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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텍사스 초교서 또 총기 난사… 올해 美 학교서만 38차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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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19명·교사 2명 사망

따돌림 겪은 빈곤 가정 고교생

18세 생일 맞아 총기·탄창 구매

점심시간 학교 침입해 무차별 난사

코로나 후 총기 신규 구매 3배 폭증

바이든, 의회에 총기 규제 호소

조선일보

24일(현지 시각) 18세 고교생의 초등학교 총기 난사 사건으로 어린이 19명과 교사 등 21명이 숨진 미국 텍사스주 유밸디에서 시민들이 희생자를 추모하며 오열하고 있다. 바이든 미 대통령은 TV 연설에서 “침대에서 뛰고 품에 안기던 자식을 다시는 볼 수 없게 된 부모의 마음은 갈기갈기 찢겼을 것”이라며 “이 고통을 의회가 행동으로 바꿔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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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텍사스주 초등학교에서 24일(현지 시각) 18세 고교생의 ‘묻지 마 총격’으로 어린이 19명을 포함, 21명이 사망했다. 올 들어 미국에서 발생한 최대 규모 총기 난사 사건으로, 2012년 26명의 생명을 앗아간 코네티컷 샌디훅 초등학교 참사 이래 최악의 교내 총기 사건으로 기록될 전망이다. 치명상을 입고 병원으로 후송된 이가 10여 명에 달해 희생자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총격은 이날 오전 11시 반쯤 텍사스 남부 소도시(인구 1만5000여 명) 유밸디에 있는 롭 초등학교에서 벌어졌다. 전교생이 600여 명인 이 학교는 2~4학년(7~10세) 전용 학교다. 사건 당시 점심시간인 데다 다음 날 방학식을 앞두고 있어 들뜨고 소란스러운 분위기였다고 한다. 방탄복을 입고 픽업트럭을 몰고 온 총격범은 교사(校舍) 안으로 들어가 여러 교실을 돌다가, 4학년 교실 한 곳에서 권총과 소총을 무차별 난사했다고 경찰은 전했다.

놀란 아이들이 창문을 넘어 도망치고 숨었지만, 총탄에 맞아 잇따라 쓰러졌다. 학생을 보호하려 총격범을 막아서던 교사 2명도 사망했다. 현장에서 숨진 어린이는 14명으로 알려졌으며, 13명은 치명상을 입고 응급실로 실려갔다. 밤늦게까지 유전자 대조 작업 결과를 기다리다 아이의 죽음을 확인하고 오열하는 부모와 가족, 이웃들이 학교와 병원 주변에 가득했다. 유밸디 당국은 이날부터 관내 모든 학교를 폐쇄했다. 그레그 애벗 텍사스 주지사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끔찍한 비극”이라고 했다.

총격범은 롭 초등학교 인근 유밸디 고교에 재학 중인 샐버도어 라모스(18)로 확인됐다. 라모스는 출동한 경찰과 연방수사국(FBI) 진압 요원과 대치하다 사살됐다. 그는 이날 오전 먼저 자신의 할머니를 총으로 쏘고 롭 초등학교로 향했다. 할머니는 중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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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텍사스주 롭 초등학교 총기 난사 사건 범인으로 지목된 샐버도어 라모스(18). 오른쪽은 그가 범행 전 올린 것으로 추정되는 2정의 총기 사진. 이 사진을 4일 전 학교 친구 등에게도 보냈다고 한다. 라모스는 이날 경찰에 사살됐다.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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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라모스는 가정 형편이 좋지 않았고, 어린 시절 언어장애로 심각한 따돌림과 괴롭힘을 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의 친구는 “(라모스는) 최근 몇 년간 주변에 폭력을 행사했고, 재미 삼아 칼로 자기 얼굴에 상처를 낸 적도 있다”고 전했다. 라모스는 고교 3학년이지만, 오랫동안 학교에 나오지 않아 졸업 요건을 채우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이달 초 텍사스 주법상 총기 구매 최소 연령인 18세 생일을 맞아 AR-15 소총과 대용량 탄창 등을 구매했다고 한다. 범행 며칠 전엔 총기와 탄창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리고, 친구에게 따로 사진을 보내기도 했다. 모르는 여성에게 “비밀을 알려줄게. 내가 뭔가를 할 거야”란 메시지도 보냈다. 라모스가 총기를 난사한 정확한 이유는 아직 파악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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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미국 내 주요 총격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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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숨진 자비에르 로페즈(10)군의 어머니는 현지 매체 인터뷰에서 “불과 몇 시간 전 아이의 우등상 시상식에 참석했다”고 눈물을 흘렸다. 일부 가족은 밤새도록 자녀의 생사를 확인하지 못해 발만 동동 굴렀고, “아이가 나오면 덮어주겠다”며 담요와 인형을 안고 기다리는 부모도 있었다 . 브랜든 엘로드씨는 “열 살 딸을 어디서도 찾을 수 없어 일단 장례식장으로 가는 중”이라며 울먹였다.

백악관 등 워싱턴 DC의 모든 연방 기관은 이날도 조기(弔旗)를 게양했다. 불과 열흘 전인 지난 14일 뉴욕주 버펄로에서 18세 백인 우월주의자가 흑인 밀집 지역 수퍼마켓에서 총기를 난사해 숨진 희생자 10명을 애도하며 건 조기를 내리기도 전에 더 큰 총격 참사가 일어난 것이다. 총기 폭력 예방 단체에 따르면, 올 들어 이날까지 미 전역에서 4명 이상이 죽거나 다친 총격 사건은 총 212차례로 집계됐다. 이 중 초·중·고교 내에서 발생한 크고 작은 총격이 38차례나 된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한국과 일본 순방을 마치고 귀국한 직후 사건 브리핑을 받고 대국민 TV 연설을 했다. 검은 상복 차림의 질 바이든 여사와 함께 나온 바이든은 “침대에서 뛰고 품에 안기던 자식을 다시는 볼 수 없게 된 부모의 마음은 갈기갈기 찢겼을 것”이라고 말했다. 부통령 시절인 2012년 샌디훅 초등학교 참사 수습을 지휘하고 총기 규제 입법을 추진했던 그는 “열여덟 살짜리가 총기 상점에 들어가 그냥 총을 살 수 있어선 안 된다”며 “이 고통을 의회가 행동으로 바꿔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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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워싱턴DC 백악관에 24일(현지 시각) 텍사스주에서 발생한 총기 난사 사건 피해자를 추모하는 조기(弔旗)가 게양돼있다. 열흘 전 뉴욕주 버펄로 수퍼마켓 총기 난사로 숨진 희생자 10명을 추모해 게양된 조기가 내려지기도 전에 더 큰 참사가 일어났다. /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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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이 말한 ‘의회의 행동’은 총기 규제법 처리를 말한다. 바이든 정부와 민주당은 총기 폭력을 ‘공중 보건을 위협하는 전염병’으로 규정하고 구매 시 신원 확인 강화, 대용량 탄창 판매 금지, 부품을 사서 직접 조립하거나 3D 프린터로 찍어내는 유령총(ghost gun) 규제, 총기 제조사 책임 강화 등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총기 이익 단체의 반대, 총기 소지를 헌법상 권리로 보는 공화당에 가로막혀 총기 규제는 제자리걸음을 반복하고 있다.

오히려 코로나 팬데믹과 정치 지형의 극단화, 범죄 급증 등에 따른 치안 불안과 총기 규제에 대한 반발로 최근 2년간 총기 신규 구매 건수가 3배 폭증했다. 뉴욕타임스는 각종 총기 참사에 대한 비판에도 총기 제조 업체가 2000년 2222곳에서 2020년 1만6936곳으로 급증했으며, 인구가 3억3000만명인 미국에 현재 4억정 이상의 총기가 풀려 있다고 전했다. 이날 프란치스코 교황은 “희생된 어린이와 어른, 그들의 가족을 위해 기도한다”고 했다. 각국 정상들도 애도 성명을 냈다.

[뉴욕=정시행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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