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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당만 달라도” “젊으니 다음에”…당적·나이 이중벽 맞서는 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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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지방선거 험지에 나선 사람들

한겨레

전유진 민주당 달성군수 후보가 달성군 시내에서 선거 유세를 하고 있다. 전 후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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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만 잘 골랐어도 한 표 주는 건데....” “당신은 젊잖소. 다음에 나오면 뽑을게.”

지역도, 당적도 다르지만 ‘험지’에 출마한 청년 후보들에게 돌아오는 말들은 비슷하다.

다수는 선거 운동복인 파란색 혹은 빨간색 재킷만 보고도 냉랭한 시선을 보낸다.

하지만 연신 고개를 숙이고 손을 내민다. 건넨 명함이 곧바로 땅바닥에 처박히거나, 다짜고짜 욕설을 들을 때는 한없는 “외로움과 낭패감”이 밀려온다.

‘잘못 고른’ 당적 탓에, 어린 나이 탓에 지역 인맥도, 후원금도 부족한 청년 후보는 ‘젊음’이 오히려 거추장스럽다. 그래도 드문드문 들려오는 “당은 참 별로인데 후보는 괜찮네”라는 한 마디에 마음은 “스프링처럼” 튀어 오른다. 그 미세한 변화가 청년 후보들이 ‘나이’와 ‘당적’이라는 험지의 이중벽을 피하지 않는 이유다.

“다음 군수는 너다…이번엔 어리니까 안 뽑아준다는 말이죠”


더불어민주당 하동군수 후보로 나선 강기태(38)씨는 유세를 위해 트랙터를 타고 지역을 누빈다. 하동 농촌에서 자랐고, 농부의 아들인 그에게 ‘트랙터’는 단순한 운송수단 이상이다. 그는 20대였던 2008년, 180일 동안 트랙터를 타고 전국을 일주해 ‘트랙터 여행가’로 유명세를 탔다. “트랙터를 타고 하동읍 시장을 한 바퀴 돌면서 인사를 해요. 트랙터는 빠르지 않기 때문에 더 한분 한분 정성 들여 인사할 수 있어요.”

‘트랙터 유세’로 하동군민의 눈길에는 들었지만 ‘젊은 나이’가 걸림돌이다. 하동 주민 평균연령은 55.1살이고, 50살 이상이 전체 인구의 66.7%(2021년 11월 기준)를 차지한다. “처음 시작할 때 만 38살 젊은 군수가 되겠다고 하니까 반신반의하는 분들이 많았어요. ‘다음번에는 네가 군수다’라는 말씀을 많이 하세요. 이번에는 어리니까 안 뽑아준다는 말이죠.(웃음)”

‘나이’도 어린데 당적마저 ‘저쪽 당’이면 애로가 더 크다.

대구 달성군수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전유진(44)씨는 “선거 사무원 모집할 때가 가장 어렵다”고 했다. 2018년 4명의 후보가 당선되기 전까지 23년 동안 대구에서 민주당 후보가 지역구 시의원으로 당선된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 전씨는 “자영업자는 민주당 후보를 도와주면 당장 생계에 지장이 생길 수 있다는 두려움이 있다”고 했다. 네 아이를 둔 ‘워킹맘’인 그는 학부모회에서 같이 활동했던 지인들 20여명을 알음알음 모아 선거를 치르고 있다.

때론 봉변도 당한다. 2주 전, 달성군 대실역 삼거리에서 유세하던 그에게 자전거를 탄 젊은 남성이 욕설하면서 달려들었다. 이를 막은 것은 주변 달성군민들이었다. “저보다 지나가던 군민들이 더 놀랐어요. 요즘 세상에 저런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경찰에 신고하라고 먼저 말씀하시더라고요.”

한겨레

한상욱 전주시의원 후보자가 25일 오전 전북 전주시 덕진구 여의동에서 상가 주민들로부터 불편사항을 받고 있다. 한 후보 제공


거부감 없애려 유세차는 ‘초록색’으로


숱한 어려움에도 ‘특정 당 일색’인 지역정치판을 바꾸겠다는 신념은 청년후보들을 ‘험지’로 이끈다. 6·1 지방선거 전주시의원 선거에 국민의힘 후보로 출마한 한상욱(34)씨는 “저처럼 교육 문제 때문에 고향을 떠나는 사람들이 더는 나와선 안 된다”고 했다.

한씨는 서울에서 자랐다. 전주에서 나고 자란 부모는 한씨가 태어나자마자 서울로 이사했다. 아이 교육에 전주보다는 서울이 더 도움이 될 거라는 판단에서다. 서울과 인천에서 초·중·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나온 한씨는 전북 익산에 있는 식품 관련 회사에서 아이티(IT) 유통 일을 했다. 그러나 곧 수도권에서 일하는 또래 친구들보다 월급도 적고, 근무 환경도 열악하다는 걸 느꼈다. 동료들은 버티지 못하고 서울로 떠났다. 그러나 한씨는 전주는 떠나야 할 곳이 아니라 변화시켜야 할 곳으로 느꼈다.

그는 민주당 일색인 지역 정치판을 바꾸는 게 변화의 첫걸음이라고 생각했고 국민의힘에 입당해 정치를 시작했다.

호남은 국민의힘에서 후보조차 잘 내지 않았던 곳이다. 이번에는 한씨처럼 ‘험지’에 도전장을 내민 2030 후보자는 전북 지역에서 모두 6명이다. 이왕 후보를 낼 거면 청년 후보를 내는 게 좋다는 지역 여론도 있다고 한다. 국민의힘 전남도당 관계자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전남도의원 비례대표 선거 후보 경선 투표에서 여성, 50대 이상인 대다수 후보를 제치고 김현석(31) 후보가 2위로 올랐다. 50대, 민주당이 대다수인 도의회 구성이 오래되다 보니 젊은 사람, 참신한 사람이 나와야 한다는 여론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래도 선거운동은 쉽지 않다. 비례대표 2번을 받았지만, 전라북도 기초의원 236명 가운데 국민의힘은 0명이라는 처참한 통계를 본 뒤 전주시의원 지역구 출마를 선언한 정선화(41)씨의 유세차는 초록색이다. ‘빨간당’ 등 지역 주민들의 막연한 거부감을 중화시키겠다는 뜻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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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화 전주시의원 후보가 25일 오전 전북 전주시 중노송동 예우랑 사거리에서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 정 후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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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기태 민주당 하동군수 후보가 트랙터 위에서 선거유세를 하고 있다. 강 후보 제공


“이번에 안 되면 4년 뒤에, 8년 뒤에 다시 출마할 것”


험지 출마는 ‘단판 승부’가 아니다.

청년 후보들에게는 특히 그렇다. 한상욱 국민의힘 후보는 당선 가능성을 묻자 “떨어지거나 당선되거나 둘 중 하나이니 50%”라며 “호남 출신인지, 국민의힘 출신인지보다는 한상욱의 비전이 주민들의 마음을 울리면 붙을 거고, 그렇지 않으면 다시 도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강기태 민주당 후보도 “하루하루 버텨내는 게 쉽지 않지만, 매일 0.1%의 주민들을 설득해간다는 마음으로 선거운동을 한다”고 했다.

“당적만 바꾸면 뽑아주겠다는 분들 많아요. 하지만 진보적인 농업 정책, 교육 정책이 하동에 필요하다고 믿기 때문에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것이거든요. 이번에 안 되면 4년 뒤에 도전할 거고요. 4년 뒤에 안 되면 8년 뒤에 다시 도전할 거에요. 앞으로 10년은 도전한다는 청사진으로 왔기 때문에 출마에 후회가 없습니다.”

임재우 기자 abbado@hani.co.kr 오연서 기자 lovelett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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