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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달째 인천공항서 먹고 자고…父참전국은 문 열어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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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국가 이미지하고도 연관있는 사안이에요.”

26일 오전 11시 40분 인천지법 법정. 박강균 재판장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법정에선 에티오피아에서 온 남성에 대한 난민 심사를 해달라는 취지의 행정소송(난민 인정 심사 불회부 결정 취소 소송)이 진행 중이었다. 박 재판장은 한국전쟁 때 탄압을 받고 다른 나라로 도피한 한국인을 예로 들어보자고 했다. 그는 “만약 해외로 피난 간 한국인이 두 달 동안 그 나라에서 아무런 조력을 받지 못한 채 공항에서 난민심사를 받기만 기다리고 있다면 어떤 감정이 들겠냐”면서 “차라리 빨리 난민으로 인정하지 않고 다른 곳으로 보내달라고 얘기하고 싶을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두 달째 공항에 사는 에티오피아인



정식으로 난민 인정 심사를 받게 해달라는 에티오피아인의 요청 자체를 거부한 법무부의 결정에 문제점이 있는 게 아닌지를 꼬집었다. 박 재판장은 “난민으로 보기 어렵다는 합당한 근거가 있다면 정식 난민 인정심사를 열어 그렇게 판단하면 되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날 법정에서 ‘한국의 이미지’라는 단어를 소환한 주인공은 에티오피아에서 온 하센(47·가명)이다. 지난 3월 중순 한국에 들어온 그는 정식 난민 인정 심사를 받지 못한 채 두 달 가까이 공항에 머무르고 있다.

그의 법률대리인이 전한 사정은 이렇다. 에티오피아는 16개월 넘게 지속한 내전으로 혼란에 빠져있었다. 택시기사로 일하던 하센도 그 여파에 휘말렸다. 소수민족이었던 그는 강제징집을 당했다. “내전이 정당하지 않다”며 징집을 거부했지만, 돌아온 결과는 구금이었다고 한다. 견디다 못한 그는 가족을 고국에 남겨둔 채 망명길에 올랐다.



아버지의 참전국으로 향한 아들



행선지는 한국이었다. 한국전쟁 참전용사인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고 한다. 에티오피아는 한국전쟁 당시 아프리카에서 유일하게 지상군을 파견했다. 어릴 적 한국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자란 하센은 큰 고민 없이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고 한다.

그러나, 입국장은 쉬이 열리지 않았다. 같은 비행기에 탄 에티오피아인 4명과 함께 난민신청을 했지만, 법무부 산하 인천공항출입국외국인청(외국인청)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경제적인 이유로 난민 인정을 받으려는 등 난민 인정 신청이 명백히 이유 없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법무부는 판단했다. 간이심사로 심사 대상이 아닌 것으로 걸러졌으니 정식 심사는 필요없다는 취지다. 이들이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난민신청을 하지 않은 점, 현지 내전 상황 등을 고려한 결과 등을 이유로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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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오피아에서 온 일부 입국자는 난민심사 대상이 될 때까지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에 머물고 있다. 사진 이상현 변호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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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국에 돌아가면 처벌받을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라고 판단한 하센은 공항에 눌러앉는 편을 택했다.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 28번 게이트가 임시 보금자리가 됐다. 한편으론 유엔난민기구에 도움을 청했다. 난민인권네트워크의 협조로 난민 인정심사 불회부 결정을 취소해달라는 소송을 냈다. 재판이 열리길 기다리는 동안 수중의 돈이 바닥났다. 공항 밖 시민들이 모금한 돈으로 간간이 생계를 이어가고 있지만, 건강이 악화한 상태라고 하센의 법률대리인은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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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이상현 변호사가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에서 에티오피아에서 입국자들과 대화하고 있다. 왼쪽에서 세번째 남성이 하센이다. 사진 이상현 변호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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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장 조정 권고, 심사로 이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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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난민공동네트워크 구성원이 인천지법 앞에서 인천공항에 있는 에티오피아인들의 처우를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심석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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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박 재판장은 하센 사건에 대해 조정을 권고하겠다고 밝혔다. 외국인청이 자체적으로 하센에 대한 난민인정 불회부 결정을 직권취소할 것인지 검토해보라는 취지다. 만약 외국인청이 결정을 직권취소할 경우 하센은 정식 난민 인정심사를 받게 된다. 기존 입장을 고수할 경우 재판부는 다음 달 16일 난민 인정심사 불회부 결정이 타당했는지 최종 판단을 내리게 된다. 법무부는 조정 권고에 대해 검토한 뒤 입장을 정할 예정이다.

하센의 법률대리인인 이상현 변호사(사단법인 두루)는 “인천공항에서는 ‘인도적 위기’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며 “‘공항 난민’은 보통 난민신청 절차를 알지 못해서 입국 시 말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들에게 적절한 기회가 주어지고 있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심석용 기자 shim.seok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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