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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댕이로 유명한 강화 후포항, 이건 모르셨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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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대를 찾아가는 길 12] 강화도 화도면 내리 '선수돈대'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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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밴댕이무침 ⓒ 이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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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 이삭이 누렇게 팰 무렵, 밴댕이는 통통하게 살이 오른다. 5월 중순부터 6월까지가 밴댕이가 맛있을 때다. 산란하기 전이라 몸에 지방이 차올라 육질이 부드럽고 고소해서 오뉴월이 밴댕이가 가장 맛있을 때라고 한다.

밴댕이는 청어과의 등푸른생선으로 우리나라의 서남해안에 두루 넓게 분포하지만 강물이 바다를 만나 서로 섞이는 기수역(汽水域)에서 나는 밴댕이를 최고로 친다. 특히 한강, 임진강, 예성강이 바다로 흘러드는 강화 연안이 밴댕이 맛이 좋기로 예로부터 유명했다.

강화 후포항, 밴댕이 거리

인천 강화군 화도면 후포항은 밴댕이로 널리 알려진 곳이다. 공식 명칭은 '후포항'이지만 인근 사람들은 이곳을 '선수포구'라고도 한다. 후포항 뒤의 산 모양새가 꼭 바다 쪽을 향해 불쑥 튀어나온 뱃머리(船首) 같다고 해서 그렇게 이름이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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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수돈대 ⓒ 이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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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포항 인근에 돈대가 하나 있다. '돈대'는 적의 움직임을 살피거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 해안 지역에 쌓은 조선시대의 방어 시설을 말한다. 강화에는 모두 54개의 돈대가 있었다. 대부분의 돈대는 조선 숙종 때 만들어졌다.

마니산이 뻗어 내려오다가 바다를 앞에 두고 멈춘 곳에 선수돈대가 있다. 원래는 '검암돈대(黔巖墩臺)'라는 이름이었는데 나중에 선수돈대로 이름이 바뀌었다. 돈대 근처에 선수포구가 있어 그렇게 불린 듯하다.

후포항 근처 선수돈대(船首墩臺)

숙종(재위 1674~1720년)은 보위에 오르자 나라를 튼튼히 하기 위해 국방군사시설들을 만들기 시작한다. 병자호란을 겪은 지 40여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전쟁의 기억은 두렵고 고통스러웠다. 다시는 그런 굴욕을 당하고 싶지 않았던 조정에서는 강화도에 48개의 돈대를 만든다.

숙종 4년(1678) 10월, 왕은 병조판서 김석주를 강화도로 내려 보낸다. 돈대를 쌓기에 알맞은 장소를 물색하기 위함이었다. 그 다음해인 1679년 3월부터 공사에 들어갔다. 강화 해안을 따라 48개의 돈대를 석 달도 안 걸려 다 만들었다. 돈대를 만드는 공사는 전문 석수(石手)를 비롯해서 돌 쌓는 인부들까지, 약 15000여 명의 사람들이 투입된 거국적인 국책사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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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화도 54 돈대 ⓒ 이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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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는 조선의 심장부인 한양으로 들어가는 길목이다. 강화를 지키는 게 곧 한양을 지키는 것이었고 더 나아가 나라를 보위하는 길이었다. 강화의 해안을 따라 48개의 돈대를 만든 것은 강화도를 요새화할 목적이었던 것이다. 약 2km마다 한 개씩의 돈대가 바닷가 높은 곳에 들어섰으니 강화도는 하나의 큰 성(城)과 다름없었다.

이후로도 강화에 돈대를 더 축조했다. 선수돈대도 나중에 만든 돈대 중 하나다. 숙종 16년(1690) 강화유수 신후재(申厚載)가 강화도의 돈대가 모두 48개라고 왕에게 보고한 사실과 숙종 22년(1696)에 발간된 <강도지(江都誌)>에 검암돈대(선수돈대)의 이름이 처음 나오는 것으로 봐서 선수돈대는 1690년에서 1696년(숙종 16~22) 사이에 만들어진 듯하다.

강화도, 5진 7보 54돈대

선수돈대는 장곶보 관할 아래 있었다. 강화에는 5개의 진과 7개의 보 그리고 54개의 돈대가 있었는데 요즘으로 치자면 대대급 규모의 부대가 5개, 중대급이 7개, 그리고 54개의 소대급 규모의 부대가 강화에 주둔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겠다. 그만큼 강화가 지정학적으로 중요했다는 뜻이리라.

'장곶보(長串堡)'는 강화의 서남쪽 지역에 있었다. 강화군 화도면 장화리에 위치했던 장곶보에는 종9품의 별장과 군관 15명에 배치된 군졸만 86명에 달했다. 장곶보는 미곶돈대, 북일곶돈대, 장곶돈대, 검암돈대(선수돈대) 등 모두 4개의 돈대를 관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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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수돈대 남쪽 성벽 ⓒ 이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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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수돈대 서쪽 성벽. ⓒ 이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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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돈대에서 북쪽으로 약 2km 거리에 송강돈대가 있고 서남쪽으로 약 2.5km 거리에 장곶돈대가 있다. 두 돈대가 바닷가로 툭 튀어나온 언덕에 있는 것과 달리 선수돈대는 바다와 조금 떨어진 지점에 위치해 있다.

선수포구에서 마니산으로 올라가는 길에 선수돈대가 있다. 차가 다니는 길에서 약 500m 정도 산을 올라가야 돈대를 만날 수 있다. 인가에서 멀리 떨어진 지점에 있어서 그런지 선수돈대는 비교적 원형이 많이 남아 있다.

옛 문헌 속의 선수돈대

조선 후기 각 읍에서 편찬한 읍지를 모아 책으로 엮은 여지도서(輿地圖書)와 강도부지(江都部誌) 같은 옛 문헌에는 '선수돈대(검암돈대)의 둘레는 73보이고 성가퀴는 23개'라고 나와 있다. 또 '돈대 앞에 배를 댈 수 있으며 북쪽으로 송강돈과의 거리는 3백 50보이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지금의 후포항이 옛 문헌에서 말한 '배를 댈 수 있는' 그곳이었으리라.

1999년에 육군박물관에서 선수돈대를 조사했을 때 서남쪽 성벽 일부가 훼손된 게 확인되었다. 2019년 조사한 바에 따르면 돈대 성벽의 규모는 남북 31.2m, 동서 17.4m로 확인되었다. 또 돈대의 둘레는 97m이고 남아있는 성벽의 높이는 2.55m내외로 조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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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년 4월, 선수돈대 ⓒ 이필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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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문화재자료 10호로 지정되어 있는 선수돈대는 직사각형 모양으로 둘레가 97m이다. 6~8단에 달하는 성벽은 비교적 잘 남아 있지만 몸을 숨긴 채 활이나 총을 쏠 수 있도록 성벽 위에 설치한 성가퀴는 흔적만 있을 뿐 남아 있지 않다. 선수돈대는 2015년 7월부터 8월에 걸쳐 시굴 조사를 한 후 9월에 보수를 했다.

변화의 바람에 올라타서

강화에서는 물수국(불두화) 꽃이 피면 모내기를 한다. 물수국이 피었다. 밴댕이가 맛있는 철이 되었다. 선수돈대 아래 후포항도 밴댕이를 맛 보려는 사람들로 제법 붐빈다.

밴댕이는 몸 길이가 약 15cm 정도의 작은 생선으로 떼를 지어 몰려 다닌다. 바다를 유영하던 밴댕이들이 그물에 걸렸다. 배로 끌어올릴 때 쯤이면 밴댕이는 다 죽어 있다. 제 성질을 못 이겨 파닥거리다 죽은 것이다.

밴댕이들의 이런 습성을 보고 '밴댕이 소갈머리'라는 말이 생겼다. 속이 좁아 너그럽지 못한 사람을 일러 '밴댕이 소갈머리 같다'고 한다. 그러나 달리 생각해 보자. 내장이 작아 몸이 가벼운 밴댕이들은 행동이 민첩해서 상황 변화에 재빨리 적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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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입문을 통해 본 선수돈대. ⓒ 이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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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수돈대 ⓒ 이필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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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보니 우리 민족은 변화의 바람을 알아채고 재빨리 반응하는 게 부족했다. 명나라가 망하고 청나라가 들어섰지만 여전히 명을 추종했다. 그래서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을 당했다. 밴댕이처럼 민첩하게 행동했더라면 돈대를 만들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우리는 그러지 못했다.

선수돈대에서 380여 년 전 과거를 생각한다. 병자호란으로 국토가 유린되고 백성들은 뿔뿔이 흩어져 유랑했다. 시대의 흐름에 민첩하게 대응했더라면 당하지 않았을 수도 있는 전쟁이었다.

지금 우리나라는 어떨까. 우리를 둘러싼 바람은 어디를 향해 부는 걸까. 후포항이 내려다보이는 선수돈대에서 시대의 바람 냄새를 맡아본다.

이승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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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강화뉴스>에도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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