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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공항 난민’ 5명 방치한 법무부에…재판부 “심사도 안 하고 가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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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 심사 거절당한 에티오피아인 5명

인천공항 승강장에서 두 달 넘게 생활

법무부의 반복되는 ‘심사 불회부’ 결정에

법원 “진짜 난민이면 어떡할거냐” 지적


한겨레

내전을 피해 한국에 입국했으나 난민 심사 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아 인천국제공항에서 2달 넘게 머무르고 있는 에티오피아 난민신청자가 25일 잠을 청하고 있다. 난민인권네트워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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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 심사만이라도 받게 해주세요.”

에티오피아 난민신청자 5명이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 출국장에서 두달 넘게 지내고 있다. 난민인정심사(난민심사)를 거절당해 인천공항에서 287일 동안 생활한 끝에 지난해 10월 난민으로 인정받은 ‘루렌도 가족’ 이후 또다시 ‘공항 난민’이 생긴 것이다.

에티오피아는 정부군과 반군의 내전 등으로 계속해 난민이 발생하고 있지만, 정부는 한국에 온 이들에게 난민심사를 받을 기회를 허락하지 않고 이유도 상세히 설명하지 않았다. 현재 이들은 난민심사를 받게 해달라고 소송을 제기하고 불안한 하루를 보내고 있다.

“고국은 전쟁터…생명의 위협”


26일 난민신청자들과 난민인권네트워크 등의 설명을 종합하면 지난 3월 중순 인천국제공항에 에티오피아 국적 난민신청자 5명이 도착했다. 모두 본국에선 일면식이 없던 사이로 40대 남성 1명과 30대 남성 1명, 20대 남성 3명이다. 이들은 에티오피아 암하라족 출신으로 지난 2020년 이후 에티오피아 연방정부와 반군인 티그라이 인민해방전선 간의 분쟁과 에티오피아 내 종족 간 갈등으로 생명의 위협을 받아왔다고 주장하고 있다. 미국 비영리단체 ‘무장 충돌 지역 및 사건 데이터 프로젝트’(ACLED)는 지난해 1월1일부터 올해 2월1일까지 에티오피아 내에서 전투 1099건, 민간인 대상 폭력행위 352건, 사망자 8894명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유엔난민기구는 지난 3월 에티오피아에서 피신하는 국민을 강제송환하지 않고, 난민법에 따라 공정하고 효율적인 절차를 통해 심사하라고 전세계에 요청했다.

그러나 이들의 난민인정 신청에 법무부 산하 인천공항출입국·외국인청은 지난달 8일 난민인정심사를 받을 수 없다는 불회부결정을 내렸다. 이들의 사연은 유엔난민기구를 통해 난민단체에 알려졌고, 불회부결정에 대한 취소소송이 제기됐다. 난민 신청자들의 대리인을 맡은 송진성 변호사는 이날 인천지법 앞에서 열린 난민 단체의 ‘공항난민 처우보장을 촉구하기 위한 기자회견’에서 “한국에 오기 전까지는 전혀 모르는 사이였던 이들이 자신이 겪은 고국의 상황에 대해서 유사하게 진술하고 있으며 이들의 진술이 비교적 상세하고 일부 진술은 증거로 뒷받침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출입국·외국인청의 불회부결정은 부당하다”고 말했다.

한겨레

난민인권네트워크 등 난민단체 관계자들이 26일 오전 인천지방법원 앞에서 에티오피아 난민신청자들의 난민심사 불회부 결정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이우연 기자 az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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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뇨병도 있는데…음식으로 고통”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에티오피아 난민신청자들은 몸을 씻고 음식을 먹고 잠을 자는 등의 기본적인 권리도 보장받지 못한 채 지내고 있다. 이들은 출국장 보안구역 내에 있는 간이 의자에서 잠을 청하고 있으며, 가져온 생활비가 모두 떨어져 난민단체 등으로부터 모금된 생활비로 간간이 음식을 사 먹고 있다고 한다. 공항 생활 초반에는 코로나19의 이유 등으로 샤워실 사용도 제한됐으며, 현재는 장애인 화장실을 개조한 간이 샤워실에서 씻고 있다. 난민신청자 중 한명인 ㄱ은 <한겨레>에 모바일 메신저로 “20일 동안 샤워를 하지 못했고, 불편한 화장실에서 씻어야 했다. 당뇨병이 있는 한 에티오피아인은 병원에 가지도 못하고 공항 내에서 먹을 수 있는 음식도 없어서 고통받고 있다”고 말했다.

2019년 난민심사 불회부 결정으로 공항난민으로 지냈던 앙골라인 ‘루렌도 가족’ 사건 이후, 공항난민들의 인권침해 문제가 지적됐음에도 제도적 개선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 입국이 불허된 외국인은 공항 내 ‘출국대기실’에 머무를 수 있다. 그러나 출국대기실은 항공사운영위원회(AOC)가 관리하고 있어 입국자들의 담당 항공사에서 비용을 내지 않으면 이곳에서 숙식을 해결할 수 없다. 에티오피아 항공사는 이들 5명의 숙식비 지급을 거부했다. 5명이 의자에서 잠을 청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오는 8월부터는 출입국관리법 개정안에 따라 국가가 직접 출국대기실을 운영하게 되지만, 난민단체들은 이 또한 대합실 같은 형태여서 불회부 취소소송 결과를 기다리는 이들이 머무르기엔 충분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장기 대기자의 인도적 처우를 위해 출입국항 밖에 출국대기소를 설치해야 한다는 것이다.

재판부 “가혹한 행위…진짜 난민이면 어떡할거냐”


에티오피아 난민신청자들은 난민심사라도 받게 해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ㄱ은 “조부모로부터 한국은 에티오피아의 친구라고 들었다. 한국과 에티오피아 간 이어져 온 오랜 우호 관계를 생각했을 때 이런 상황은 예상치 못했다”며 “우리는 내전과 대량학살을 피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도피한 이들”이라고 말했다. 에티오피아는 한국전쟁에 지상군을 파병한 유일한 아프리카 국가다.

법무부가 이들 앞으로 보낸 통지서에는 난민법 시행령 제5조 7항(오로지 경제적인 이유로 난민인정을 받으려는 등 난민인정 신청이 명백히 이유 없는 경우)에 해당해 난민심사에 넘기지 않는다고 적혀 있었다. 난민신청자들은 자신들이 어떤 이유로 난민심사를 거부당했는지조차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이날 오전 인천지법에서 열린 불회부결정 취소소송에서 재판부는 법무부의 난민심사 불회부결정에 ‘가혹한 행위 아니냐’며 인천공항출입국·외국인청의 주장을 반박했다. 피고로 참석한 인천공항출입국·외국인청 쪽은 “입국이 불허된 후 이에 대한 회피로 난민을 신청했다고 볼 수 있어서 불회부했다”고 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난민인정심사 자체를 안 하는 명백한 사유가 있다고 볼 수 있냐”며 “그렇게 공항에서 기나긴 절차를 기다리며 버텨야 한다는 것은 너무 가혹한 행위가 아닌가”라고 했다. 이어 “6·25 때 우리나라 국민이 다른 나라에서 그러고 있다고 생각해보라. 진짜 난민이면 어떡할 거냐”라고 했다. 난민으로 인정할 수 있는지에 대한 여부를 난민심사 불회부 취소소송에서 다툴 것이 아니라, 난민심사에서 판단하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불회부 결정을 직권으로 취소하라는 내용의 조정권고안을 제시했다.

이우연 기자 az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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