 커지는 인플레이션(물가상승) 압력 때문이다. 지난 4월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전년동기대비)은 4.8%로, 2008년 10월(4.8%) 이후 13년 6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한은은 당분간 5%대의 물가상승률이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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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전유진 yuki@joongang.co.kr


특히 한은이 예의주시하는 건 경제 주체들의 물가 상승 기대 심리다. 5월 기대인플레이션율은 3.3%로 2012년 10월(3.3%) 이후 최고치다. 기대인플레이션은 임금과 상품 가격을 높여 물가상승을 장기간 끌고 가는 요인이다.

이 총재도 이날 금통위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중앙은행이 정책 대응을 실기해서 인플레이션 기대심리가 크게 확산되면 취약계층이 훨씬 더 큰 피해를 중장기적으로 볼 수 있는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한은은 이날 발표한 수정경제전망에서 올해 CPI 상승률 전망치를 기존의 3.1%에서 4.5%로 끌어올렸다. 2008년 7월 전망(4.8%) 이후 14년 만에 최고 수준이다. 내년도 물가상승률 전망치도 2.0%에서 2.9%로 0.9%포인트 높였다. 반면 올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는 기존의 3%에서 2.7%로 하향 조정했다.

안팎의 물가 상승 압력은 더 거세다. 코로나19 확산세가 둔화하고 거리 두기가 해제되며 소비는 늘고 있다. 늘어난 수요는 물가를 끌어올린다. 국제 유가 등 치솟은 원자재 가격도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한은은 지난 2월 경제전망 때 올해 원유도입단가를 배럴당 85달러 수준으로 예상했지만, 이번 전망 때는 102달러로 올려 잡았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와 기후 요인 등으로 치솟은 곡물 가격도 불안 요인이다. 이 총재는 “곡물 가격은 한 번 올라가면 상당 기간 지속한다”며 “내년에도 물가상승률이 4%대를 상당 기간 유지하다 내려갈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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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물가 전망치를 올리며 추가 금리 인상은 불가피해졌다. 금통위는 이날 통화정책방향문을 통해 “앞으로 당분간 물가에 보다 중점을 두고 통화정책을 운용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 총재는 “시장이 예측하는 (올해 연말) 기준금리 2.25%나 2.5% 합리적인 기대”라고 밝혔다. 올해 하반기 4차례(7·8·10·11월) 금통위 중 적어도 2차례는 금리를 올릴 수 있다는 의미다.

한은이 ‘인플레 파이터’로 나서며 경기 둔화 우려는 커지게 됐다. 기준금리가 인상되면 가계와 기업의 이자비용이 늘어난다. 가계는 소비를 줄이고, 기업은 투자를 줄여 경제 성장이 둔화할 수밖에 없다. 한은에 따르면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올릴 때 가계의 이자 비용이 3조원 이상, 1인당 부담은 16만원씩 늘어난다. 기업 부담도 2조7000억원 증가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한국 경제의 엔진인 수출도 위태롭다. 미국과 중국 등 주요국의 성장세 약화 탓이다. 지난해 경제성장률(4%)에서 순수출(수출-수입)의 기여도는 2.3%포인트였다. 절반 이상이 수출 덕이었던 셈이다. 한은은 올해 성장률 전망치(2.7%)의 순수출 기여도는 0.9%포인트로 떨어질 것으로 봤다. 원자재 가격 급등으로 수입 증가 속도를 수출이 따라잡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한은은 주춤한 수출 대신 거리두기 완화로 늘어나고 있는 민간소비에 기대고 있다. 다만 조영무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고물가가 지속하면 국내 가계의 실질소득이 감소해 소비 여력도 점차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한은의) 기대만큼 민간소비가 늘어나지 않을 가능성도 높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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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문제는 한은의 예상보다 물가가 더 오를 수 있다는 데 있다. 금리 인상은 시중 유동성을 빨아들여 수요 측 물가 상승 압력은 조절할 수 있지만, 우크라이나 사태로 치솟은 국제 유가 등 공급 측 요인에는 영향을 미칠 수 없다.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Fed) 의장도 지난 12일 언론 인터뷰에서 “Fed는 수요는 통제할 수 있지만, 공급 쪽에는 손을 쓸 수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달 생산자물가지수(PPI)는 1년 전보다 9.2% 상승해, CPI 상승률(4.8%)을 크게 웃돌았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 교수는 “치솟은 원자재 값이 상품 가격에 더 반영될 여지도 크다”며 “물가 상승 압력이 더 커지는 만큼 경기 둔화나 이자비용 증가 등 부작용이 있더라도 기준금리를 계속 올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물가가 오르고 성장률이 둔화하며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물가 상승) 우려도 나올 수밖에 없다. 다만 이 총재는 스태그플레이션 우려에 대해는 선을 그었다. 잠재성장률보다 경제성장률 전망치가 높다는 이유다. 잠재성장률은 물가 상승을 유발하지 않으면서 이룰 수 있는 최대 성장률로 경제의 기초체력을 나타낸다.

안효성 기자 hyoza@joongang.co.kr, 윤상언 기자 youn.sang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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