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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황혼이혼 10년새 2배 이상 증가… “아직 살 날 많다”며 개인의 행복 찾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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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다시 쓰는 젠더 리포트]

자녀들도 “부모님 결정 존중”

헤어질때 연금 분할 가능해져 경제적 압박 줄어든 영향도

70대 여성 A씨는 이혼 상담을 위해 작년 가정법률상담소를 찾았다. 결혼 후 남편의 폭언과 무시가 이어졌지만, 남편이 경제권을 쥐고 있기 때문에 비위를 맞추며 살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A씨는 “최근엔 건강이 나빠져 내 몸 가누기도 힘든데, 남편 수발마저 들어야 한다”며 “이제라도 헤어져 단 하루라도 마음 편히 살고 싶다”고 했다.

노년에라도 자유를 찾겠다는 ‘황혼 이혼’이 증가하고 있다. 과거엔 갈등이 생겨도 가정을 유지하는 것이 우선순위였다면, 요즘은 개인의 행복을 중시하는 경향이 강해지면서 별거 혹은 졸혼의 이름으로 갈라서는 부부들이 늘고 있다.

조선일보

전체 이혼은 줄고 황혼 이혼은 늘고


통계청 ‘혼인∙이혼 통계’에 따르면, 2021년에 30년 이상 결혼 생활을 하다 이혼한 부부는 전체 이혼 건수에서 17.6%를 차지했다. 2011년엔 7.0%에 불과했던 황혼 이혼이 10년 새 10% 이상 증가한 셈이다. 2011년 11만4300건이었던 이혼 건수가 2021년 10만1700건으로 1만건 이상 줄어든 반면, 황혼 이혼은 2011년 7900건에서 2021년 1만7900건으로 크게 늘어난 것도 주목된다.

부모의 이혼에 대해 “괜찮다”는 정서적 지지를 보내는 자녀들이 늘어난 것 역시 황혼 이혼이 증가하는 이유 중 하나다. 20년 이상 이혼 상담 업무를 진행한 한국가정법률상담소 관계자는 “2000년대까지만 해도 부모의 이혼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녀가 많았다”면서 “최근엔 가정보다 개인의 권리가 중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돼, 황혼 이혼 상담을 하러 온 내담자 10명 중 7명은 자녀의 지지를 받고 온 경우”라고 했다.

본지와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의 젠더의식 조사에 따르면, 2030세대 10명 중 6명은 ‘노년에 황혼 이혼을 하는 부부를 이해할 수 있다’고 답변했다. 특히 20대 여성과 30대 여성은 각각 70.8%, 67.9%가 황혼 이혼을 이해한다고 답해, 20대 남성(50.6%)과 30대 남성(55.3%)에 비해 노년 이혼에 대한 거부감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혼 시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환경이 과거보다 나아진 점도 황혼 이혼을 선택하는 배경이다. 이혼 재산 분할 판결 시 가사노동이 자산 형성에 기여한 정도를 높게 인정해주는 경우가 늘어나고, 이혼한 배우자의 연금을 나눠 수령할 수 있는 ‘연금 분할 제도’의 적용 대상이 넓어지면서 경제적으로 이혼을 선택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 것이다. 1999년 시작된 연금 분할 제도는 혼인 중 양육과 가사 노동으로 국민연금에 가입하지 못한 배우자의 기여를 인정해 이혼 시 연금을 일정 비율로 나누는 제도로, 2016년 공무원∙사학 연금, 2020년 군인 연금까지 적용 대상이 확대됐다. 국민연금 분할 수급자는 2014년 9797명에서 올해 5만 5122명으로 황혼 이혼 증가와 함께 크게 늘어났다.

전영수 한양대학교 국제학대학원 교수는 “평균 수명이 늘어나며 노년층에서도 가부장제에 기반한 전통적인 가족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지에 대한 회의가 늘어나고 있다”며 “이전에 비해 공평한 비중으로 재산과 연금을 분할할 수 있게 돼 경제적 독립이 제도적으로 보장되는 점, 현재 노년 부부의 자녀 세대는 부모의 이혼에 개의치 않고 ‘당신의 삶을 응원한다’는 태도를 보이는 점 역시 황혼 이혼 증가의 원인”이라고 했다.

〈특별취재팀〉

김윤덕 주말뉴스부장, 김연주 사회정책부 차장, 변희원 산업부 차장, 김경필 정치부 기자, 유종헌·유재인·윤상진 사회부 기자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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