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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6 (화)

[취재파일] 교육감 선거, 안 하면 안 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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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천억 드는 교육감 선거, 효용성을 따져보자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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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감 후보 단일화가 뭐길래



지난 5월 7일 밤 10시반 휴대전화가 부르르 울렸습니다. 이주호·박선영·조전혁 서울시교육감 예비후보가 5월 8일 일요일 오전 9시 서울교육청 앞에서 단일화를 위한 합의문을 발표한다는 문자였습니다. 옆에서 문자 내용을 파악한 아이가 빽 소리를 질렀습니다. "우리도 누군가의 부모, 누군가의 자식입니다. 이렇게 답장해야 하는 거 아녜요?"

토요일 늦은 밤에 문자를 보내고 일요일 아침, 그것도 어버이날에 기자회견을 한다고 알린 것은 그만큼 중대한 사안이라는 판단에서 나온 것이겠죠. 보수 진영에서 서울교육감 후보의 단일화는 승리의 필수 조건으로 여겨졌으니, 극적인 단일화 합의 소식을 어서 기자들에게 전하고 싶었을 겁니다. 이때 이주호 예비후보는 사퇴하고, 박선영-조전혁 예비후보는 추후 단일화 방법을 논의한다고 합의했는데, 선거가 며칠 남지 않은 오늘(26일)까지 두 후보는 해법을 찾지 못하고 각자 선거운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박선영 후보에 대한 조전혁 후보의 욕설 파문의 배경엔 지난한 단일화 과정 속 갈등이 자리하고 있는 셈입니다.
박융수/ 서울대 사무국장 (2018년 인천교육감 선거 예비후보)
"(진보-보수) 단일화 선거예요. 단일화 선거. 그리고 인지도 선거거든요. 후보가 어떤 교육철학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교육과 관련된 경력이 있는지 과거의 성과와 한계는 뭔지… 이거는 아무 필요가 없는 거죠, 교육감 선거에서. 시민들도 그걸 보려고 하지 않아요."


지난 2018년 지방선거에서 인천교육감에 도전했던 박융수 서울대 사무국장은 유권자들의 철저한 무관심이 중도 사퇴를 결심하게 된 이유였다고 말했습니다. 예비후보로 등록하고 60일 동안 명함을 돌리며 시민 한 사람 한 사람과 최소 10-20분씩 자신의 교육철학과 정책을 설명하려고 노력했는데, 그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는 겁니다. 서해 도서지역까지 돌면서 정성을 들여 정책을 설명하고 지지를 호소했는데 여당이냐 야당이냐, 진보냐 보수냐… 이런 질문만 계속되니 정말 힘이 빠졌을 듯합니다. 2018년 출마 직전까지 박융수 당시 인천부교육감은 뇌물 사건으로 공석이 된 교육감직을 대행하면서 그 누구보다 인천 교육의 문제를 잘 파악하고 있었고, 선관위가 허용한 선거 비용 모금 3종 세트인 '출판기념회·후원회·선거 펀드' 없는 3無 선거를 선언하며 교육감 선거의 패러다임을 바꾸겠다고 열의를 보였지만, 정책 경쟁이 아닌 정치 공학이 지배하는 현실을 극복할 수 없다는 걸 깨닫고 결국 선거운동을 접었습니다. 그리고 지난해 겨울, 다시 돌아올 선거의 계절을 앞두고 박 국장은 '교육감 선거-교육이 망가지는 이유'라는 책을 발간하며 교육감 직선제를 계속 이어가야 하는가 라는 질문을 우리 사회에 던졌습니다.
박융수/ 서울대 사무국장 (2018년 인천교육감 선거 예비후보)
"교육감 선거에 들어가는 교육 예산 2천억 원이면 애들 학교 강당 50개 지을 수 있습니다. 근데 시민들이 모르거든요. 제가 지난 2018년에 '교육감 선거에 교육청 예산이 2천억이 듭니다'라고 말한 최초의 사람입니다. 그동안은 어느 누구도 대한민국에서 아는 사람도 없었고 적어도 공표된 적이 없어요. 이 정도로 무관심한 선거인데 뭐를 하겠습니까."


박융수 국장이 선거운동 과정에서 겪었던 무관심의 벽은 최근 여론조사에서도 그대로 확인됐습니다. 지난 5월 14-15일, 6·1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상파 3사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후보를 모르거나, 지지하는 사람이 없다는 응답이 서울과 경기에서 각각 60%, 70%씩 나왔습니다. 인천에선 78.8%에 달했습니다. 보수-진보 단일화에 성공해 맞대결을 펼치는 7개 시도가 아니면 10개 시도에선 20%에도 미치지 않는 득표율로도 당선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적게는 10명 가운데 6명, 많게는 10명 가운데 8명이나 지지 후보가 없거나 모른다고 하니, 선거운동을 펴고 있는 후보들로선 정말 힘이 빠질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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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 얻는 교육감 직선제 폐지론…시민들 의견은?



이렇듯 아무도 관심 없는 '깜깜이' 선거에 수천억 원 쓰지 말고, 아예 대통령이 교육부 장관처럼 17개 시도 교육감을 임명하는 게 낫다는 주장을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교육감 선거를 취재하면서 박융수 국장뿐 아니라 여러 사람들에게 '교육감 선거 폐지' 의견을 들었습니다. 교육감 직선제에 대한 시민들의 생각과 의견이 궁금했는데, 마침 지난해 한국교육개발원이 실시한 설문조사에 관련 내용이 있었습니다. 교육감 직선제를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에 전체 응답자의 42.6%는 찬성인 반면 반대는 27.8%, 모름 29.6%로 나왔습니다. 그런데, 초중고 학부모의 경우엔 찬성 비율이 50.9%로 올라갑니다. 2019년 초중고 학부모의 찬성 비율 56.5%에 비해 많이 떨어지긴 했지만, 일반인보다 학부모들이 교육감 직선제에 찬성하고 있다는 게 보입니다. 특히 교육감 선거가 지방교육자치에 기여하고 있냐는 질문에, 초중고 학부모 29.7%는 그렇다, 44.9%는 보통이다라고 답했고, 그렇지 않다는 25.5%로 나타났습니다. 이 문항 역시 전체 응답자보다 학부모들의 평가가 더 긍정적이었습니다. 교육감 직선제는 물론 직선 교육감이 이행하는 교육자치에 만족한다는 시민들과 교육감 선거에 무관심한 시민들,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요?
박대권/ 명지대 청소년지도학과 교수
"지방교육자치, 아니 어떤 자치라도 물어보면 다 만족한다고 할 것 같아요. 딴 사람이 권력을 갖고 있는 것보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게 나으니까요. 사실 정치 행위에서는 정당성을 더 따지지 효율성이나 합리성을 따지지 않거든요. 그러니까 당연히 내가 권력을 가지고 있다면, 그 권력이 잘못 쓰이더라도 좋죠. 그리고 서울시교육청에 가보세요. 만날 민원인 찾아와서 이상한 일을 벌여도 그래도 쫓아내지 않잖아요. 모두 한 표를 가진 시민이라고 한다면 조금 더 시민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척이라도 할 테니 시민들 입장에선 교육자치에 만족한다고 할 수밖에요. 특히 권위주의 정부를 겪은 세대는 시민으로서 책임감보다는 시민으로서 권리를 누리는 것을 되게 소중하게 느낄 거란 생각은 들어요."


직접선거에만 관심…차라리 러닝메이트로 가자



박대권 교수의 분석은, 어떤 교육감이 뽑혀서, 어떤 정책을 펴나갈지는 별로 관심이 없지만, 본인 손으로 교육감을 뽑는다는 데는 상당한 만족감을 느낀다는 겁니다. 그래서 직접선거제도는 계속 유지될 거라고 전망합니다. 다만, 현행 제도에서 책임지지 않는 교육감들이 왕왕 나오고 있다는 걸 지적합니다. 일단 뽑히기만 하면, 뇌물을 받아 구속되는 경우에도 부끄러움은 교육감 개인의 몫일 뿐, 후원회나 지지 단체, 아니 그 어느 누구도 책임을 함께 하진 않는다고요. 차라리 정당과 손을 잡는다면, 교육감 후보가 당선 뒤에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지 정당이 감시하고, 또 함께 책임질 거라는 주장이었습니다. 정당과 손을 잡는다? 이건 현행법상 불가능합니다. 헌법 31조에 명시한 교육의 정치적 중립에 따라 지방교육자치법도 교육감 후보는 출마 최소 1년 전에는 정당 활동을 접어야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또한 정당이 교육감 선거에 개입하는 행위도 엄격히 금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정당과의 러닝메이트를 제안하는 건, 법과 현실이 따로 놀기 때문입니다. 앞서 후보들이 단일화에 목멘다고 했을 때, 이미 교육감 선거가 진영 대결이란 게 드러났죠. 포스터에 정당 표시나 기호는 없어도 색깔이나 구호로 어느 진영과 가깝다는 게 나타납니다. 정치적 중립이라는 건 가면이라는 거죠. 그러면서도 기존 정당의 조직을 활용하지 못해 선거 비용은 시도지사 후보보다 더 쓰고 있습니다. 2018년 지방선거에서 교육감 후보는 1인당 선거 비용을 11억 1천만 원 지출한 반면, 시도지사 후보는 7억 6천만 원을 썼습니다. 50% 이상 더 썼단 겁니다. 선거운동 위해 자체적으로 조직을 꾸리고 유세를 벌여야 하는데, 유권자들의 관심이 떨어지니 그만큼 돈을 더 쓴 겁니다. 이렇게 '눈 가리고 아웅'식 정치 중립 때문에 고비용 선거를 감당해야 하는 겁니다. 이건 직선 교육감들의 잇단 수뢰사건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정당 지원 없이 스스로 선거 자금을 마련해야하는 교육감 후보들은 검은 유혹에 약할 수밖에 없겠죠.

말뿐인 정치 중립…부작용 줄이는 방법은?



러닝메이트를 제안한 박대권 명지대 교수는 이제는 교육의 정치적 중립이라는 헌법 가치를 달리 해석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헌법에 포함됐을 때의 취지를 제대로 살펴봐야한다는 겁니다.
박대권/ 명지대 청소년지도학과 교수
"1960년대 초반에 나온 헌법학 교과서에 명시가 되어 있는데요, 1963년 헌법이 개정될 때 언급한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은 국가 등 정치·행정 권력의 교육에 대한 부당한 개입을 방어하기 위한 거라고, 그렇게 헌법에 들어간 겁니다. 그런데 권위주의 정부를 거치면서 교사의 정치적 참여를 배제하는 걸로 일방적으로 해석을 해서 지금까지 오고 있는 것이 거든요. 그래서 정치적 중립성이란 걸 너무 민감하게 보지 말고, 정치 권력이나 경제 권력, 국가 권력이 학교에 대해서 권력을 남용하는 거를 막는 게 정치적 중립성이라는 것 정도만 확실하게 규정한다면 그다음은 우리가 자유롭게 해석할 수 있는 부분이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교육의 정치적 중립이 헌법에 보장돼 있고 러닝메이트 도입을 위해선 법 개정이 필수인 만큼 조금 더 보수적인 제안을 하신 분도 있었습니다. 김규태 계명대 교수는 교육장 직접 선거를 통해 막강한 시도교육감의 권한을 분산하는 방안을 제안했습니다. 지방선거 때 시도교육감과 더불어 거주 지역의 교육장까지 함께 뽑자는 겁니다. 시도교육감이 모든 자치구·군의 상황을 파악할 수 없으니 교육장이 각자 지역 특성에 맞는 자치를 하게끔 하자는 겁니다. 또 최근 코로나19 상황에서 일선 학교장에게 원격 수업 전환 결정권을 준 것처럼 직선 교육장이 학교장에게 자율권을 준다면 진정한 의미의 교육자치를 실현할 수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남은 기간 동안 '벼락치기' 공부라도



교육감을 우리 손으로 뽑는 직선제는 2007년 도입됐습니다. 지방선거와 합쳐진 건 2010년부터였구요. 10여 년 동안 <동시지방선거>라는 이름 아래 시행됐던 교육감 선거를 한 번 다시 생각해보고 개선 방안을 함께 고민했으면 좋겠습니다. 무엇보다도 미래세대의 교육을 4년간 이끌 교육감을 무조건 '찍기'로 뽑아서는 안 되겠죠. 최소한 '벼락치기' 공부라도 해서, 이 후보가 대체 누군지, 공약은 무엇인지, 제대로 알고 뽑아야 하겠습니다. 6월 1일, 이제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김경희 기자(kyung@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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