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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지평선] 임명직 뽑는 지방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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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한국일보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사전투표를 하루 앞둔 26일 부산시 연제구 연제구청에서 직원들이 사전투표 시연을 하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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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ㆍ1 지방선거를 앞두고 무혈 입성한 지방정부 단체장과 기초ㆍ광역 의원이 500명을 넘었다. 단체장과 광역의원은 물론 선거구당 2~3명을 선출하는 기초의원도 후보자가 선출 정수에 미달해 당선이 확정된 것이다. 투표일까지 후보 사퇴가 이어질 공산이 커 무투표 당선은 더 늘 수밖에 없다. 무투표 당선자는 전체 선출 인원의 12%로 4년 전 지방선거보다 5배나 폭증했다. 이러다 보니 지역 정가에서는 “지방의원은 더 이상 선출직이 아니라 공천 정당이 인사권을 가진 임명직”이라는 자조의 목소리가 파다하다.

□ 무투표 당선의 폭증은 거대 양당의 지역 할거가 부른 기현상이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이 호남과 영남을 분리 장악하는 현실에서 영남에서는 민주당 후보가 나설 엄두를 못 내고, 호남에서는 국민의힘 후보의 설 자리가 없다. 대구의 경우 29명을 뽑는 시의원 선거에서 무투표 당선이 20명을 넘었고, 전북에서는 36명의 지역구 도의원 가운데 역시 20명 이상을 투표 없이 채웠다. 수도권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양대 정당이 1명씩 추천해 선거 전에 당선이 확정된 기초의원이 속출하고 있다.

□ 지방 정부와 의회에 무혈 입성한 행운의 주인공들도 고민이 없지는 않다. 특히 지역 초보 정치인들은 “이름을 알릴 기회가 사라졌다”고 아쉬움을 토로한다. 공직선거법에 따라 무투표 당선자들은 어떤 선거운동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선거사무소는 폐쇄하고 현수막도 내려야 한다. 당선이 확정됐지만 당선인사는 언감생심이다. 투표 없이 선출된 터라 대표성을 주장하기도 머쓱하다. 선택의 기회를 박탈당한 유권자 입장에서는 어이없고 황당한 상황일 뿐이다.

□ 학계와 시민사회에서는 진작에 이런 기현상을 예상하고 지방선거 제도개혁을 주장했다. 지방선거에서 정당 추천제를 없애고 기초ㆍ광역 의원 선거에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하자고 제안했지만 양대 정당은 외면했다. 지역 정당 설립 주장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기초의원 선거구당 3~5인을 선출하는 중대선거구제를 시범 도입했지만 턱없이 부족하다. 거대 양당이 기득권을 포기하지 않는 한 지역 일꾼을 뽑는 지방선거의 정상화는 요원하다.

김정곤 논설위원 jk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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