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19 (금)

책 속으로 사라진 작가의 발자취 따라… ‘자발적 봉인’ 이유를 탐구 [책을 읽읍시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밀란 쿤데라를 찾아서


파이낸셜뉴스

밀란 쿤데라를 찾아서 / 아리안 슈맹 / 뮤진트리 지난 1984년 인기 독서 토론 프로그램 '아포스트로프'에 출연한 밀란 쿤데라가 카메라를 피해 얼굴을 가리고 있다. 뮤진트리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아흔세 살인 현재까지 17권의 책을 발표했고 여전히 세계에서 작품이 가장 많이 읽히는 작가 중 한 명인 밀란 쿤데라. 그런 그가 '자발적 실종자'라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그는 37년 전부터 텔레비전 출연 거부는 물론 언론과도 대면 인터뷰를 한 적이 없다. 세상과 소통은 오직 책을 통해서만 해오고 있다. 그렇게 책 속으로 사라진 작가. 그래서 소설 속 그의 등장인물들은 사람들 뇌리에 깊이 각인되어 있지만 그는 독자들에게 '유령 작가'가 됐다.

신간 '밀란 쿤데라를 찾아서'(뮤진트리 펴냄)는 프랑스 일간지 '르 몽드' 기자로 주요 작가들에 관한 여러 연재 기사를 발표해온 아리안 슈맹이 쿤데라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자발적 봉인'의 이유를 탐구한 책이다.

디지털 문명 고도화 속에 '잊혀질 권리'와 '은둔형 외톨이' 등 새로운 문제점과 쿤데라의 선택을 단순 연결짓는 것은 무리가 따를 것이다. 그러나 사적 정보까지 신상털기가 자행되는 시대, 언론의 과열된 취재 경쟁과 가짜뉴스 양산으로 피해자가 늘어나는 시대에 쿤데라의 선택을 유별난 삶이라고 할 수 있을까.

과거 쿤데라는 프랑스 문단의 기둥 프랑수아 누리시에와 마주한 자리에서 "공산주의 나라에서는 경찰이 사생활을 파괴하지만, 민주주의 나라에선 기자들이 사생활을 위협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슈맹은 책에서 "쿤데라가 증발의 유혹에 끌린 것은 1984년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대성공을 거둔 뒤 부터"라며 "당시 텔레비전 인기 독서 토론 프로그램 '아포스트로프'에 출연해 카메라를 멀리하기 위해 얼굴을 두 손으로 가리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밀란 쿤데라는 체코슬로바키아에서 태어나 체코어로 소설을 쓰고 프랑스에 정착한 후 언젠가부터 프랑스어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동구 공산권 체코 비밀경찰국의 옛 비밀창고에서 드러난 쿤데라 파일이 그렇듯, 그는 사생활이 감시를 받는 야만의 시대를 살아야만 했다. 그리고 세기와 국경을 넘나들며 프랑스 정착 이후 현재 서구사회에서도 사생활 노출을 거부하고 미디어와 접촉을 차단 뒤 오직 작품을 쓰며 '은둔의 삶'을 선택했다. 쿤데라의 여전한 묵언에도 이 열쇠를 풀기 위해 언론인이자 작가인 아리안 슈맹은 쿤데라의 삶이 스친 모든 곳을 찾아가고, 그의 부인 베라 쿤데라를 만나고, 그녀와 함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갔다.

매사에 신중한 쿤데라는 지인들에게 편지보다 자신이 그린 그림을 보냈다. 맥락 없고 둥근 모양의 사람들, 피카소가 그린 듯한 기이한 인물 도형이 대부분이었다. 쿤데라의 아내 베라도 "꼭 그는 누군가 자신의 영혼을 훔쳐갈까봐 겁내는 인디언 노인 같았다"고 슈맹에게 말했다.

시공을 넘나드는 취재와 쿤데라에 대한 깊은 이해로 쓴 이 책에서 독자들은 쿤데라 스스로 삶을 봉인해버린 이유가 무엇인지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