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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나라는 배, 정치가는 조타수” 플라톤의 말이 가리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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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명섭의 카이로스]

2400년 전 플라톤의 발언은 우리 정치 현실을 눈앞에 보면서 이야기하는 듯 생생하다. 국가 공동체라는 배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 조타수를 찾는 것이야말로 배의 주인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다. 사이비 조타수가 키를 잡게 되면 배가 춤을 추다 난파할 수 있다.



한겨레

기원전 480년 살라미스 해전. 아테네는 200척의 삼단노선을 ‘나무 성벽’으로 삼아 페르시아 해군을 대파했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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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포클레스(기원전 496~406)의 비극 <안티고네>에서 새로 왕이 된 크레온은 나라를 바르게 이끌어가겠다며 테베 시민들을 향해 결연한 목소리로 통치 원칙을 밝힌다. “여러분, 신들께서 우리 도시를 심한 풍랑으로 뒤흔드셨다가 도로 안전하게 일으켜 세웠소. (…) 나는 시민들에게 파멸이 다가오는 것을 보게 되면 침묵하지 않을 것이고, 또 조국의 적을 내 친구로 여기지 않을 것이오. 우리를 지켜주는 것은 조국의 땅이며 조국이 무사히 항해해야만 우리는 진정한 친구를 사귈 수 있소. 이런 원칙에 따라 나는 이 도시를 키워나갈 것이오.”

크레온은 오이디푸스 왕의 두 아들 에테오클레스와 폴리네이케스가 골육상쟁을 벌이다 둘 다 죽자 왕좌를 이어받은 사람이다. 눈길을 끄는 것은 크레온이 위기에 처한 나라를 풍랑에 흔들리는 배에 비유하고, 나라를 다스리는 일을 항해에 비유한다는 사실이다. 극 중의 크레온은 공언과 달리 배를 안전하게 항해시키기는커녕 자신의 말이 곧 법이라고 우기다 자멸의 나락에 떨어진다. 극작가로서 소포클레스가 이렇게 ‘배와 항해의 메타포’를 국가 운영 묘사에 적용할 생각을 한 데는 어린 시절 겪은 페르시아 전쟁이 한몫했을지 모른다. 아테네가 이끄는 그리스 동맹군이 살라미스 해전에서 페르시아 대군을 물리쳤을 때 소포클레스는 10대 소년이었다. 소포클레스는 소년합창단의 선창자로 나서서 승전을 기념하는 찬신가를 불렀다.

헤로도토스는 <역사>에서 기원전 480년의 페르시아 전쟁을 아시아와 에우로페(유럽)가 맞붙어 역사의 거대한 흐름을 바꾼 대회전으로 묘사한다. 이 전쟁에 승리함으로써 아테네는 그리스 일대의 맹주로 올라섰고 이후 50년 동안 민주주의 최전성기를 맞았다. 하지만 전쟁 초기에 크세르크세스 대왕이 이끄는 페르시아 대군의 위세는 온 그리스를 공포에 몰아넣을 만큼 무시무시했다. 페르시아의 육군과 해군이 파죽지세로 그리스를 휩쓸며 내려오자 아테네 지도부는 델포이의 아폴론 신전으로 사절단을 파견해 신탁을 물었다. 신전의 늙은 여사제가 무아지경의 접신 상태에서 신들린 목소리로 아폴론의 예언을 전했다.

“제우스 신께서 그대에게 나무 성벽을 주실 것인즉, 이 나무 성벽만은 파괴되지 않고 그대와 그대의 자식들을 도와주게 되리라. 그대는 육지에서 공격해오는 대군을 가만히 기다리지 말고 도망쳐라. 성스러운 살라미스여, 그대는 여인들의 자식들을 파멸시키리라.”

사절단이 그 모호한 신탁을 받아들고 아테네로 돌아오자 아테네 지도부는 신탁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를 놓고 뜻이 갈렸다. 특히 ‘나무 성벽’(teichos xylinon)이 무엇을 가리키는지를 두고 의견이 대립했다. 일부는 나무 성벽을 옛날 아크로폴리스를 둘러쌌던 가시나무 울타리라고 해석하고 아크로폴리스로 피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도부 일원인 장군 테미스토클레스는 나무 성벽은 나무로 만든 함선을 뜻한다며 해전을 준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의견 차이가 좁혀지지 않자 지도부는 결국 민회를 열어 투표에 부쳤다. 신탁, 곧 신이 내려준 말씀을 해석하는 일조차 일반 투표를 통해 결정하는 것이 아테네 민주주의였다. 민회에서 격렬한 공개 토론이 벌어졌고, 아테네 시민들은 테미스토클레스의 손을 들어주었다.

테미스토클레스는 이전에도 논란이 된 사안에 해법을 제시해 아테네 시민의 믿음을 얻은 바 있었다. 그 몇년 전 아테네 인근에서 큰 은광이 발견됐을 때 그 은을 어디에 쓸 것이냐를 두고 국론이 갈렸다. 시민 각자에게 돈으로 나줘 주자는 일각의 주장에 맞서 테미스토클레스는 전쟁에 대비해 전함을 건조하는 데 쓰자는 의견을 내놓아 시민의 지지를 받았다. 그때 아테네는 테미스토클레스의 지휘 아래 200척의 ‘삼단노선’을 건조하고 성인 남자 시민들을 노잡이로 훈련시켰다. 아테네는 이 함대를 앞세워 페르시아 해군을 살라미스섬 앞바다에서 대파했다. 함선이 ‘나무 성벽’이 돼 나라를 구하고 전쟁의 판세를 결정한 것이다.

이 역사적 경험의 집단기억이 ‘배와 항해’를 정치적 상상력의 공간으로 밀어넣는 데 동력 구실을 했을 것이다. 그 상상력이 가장 뚜렷이 드러난 곳이 플라톤의 저술이다. 플라톤은 말년의 저작 <정치가>에서 나라를 바르게 이끌 참된 정치가의 조건을 따져 물으며, 배를 폴리스에, 정치가를 조타수(키잡이, kybernetes)에 빗댔다. 또 나라를 다스리는 기술 곧 통치술을 키를 잡고 배를 모는 기술 곧 조타술에 비유했다. 어뢰처럼 질주해 적함의 허리를 들이받아 깨부수는 삼단노선의 전투력은 선상의 지휘관이 얼마나 뛰어난 판단력을 지녔느냐에 달려 있었다. 사람과 물건을 싣고 먼바다를 항해하는 배도 마찬가지다. 훌륭한 조타수가 풍랑과 폭풍을 예측하고 난바다에서 해적을 만날 위험에 대비하고 적함과 맞붙을 경우를 상정해 준비하듯이, 훌륭한 정치가는 나라를 이끄는 데 필요한 전문지식 곧 통치술로 무장한다고 플라톤은 말한다.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나 이상론이다. 정치가(politikos)라는 말에 합당한 이상적인 정치가를 현실에서 만나기는 어렵다, 플라톤이 보기에 현실의 정치를 이끄는 이들은 통치술을 갖춘 참된 정치가가 아니라 참된 정치가로 위장한 사이비 정치가들이다. 플라톤은 이 사이비 정치가를 ‘스타시아스티코스’(stasiastikos)라고 부른다. 파벌의 이익을 앞세워 ‘대결과 분란’(stasis)을 일으키는 자라는 뜻이다. 스타시아스티코스가 장악한 나라가 어떤 불행한 운명을 맞는지 플라톤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조타수와 선원들의 무능으로 배가 침몰해 사라지듯이, ‘가장 중대한 것’(통치술)을 모르는 자들의 무능으로 많은 나라가 몰락하고 있고 몰락해왔으며 몰락할 것이다.”

통치를 항해에 빗대는 플라톤의 비유법은 <정치가>보다 먼저 쓴 중기 저작 <국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 저작에서 사이비 정치를 비판하는 플라톤의 펜은 더 날카롭고 어조는 더 격렬하다. 플라톤은 민주정체의 주인인 데모스(demos, 민중)를 선주 곧 배의 주인으로 묘사한다. 선원들이 이 선주를 앞에 놓고 조타수 자리를 얻어내려고 아귀다툼을 벌인다. “선원들은 조타술을 배운 적도 없으면서도 저마다 자기가 키를 잡아야 한다고 주장하며 서로 싸운다.” 여기서 선원은 권력을 얻으려고 민중을 선동하는 정치인들을 가리킨다. 이 선동가들은 아무 근거도 없이 자신들이 배를 가장 잘 이끌 수 있다고 큰소리친다.

플라톤은 더 무서운 이야기도 한다. “선원들은 언제나 이 선주를 에워싸고는 자신들에게 키를 맡겨달라고 온갖 짓을 하며 간청한다. 하지만 선주를 설득하는 데 끝내 실패하고 다른 사람들이 설득에 성공하면, 실패한 선원들은 성공한 선원들을 죽여버리거나 배 밖으로 던져버린다.” 상대 당파가 민중의 신임을 얻어 정권을 잡으면 그 당파 사람들을 어떤 수를 쓰든 제거하려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권력을 얻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마음씨 좋은 선주에게 약을 먹이거나 술에 취하게 해서 옴짝달싹 못하게 한 다음에 배를 장악하고는 배 안의 물건들을 제 마음대로 써버린다.” 민중을 선동해 정적을 없애고 권력을 쥔 다음에는 민중의 판단 능력을 마비시킨 뒤 공동체 재산을 탕진한다는 얘기다.

플라톤의 묘사는 집권세력이 끼리끼리 어울리는 장면을 묘사할 때 한층 더 신랄해진다. “이들은 흥청망청 먹고 마시며, 그런 자들이 할 법한 방식으로 항해를 한다. 게다가 이들은 자기들이 선주를 설득하거나 강제하여 지배권을 장악할 때 수를 써서 도와준 사람을 항해에 능한 사람이니 키를 잘 잡는 사람이니 배에 관한 지식이 풍부한 사람이니 하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그러나 자신들을 도와주지 않은 사람들은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비난한다.” 여기서 플라톤은 묻는다. 이런 일들이 배 위에서 벌어지고 있다면 이 선원들을 ‘조타수’라고 부를 것이 아니라 ‘하늘을 보며 별점이나 치는 수다쟁이’라고 불러야 하지 않겠는가.

2400년 전 플라톤의 발언은 우리 정치 현실을 눈앞에 보면서 이야기하는 듯 생생하다. 국가 경영은 언제 닥칠지 모를 태풍과 암초를 뚫고 나가는 일이다. 승리에 취한 선원들이 서로 끼고돌며 선상을 어지럽힌다면 그 배의 앞날은 보지 않고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국가 공동체라는 배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 조타수를 찾는 것이야말로 배의 주인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다. 사이비 조타수가 키를 잡게 되면 배가 춤을 추다 난파할 수 있다. 플라톤의 경고다.

한겨레

고명섭 | 책지성팀 선임기자

<니체 극장-영원회귀와 권력의지의 드라마>, <즐거운 지식-책의 바다를 항해하는 187편의 지식 오디세이>, <광기와 천재-루소에서 히틀러까지 문제적 열정의 내면 풍경>, <지식의 발견-한국 지식인들의 문제적 담론 읽기>, <이희호 평전-고난의 길, 신념의 길>을 썼다. 카이로스는 때, 시기, 기회를 뜻하며 현재를 밝히는 순간의 섬광을 가리킨다. 카이로스의 눈으로 철학·사상·역사를 포함한 인문학을 탐사하며 우리 시대와 대화한다.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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