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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손흥민 만든 아빠, 기본기만 7년 시켰다…완벽한 실력의 바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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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운동장에는 소금·모래 실어 날라 다지고

컨테이너 살아도 아들에겐 가장 비싼 축구화

유학 전 독일어 강사 붙여준 유일한 아버지

성과 지향 학부모, 지도자 조급증 탈피하고

대회·실전 중심 유소년 패러다임 바뀌어야


한겨레

손웅정과 손흥민. 수오서재 제공


‘기적의 선수’ ‘아시아의 한계를 깼다’ ‘이제 손흥민이 한국축구의 기준이다’.

손흥민(30·토트넘)이 2021~2022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득점왕에 오르면서 쏟아진 전문가들의 찬사는 현란하다. 그럴 만도 한 것이 EPL은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축구무대로 꼽힌다. 720명의 선수들은 각 나라의 대표급이다. 그 가운데 득점 1위를 차지했다는 것은 기존에 상상하기 힘들었던 일이다.

다른 한편, 손흥민의 ‘현재’를 가능하게 한 아버지 손웅정(60)씨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아버지는 손흥민에게 축구 디엔에이(DNA)를 물려주었지만, 기존에 존재하지 않는 게임체인저식 방식으로 아들을 훈육했다. 치열한 반성적 사고에서 나온 독창성의 핵심은 기본기다. 지난해 출간한 〈모든 것은 기본에서 시작한다〉(수오서재)의 제목에서도 그의 철학을 가늠할 수 있다.

실제 손흥민은 초등학교 6학년이 되기 전까지 리프팅 등 기본기 훈련에만 집중했다. “4시간 동안 공을 떨어뜨리지 않아야 했다. 눈이 빨개지고 바닥이 노래졌다. 공이 세 개로 보이는 등 피곤했지만 아버지는 화를 냈다”(가디언)는 손흥민의 말은 거짓이 아니다.

아버지는 컨테이너에서 살거나, 막노동으로 벌이를 해도 ‘축구를 좋아하는’ 아들을 위해서는 늘 ‘최고의 것’을 주고 싶었다. 아들이 겨울이 돼도 훈련할 수 있도록 초등학교 운동장에 모래와 소금을 실어나른 뒤 다지고, 아버지의 주머니를 생각해 축구화 앞에서 망설이는 아들을 밀치고 가장 비싼 축구화를 집어 들고 가게를 나선 게 아버지 손웅정이다.

한국축구는 과거 우수한 자질의 유소년을 어린 시절 망가뜨린다는 비판을 받았다. 뼈와 근육이 완전히 발달하지 않은 상태에서 당장 이기기 위한 소모품으로 활용했다는 것이다. 가령 주력이 빠른 선수는 측면을 파고들어 크로스를 올리고, 키가 크면 헤딩으로 골문을 노리도록 분업화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데서 창의성이 나올 수 없고, 자칫 부상은 평생의 고질이 된다.

손웅정씨가 손흥민을 학교 운동부에 보내지 않고 직접 가르친 것은 본인이 부상으로 일찍 프로선수 생활을 접어야 했던 아픔에서 나왔을 것이다. 트래핑, 패스, 킥, 드리블을 나중에 훈련시키고, 유럽 무대에 진출해서는 체격 큰 선수들과 대결하기 위해 본격적으로 웨이트 훈련을 한 것도 경험에서 나온 것이다.

국내로 눈을 돌려보면 과거보다는 축구 훈련 방식이나 환경이 많이 나아졌다. 대한축구협회는 초등학교 경기 방식을 8대8로 바꿨다. 개인 능력과 기본기를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경기나 대회 출전을 위한 훈련이 주를 이루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주말 리그와 전국대회 등 경기에 초점을 두게 되면 아무래도 기본기 훈련은 소홀히 할 수밖에 없다.

학부모들이나 지도자들의 성적 조급증도 살펴봐야 한다. 손흥민의 아버지 손웅정은 아들을 세계적인 선수로 키우기 위해 지도했다기보다는, 축구를 제대로 즐기도록 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았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손흥민이 세계적인 선수로 큰 것이다.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손흥민의 해외 축구 유학을 돕기 위해 과거 대한축구협회에서 설명회를 열어 “현지 적응을 위해 어학 준비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학부형들한테 아이디어를 주었다. 그런데 이런 조언에 따라 어려운 형편에도 독일어 강사를 수소문해 아들에 붙여준 이는 손웅정씨가 유일했다. 축구를 잘하기 위해서라면 항상 꼼꼼하게 준비하고 대처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물론 손흥민을 훈련시키는 과정은 스파르타식이었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손웅정씨처럼 특별한 아버지 아래서 축구를 배울 수 있는 선수들도 많지 않을 것이다. 더욱이 요즈음에는 다소 강하게 아이들을 훈련시키기도 힘들다. 이런 측면에서 아버지 손웅정과 아들 손흥민의 신뢰와 존경의 관계는 특수한 사례로 남을 것이다. 손웅정씨는 “아이들을 정말 혹독하게 키운 것을 변명할 생각은 없다. 다만 공 차겠다는 아이들을 위해 내 깜냥 안에서 제대로 된 교육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실천했을 뿐”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큰 울림을 남겼다. 황보관 대한축구협회 기술본부장은 “손흥민이 프리미어리그 최종 38라운드 노리치시티전에서 터트린 감아차기골은 감각에서 나온 것이다. 손흥민이 그 지역에 들어가면 공을 잡은 순간부터 슈팅까지 자동적으로 연결된다. 그것은 아무도 할 수 없는 것이며, 그 바탕 위에서 창조적 플레이가 가능하다”고 했다.

기본에 충실할 때 잠재력이 폭발하고, 그 위에서 새로운 축구 세계가 열린다는 뜻이다.

김대길 해설위원은 “손흥민의 아버지는 초등학교나 중학교 축구 문화에서 기본기에 절대적인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주었다. 이것이 말이 아니라 현실화할 수 있도록 축구협회부터 지도자, 학부모까지 절실한 과제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창금 선임기자 kim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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