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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6·25 영웅에 보청기 나눈 사업가, 72년 만에 아버지 무공훈장 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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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년만에 돌아온 아버지 무공훈장

고인된 아버지 대신 아들이 받아

아들은 전쟁 영웅에 보청기 나눠

조선일보

왼쪽부터 우경관 육군 인사행정처장, 장준규 전 육군참모총장, 심상돈 스타키그룹 대표, 신기진 6·25 무공훈장 찾아주기 조사단장. 가운데 고(故) 심은택씨의 생전 흑백 사진이 놓여 있다./스타키그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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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살아계실 때 거수경례를 해드린 적이 없는 것 같네요. 오늘 처음 해봅니다.”

25일 오전 11시 서울 종로구 스타키홀에서 6·25전쟁 참전 영웅 고(故) 심은택씨에 대한 화랑무공훈장 수여식이 열렸다. 1974년 고인이 세상을 떠나, 아들인 심상돈(66) 스타키그룹(보청기 업체) 대표가 훈장을 대신 받았다. 6·25전쟁 발발 72년만에 전쟁 영웅의 아들에게 훈장이 전달된 것이다.

이날 행사에는 심 대표 등 유족들과, 장준규 전 육군참모총장, 박승춘 전 국가보훈처장, 육군 인사행정처장 우경관 준장, 6·25 무공훈장 찾아주기 조사단 단장 신기진 대령 등이 참석했다.

육군·유족에 따르면 1931년생인 심은택씨는 경기 양평군에서 살다가 18살이던 1949년 군에 입대했다. 이듬해 북한의 기습 남침으로 6·25전쟁이 터졌다. 심씨는 육군 6사단 의무대 소속 위생병으로 전투들에 참전했다. 육군 관계자는 “고인은 북한군의 남하를 저지한 춘천지구전투에서 활약하고, 낙동강·압록강 등에서 이뤄진 작전에도 참여한 것으로 파악된다”고 했다. 유족들은 “생전 아버지가 ‘전쟁 당시 압록강까지 갔었다’ ‘전우가 죽는 것을 수없이 보았다’고 말하곤 했다”고 말했다.

정전 협정 이후인 1954년 4월 일등중사로 전역한 심씨는 이후 한국은행에 다니며 네 자녀를 키웠다. 하지만 1974년 급성 고혈압으로 쓰러졌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났다. 고인이 세상을 떠난 이후 유족들은 아버지가 무공훈장 대상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지냈다. 심씨 역시 생전 훈장에 관한 이야기는 꺼낸 적이 없었다고 한다.

그러던 지난 3월, 유족들에게 육군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아버지가 화랑무공훈장 대상이었다는 것이다. 군에 따르면, 전쟁 첫 해인 1950년 12월 심씨에게 금성화랑무공훈장을 수여하기로 결정된 기록이 남아 있었다. 6·25전쟁 당시 육군의 무공훈장 수훈자는 16만 2950명에 이른다. 하지만 전쟁 상황이 급박해 수여 대상자에게 약식증서를 수여하기도 했고, 주민등록체계가 정립되지 않아 추후 수여하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이렇게 전달되지 못한 훈장은 5만 6000개에 달했다.

이에 군은 2019년 6·25 무공훈장 찾아주기 조사단을 발족해 친족 관계를 바탕으로 탐문을 시작했다. 탐문을 통해 주인을 찾은 훈장은 현재까지 1만 7000여개에 이른다. 지난 3월 군은 양평군에서 탐문을 했고, 심씨가 입대 전 양평에서 거주했기에 유족에 대한 단서를 찾아 연락한 것이다.

아들인 심상돈 대표는 1996년부터 스타키그룹의 대표로 지내며 보청기·청각 관련 사업을 하고 있었다. 10여 년 전부터는 6·25전쟁 영웅, UN군 참전용사, 독립유공자들을 찾아 무상으로 보청기를 제공하곤 했다. 심 대표는 “아버지가 평소 국가 안보를 강조했었고, 나도 카투사로 복무하며 영어를 배우고 미군을 만나는 등 군의 혜택을 많이 봤다”고 했다. 이렇게 전달된 보청기는 300여 개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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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오전 우경관(오른쪽) 육군 인사행정처장이 심상돈(왼쪽) 스타키그룹 대표에게 고(故) 심은택씨의 화랑무공훈장을 전달하고 있다./김민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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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영웅들께 보청기를 드리곤 했는데, 우리 아버지가 무공훈장을 받기로 결정된 전쟁 영웅이었다니 놀랐다”며 “앞으로도 전쟁 영웅들께 보청기를 드리는 일을 계속할 것”이라고 했다. 이날 행사에 참여한 우경관 육군 인사행정처장은 “과거엔 행정 체계가 지금 같지 않아, 훈장을 바로 못 받으신 분들이 생겼다”며 “늦었지만, 전쟁에서 헌신하신 분을 위해 군이 책임지는 자세로 공훈을 돌려드리겠다”고 했다.

[김민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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