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4 (수)

대법 위법 판단에 혼선 커진 임금피크제…재계 "줄소송 이어질라"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 임금피크제 제동 ◆

매일경제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대법원의 임금피크제 무효 판결로 단기적으로는 노사 분쟁 등 혼란이 걱정되며 장기적으로는 청년 고용 위축까지 우려됩니다."

대법원이 26일 "합리적 이유 없는 임금피크제는 무효이며 연령 차별에 해당한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린 데 대해 모 대기업 고위 관계자는 한숨부터 내쉬었다. 재계는 표면적으로는 "기업별로 임금피크제 적용 현황이 다르고 대법 판결이 모든 임금피크제가 무효라는 취지로 판단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당장 어려움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향후 소송 리스크 등 후폭풍이 커질 가능성이 있어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고 후속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 최근 노동계에서 임금피크제 폐지를 주장하는 한편 연령별로 국민연금 수급 시기와 연계해 정년을 늘려달라는 요구가 거세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판결로 임금피크제가 무효화될 가능성이 커짐에 따라 기업에 대한 이 같은 노조의 요구는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김용춘 전국경제인연합회 고용정책팀장은 "임금피크제와 관련한 첫 대법원 판결이 도입 취지와 반대로 나와 아쉽다"며 "대법원이 개별 사안마다 해석의 여지가 다를 수 있다고 밝혔음에도 첫 판결을 확대 해석해 노조발 소송 대란이 벌어질 우려도 있다"고 말했다.

임금피크제 도입 취지는 장년층이 일정 연한에 달할 경우 임금을 다소 깎는 대신 정년을 보장해 주자는 데 있다. 아울러 고용이 보장된 장년층이 양보한 임금을 바탕으로 취업난에 시달리는 청년의 신규 채용을 늘리는 데 의의가 있다. 그간 우리 기업 노사는 이 같은 사회적 공감대를 바탕으로 임금피크제를 2003년 이래 순차적으로 도입해왔다. 특히 사업체 정년이 2016년 기존 만 57세에서 만 60세로 늘어남에 따라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기업이 급격히 늘어났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6월 기준 전체 정년제 운영 사업체(34만7422곳) 중 22%인 7만6507곳이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다. 정년이 늘어난 2016년을 전후한 2015~2017년 3년 새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기업은 이 중 69%인 5만2846곳에 달한다. 임금피크제 도입에 따른 최초 임금 감액 연령은 전 산업 평균 56.8세로 연장 전 정년인 57세와 비슷하다. 기존에는 실업자 처지에 놓였을 57세 이후 장년층이 임금피크제 도입으로 고용 연장 효과를 누려 왔다.

특히 한국은 연공서열식 호봉제 체계를 유지하고 있는 만큼 정년을 앞둔 장년층이 고임금을 받아 전체 노동생산성을 끌어내렸다. 강석구 대한상공회의소 조사본부장은 "임금피크제는 연공급제에서 불가피한 조치였음에도 이를 무효화하면 청년 일자리, 중장년 고용 불안 등 정년 연장 부작용이 심각해질 것"이라며 "임금피크제를 의무화하는 고령자고용촉진법 개정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장기적으로 임금피크제와 관련해 법적 위험을 피하기 위해 기업들이 사회적 요구인 정년 연장은 거부하고 되레 장년층에 대해 임금피크제 연한 진입 전 선제적 구조조정에 나설 가능성도 거론된다. 특히 중장년층의 이익을 주로 대변하는 노조의 무리한 요구로 채용시장에서 청년층이 소외돼 세대 갈등으로 번질 가능성까지 열려 있다.

추광호 전경련 경제본부장은 "향후 관련 재판에서는 임금피크제가 갖는 순기능인 고령자 고용 안정과 청년 일자리 기회 확대 등이 효과적으로 발휘될 수 있도록 신중한 해석이 이뤄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중견·중소기업계는 정부의 적극적인 권고에 따라 최근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다가 되레 역효과를 맞게 됐다며 울상이다.

한국중견기업연합회는 이날 논평을 내고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경기 불황과 거세지는 글로벌 인플레이션 압박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임금피크제와 관련한 혼선이 기업의 추가적인 임금 부담과 생산성 저하를 야기하지 않도록 명확한 기준을 세워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중견련은 이어 "지속가능한 발전의 기본 요소인 산업 전반의 생산성 제고, 청년 일자리 창출을 위한 효율적인 방책으로 임금피크제를 확대·개선하는 논의를 서둘러야 한다"고 주문했다.

[한우람 기자 / 양연호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