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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폭풍전야’ 전세 시장 8월 대란 ‘째깍째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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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장인 신 모 씨(45)는 오는 9월 전세 계약 만기만 생각하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신 씨는 서울 길음뉴타운의 한 30평대 아파트에 전세로 거주 중이다. 지난 2020년 가을 계약갱신청구권을 활용해 이전 계약보다 2400만원(4.8%) 오른 5억2400만원에 전세 계약을 연장했는데, 오는 9월이면 이 계약 기간마저 종료된다. 집주인은 시세 수준으로 전세금을 올리겠다고 통보한 상태. 이 아파트의 최근 전세 시세는 7억원 안팎이다. 초등학생인 자녀를 생각하면 당분간 같은 집에 더 살고 싶은데 당장 2억원에 가까운 추가 전세금을 마련하는 게 문제다. 대출을 받자니 이자 부담이 상당해 집주인에게는 전셋집을 반전세로 돌릴 수 있을지 물어볼 참이다.

요즘 전세 시장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그야말로 ‘폭풍전야’다. 오는 8월 임대차보호법 시행 2년을 맞아 당장 7월 말부터 전세계약갱신청구권이 소진된 세입자가 대거 시장에 쏟아져 나올 것이라는 불안감 때문이다. 새 전셋집을 찾으려는 수요는 급증한 반면, 그동안 전셋값을 시세에 맞춰 올리지 못했던 집주인이 한꺼번에 올려 받으려는 상황이 이어지는 가운데 전세 시장이 한차례 더 크게 출렁일지 시장이 촉각을 곤두세우는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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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0년 7월 말부터 임대차보호법이 시행된 이후 전세 시장에는 신규·갱신 전세 계약의 가격이 다른 ‘이중 가격’ 현상이 두드러졌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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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솟는 전셋값…이중 가격 현상

▷‘아리팍’ 같은 평형 전세 13억원 차이

KB부동산의 월간 시계열 자료에 따르면 올 4월 말 기준 서울 아파트 평균 전세 가격은 6억7570만원으로 지난해 3월 처음 6억원을 돌파한 이후 1년여 만에 7000만원가량 올랐다. KB 통계를 주간 단위로 쪼개보면 최근 상승폭이 유독 크다. 3월 첫째 주부터 4월 첫째 주까지 매주 0.01~0.02%씩 오르던 서울 아파트 전세 가격은 ▲4월 둘째 주 0.03% ▲셋째 주 0.05% ▲넷째 주 0.04% ▲5월 첫째 주 0.04%씩 상승폭이 커지더니 5월 둘째 주에만 0.07% 급등했다.

전문가들은 전셋값이 급등하기 시작한 원인이 임대차보호법 시행 2년이라는, 시기적 특성과 맞물려 있다고 분석한다. 여경희 부동산R114 수석연구원은 “2020년 7월 임대차보호법 시행 이후 2년여간 전셋값을 시세대로 올려 받지 못한 집주인들이 신규 계약에서는 시세를 반영하는 수준으로 올리려 할 텐데, 이 때문에 5월부터 시장이 조금씩 움직이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서울 아파트 평균 전세 가격(4월 말 기준 6억7570만원)은 임대차보호법이 처음 시행된 2020년 7월(4억9922만원) 이후 1억7648만원(35.4%) 올랐다. 같은 기간 전국 아파트 평균 전세 가격도 2억5554만원→3억4041만원으로 33.2% 올랐다. 임대차보호법이 시행되기 전 2년간(2018년 8월~2020년 7월) 서울 전셋값 상승폭이 4339만원(9.5%)에 그쳤던 점과 비교하면 최근 2년도 채 안 되는 기간의 상승폭이 훨씬 가팔랐던 셈이다.

전세가 신규 계약이냐,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한 재계약이냐, 갱신권을 사용하지 않은 재계약이냐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인 ‘이중 가격’ 현상도 흔해졌다. 갱신 계약과 신규 계약 보증금 격차는 강남권의 중대형 고가 아파트일수록 더 크게 벌어졌다.

부동산R114가 전월세신고제가 시행된 지난해 6월 1일부터 올 3월 말까지 신고된 임대차 거래를 조사한 결과, 강남구 대치동 동부센트레빌 전용 161㎡는 갱신 계약 보증금 평균이 21억원인 반면 신규 계약 보증금 평균은 38억원으로 무려 17억원이나 차이가 났다. 갱신 계약 보증금이 신규 계약 평균 보증금의 절반을 살짝 웃도는 55.3% 수준이다.

서초구 반포동 아크로리버파크 전용 112㎡는 지난해 11월 보증금 17억3250만원에 갱신 계약을 쓴 전셋집이 있었는데, 이 기간 새로 세입자를 받은 전셋집들은 평균 30억8000만원의 보증금을 받았다. 갱신 계약과 신규 계약 격차가 13억4570만원에 달했다. 서초구 반포자이 전용 84㎡는 지난 5월 7일 19억원(10층)에 새 세입자를 받았다. 앞서 3월 31일에는 21억원(10층)에도 세입자를 받은 집이 있다. 반면 같은 면적의 또 다른 집들은 지난 4월 13억6500만원(7층)에, 14억7000만원(23층)에 각각 계약을 갱신했다.

반포동 A공인중개사사무소 관계자는 “주거 선호도, 학군 선호도가 높은 강남 지역은 갱신권 적용 여부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라며 “전세 가격 차이가 2억~3억원씩은 벌어지고 있다”고 귀띔했다.

강북에서도 전세 시세가 높은 아파트를 중심으로 갱신·신규 계약 간 격차가 컸다. 성동구 성수동1가 트리마제 전용 140㎡의 경우 지난해 12월 16억8000만원에 전세 계약을 갱신해줬는데 올 1월 계약서를 쓴 신규 세입자는 이보다 15억원 이상 비싼 32억원을 내고 입주했다.

이에 비해 영등포구 문래동의 ‘문래힐스테이트’는 전용 119㎡가 지난 4월 10억원에 전세 세입자를 받았다. 앞서 3월 30일에는 같은 면적의 17층짜리 아파트가 7억1000만원에 전세 계약을 갱신했다. 지난 2월 26일에 거래된 같은 면적 4층 아파트는 갱신권을 사용하지 않고 8억원에 재계약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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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중되는 시장 불안

▷‘전세의 월세화’도 가속도

아파트 실거래가 빅데이터 플랫폼 아실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전세 매물은 지난 4월부터 2만5000~2만7000건 수준에 머물고 있다. 대선 기간인 지난 3월보다 20%가량 줄어든 규모다. 여경희 수석연구원은 “문재인정부 5년 누적 상승분의 4분의 3가량이 임대차 3법 시행 이후 단기간에 이뤄졌다”며 “과거 2년 주기 임대차 계약이 4년(2+2년) 주기로 변하고 5% 상한제로 변경되면서 원활한 전세 물건 소통이 어려워진 영향”이라고 설명했다.

전세 매물이 줄어든 가운데 다가오는 8월부터는 전세 갱신 계약이 끝나 다시 전월세 시장에 나올 1만5000가구는 당장 2년 사이 급격히 오른 전세 가격을 맞닥뜨리게 됐다. 주거 안정을 고려하면 지금 살고 있는 단지나, 근처로 이사하는 것이 최선인데 이를 위해서는 최소 1억5000만원에 달하는 추가 자금을 마련해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오는 8월 갱신 계약이 만료되는 가구는 2366건으로 12월에는 3424가구로 늘어난다. 내년 1월까지 평균 2905건의 전세 계약이 만료되는 것. 8~12월 갱신 계약이 만료돼 급등한 전셋값을 맞닥뜨리게 될 가구가 매월 3000건에 달하는 셈이다. 이는 당시 서울 아파트 전세 거래량의 30%에 육박한다.

또 부동산R114가 전·월세신고제가 시행된 지난해 6월 1일부터 올해 3월 말까지 신고(5월 3일 기준)된 서울 아파트 전·월세 계약 18만3103건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조사 기간 내 전세 거래(월세 제외) 중 동일 주택형 간의 전세 계약이 1건이라도 있었던 1만6664건 가운데 갱신·신규 계약이 모두 확인된 경우는 6781건이다.

이 가운데 신규 계약의 평균 보증금은 6억7321만원, 갱신 계약의 보증금 평균은 5억1861만원으로 신규와 갱신 계약의 보증금 격차가 평균 1억5461만원 벌어진 것으로 조사됐다. 조사 기간 전·월세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한 세입자가 신규로 전세를 얻은 사람보다 평균 1억5000만원 낮은 금액에 2년을 더 거주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반대로 말하면 갱신 기간이 끝난 가구들이 같은 조건의 집을 구하려면 최소 1억5000만원의 추가금을 마련해야 한다는 얘기도 된다. 주거 선호도가 높은 지역일수록, 주택이 신축이거나 평수가 클수록 세입자 부담은 수억원, 십수억원까지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

문제는 실제 추가로 마련해야 하는 자금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점이다. 지난 2년간 전세 보증금을 시세만큼 올려 받지 못한 집주인들이 현재 시세에 계약갱신청구권 사용까지 고려해 전셋값을 한꺼번에 올릴 가능성이 있어서다.

급격히 오른 전세 보증금을 충당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대출이지만 지난해 8월부터 한국은행이 네 차례에 걸쳐 단행한 금리 인상과 정부의 대출 규제 여파가 만만찮다. 이미 국내 경제가 금리 상승기에 접어든 만큼 세입자들은 예전보다 높은 이자를 감당해야 하는 상황. 여윳돈이 없는 세입자가 전세금 부족분을 5%대 금리의 시중은행 대출로 채우는 대신 아예 반전세나 월세로 갈아타거나 시세가 상대적으로 저렴한 지역으로 밀려나게 될 가능성이 크다. 모두 세입자 부담이 늘어나거나, 주거 안정성이 위협받는 구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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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송파구 일대 주택가 전경. (윤관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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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전세의 월세화’ 흐름은 통계를 살펴봐도 빨라지는 추세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5월 19일 올 1~4월 서울 아파트 월세 거래량은 2만6971건으로 전년 같은 기간(2만2456건) 대비 20.1% 늘어났다. 아직 올 4월 거래 집계가 완료되지 않은 점을 고려하면 증가폭은 더 클 것으로 보인다. 이 기간 서울 아파트 전체 임대차 거래 6만9600건 가운데 월세를 낀 거래는 38.8%를 차지했다. 월세 거래 비중이 35.7%였던 지난해 동기와 비교하면 1년 만에 3.1%포인트 늘어난 셈이다.

늘어난 수요는 월세 가격을 끌어올렸다. 중형(95.86㎡) 이하 아파트를 대상으로 조사하는 KB부동산 월간 주택 가격동향 자료에 따르면 4월 서울 아파트 월세지수(2019년 1월=100)는 관련 통계가 작성되기 시작한 2016년 이후 역대 최고치인 111.8을 기록했다. 한국부동산원 자료에서도 아파트 월세통합가격지수는 지난해부터 오름세를 이어가고 있다. 서울의 아파트 월세통합가격지수는 지난해 1월 99.4에서 올해 3월 101.9로 2.5포인트 상승했다.

물론 일각에서는 최근 수도권 주택 매맷값이 하락세를 보이는 만큼 집주인들이 무작정 전셋값을 올려 받기는 어렵다는 분석도 내놓기는 한다. 최근 출범한 새 정부는 취임과 동시에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유예 조치를 단행해 일시적인 다주택자 매물이 풀릴 가능성이 높고, 최근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의 기준금리 인상으로 긴축 분위기가 굳혀지는 등 아파트 가격을 추가로 끌어올릴 만큼의 유동성은 기대하기 어렵다는 논리다.

정부는 임대 기간을 4년 이상 장기 계약하는 등의 ‘착한 임대인’에게 인센티브를 주고, 민간 임대 주택 건설을 확대하며, 소형 아파트 주택임대사업자 제도를 부활하는 등의 보완 방안을 논의 중이다. 또 5월 말로 계도 기간이 끝나는 전월세신고제와 관련해서는 계도 기간을 연장하는 방안 등을 검토 중이다. 서울시 역시 전월세 시장 안정화 대책을 내놓은 상태다. 갱신 계약 만료 저소득 가구에 2년간 한시적으로 대출 이자를 지원하고 청년·신혼부부 대상 임차보증금 이자지원제도를 확대하는 내용이 골자다. 아파트를 제외한 저층 주택에 한해 민간 임대를 활성화하는 방향의 법 개정도 건의하기로 했다.

다만 이런 노력에도 당장은 전세 시장 불안을 잠재우기 어렵다는 시각이 여전하다. 세입자·임차인들의 주거비 부담이 커진 상황에, 안정화 대책 등이 제때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임대인이 전세 물량을 거두거나 호가를 높이면 막을 방도가 없어서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계약갱신청구권은 8월에만 집중된 게 아니라 임대차법 도입 이후 분산돼 사용됐을 것”이라면서도 “오는 8월에 집중적으로 전세 대란이 폭발하는 상황은 벌어지기 어렵겠지만 그동안 지적됐던 이중 가격, 삼중 가격의 문제는 계속적으로 발생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임대차 3법의 경우 법 개정을 거쳐야 보완 가능한 만큼 의석 절대 다수를 차지한 더불어민주당을 설득하는 작업도 거쳐야 한다. 당장 올 하반기부터 전세의 월세화 현상 등 주거난이 심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배경이다.

박합수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겸임교수는 “서울의 경우 신규 입주 물량이 부족한 데다 당장 7월 말부터 계약갱신청구권이 만료되는 전세 매물이 나오는 것을 앞둔 만큼 임대차 시장의 불안을 잠재울 만한 조치가 필요할 것”이라며 “법으로 규제를 만들어놓고 징벌적으로 강제하기보다는 전셋값 안정을 유인할 수 있는 인센티브 방식을 적극 고려해봄직하다”고 조언했다.

[정다운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60호 (2022.05.25~2022.05.31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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