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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임금피크제 무효 판결에 탄식 나온 재계 “고용 부담에 현장 혼란 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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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지난해 6월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조합원들이 서울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공공기관의 일방적 임금체계 개편 중단과 임금피크제 지침 폐기를 촉구하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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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령만을 이유로 임금을 깎는 임금피크제가 위법이라는 대법원 판결을 나오자 재계가 술렁이고 있다. 고령자의 고용 안정을 위해 도입한 제도를 차별로 판단하면서 산업 현장에 혼란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반응이다. 청·장년 일자리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퇴직자 A(67)씨가 자신이 재직했던 한국전자기술연구원을 상대로 “임금피크제를 적용해 삭감했던 임금 차액을 지급하라”며 낸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26일 확정했다. 전자기술연구원의 임금피크제가 ‘고용상 연령 차별 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고령자고용법)’을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정년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일정 연령이 되면 임금을 삭감한 것이 위법하다는 것이다.

재계는 이번 판결이 고령자고용법의 개정과 임금피크제 도입 취지를 무색하게 했다며 일제히 비판했다. 법 개정으로 2016년부터 정년이 60세 이상으로 의무화하자 그 대안으로 제시된 것이 임금피크제이기 때문이다.

황용연 한국경영자총협회 노동정책본부장은 “임금피크제는 연령 차별이 아닌 ‘연령 상생’을 위한 제도”라며 “고령자의 갑작스러운 실직을 예방하고 새로운 청년 일자리 창출을 도모하기 위해 노사 간 합의를 통해 도입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고령자고용법상 ‘특정 연령집단의 고용유지와 촉진을 위한 조치’는 연령차별로 보지 않고 있다는 설명이다.

황 본부장은 이어 “임금피크제의 도입 목적과 법의 취지, 산업계에 미칠 영향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고 본다”며 “고령자의 고용 불안과 청년구직자의 일자리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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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고용과 기업 경쟁력에 동시에 타격을 줄 것이라는 우려도 나왔다. 추광호 전국경제인연합회 경제본부장은 “근로자의 고용 안정을 도모하고 기업의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많은 기업에서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다”며 “이번 판결이 산업 현장에 혼란을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주장했다.

강석구 대한상공회의소 조사본부장도 “임금피크제는 현행 연공급제에서 정년연장을 위한 불가피한 조치였다”며 “줄소송 사태와 인력 경직성 심화로 기업의 경영 부담이 가중되고 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임금피크제가 위축될 경우 반대급부로 명예퇴직과 정리해고가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기업 관계자는 “급여를 줄여서라도 명예퇴직 대신 고용 연장을 원하는 수요가 많기 때문에 노사협의회를 통해 임금피크제가 도입된 것”이라며 “임금피크제가 사라질 경우 경영 부담으로 인해 퇴직을 독려하는 분위기가 강해질 수 있지 않겠냐”고 말했다.

또 다른 기업인도 “이번 판례로 유사한 소송이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며 “통상 50대 근로자에게는 임금피크제와 희망퇴직이 선택지로 제시돼 왔는데 근로자의 선택폭이 줄어드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LG전자 등 일부 대기업의 경우 임금피크제를 적용받는 직원이 별도의 업무 조정 없이 기존 업무를 수행하고 있어, 이번 판결의 영향을 받는 것은 아니냐는 반응도 나온다. 다만 이들 기업은 정년을 연장하며 임금피크제를 도입해 기존 업무 수행 여부가 문제 되지 않는다.

한 기업 관계자는 “고령 근로자의 경우 생산성 저하를 우려해 임금피크제 돌입 시 업무를 경감하는 경우가 많지만 판결 속 사례는 같은 업무를 수행하며 임금만 줄어든 경우”라며 “임금피크제에 대한 첫 판결이기에 유관부처의 해석 등을 살피며 사태를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번 판결의 결과를 ‘임금피크제 무효화’로 보는 것은 지나친 확대 해석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해당 사례는 형식만 임금피크제였을 뿐 실제로는 고령자에 대한 임금 삭감조치였다”며 “정년 연장을 전제로 한 제도가 아니라 경영 제고를 목적으로 도입된 것”이었다고 지적했다.

권 교수는 이어 “노사간 합의 등을 통해 임금체계를 개편하는 일반적인 임금피크제와 상황이 다르다”며 “정년 연장, 청년 고용 촉진 등 합리적인 이유와 결합한 임금피크제를 겨냥한 판결이 아니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경미 기자 gae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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