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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강석기의 과학풍경] 천연두 백신 접종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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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천연두 백신 접종법은 양끝이 갈라진 바늘에 백신 용액을 묻힌 뒤 왼팔 위 피부를 빠르게 15번 찔러 진피층이 바이러스에 감염되게 한다.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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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기|과학칼럼니스트

날이 더워지면서 반팔 차림을 한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면 민소매 차림도 많을 것이다. 그런데 40대 후반을 기준으로 민소매를 입었을 때 차이가 난다. 그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은 왼팔 위에 작은 흉터가 보이지만, 그보다 적은 사람들은 없다. 1958년부터 1977년까지 세계보건기구가 천연두(두창) 백신 접종 캠페인을 성공적으로 수행해 1980년 천연두 퇴치를 선언했고 이후 접종이 중지됐기 때문이다.

천연두는 20세기에만 3억명의 목숨을 앗아간 무시무시한 바이러스성 전염병으로, 살아남더라도 얼굴에 깊은 흉터가 남는다. 천연두로 얼굴이 얽은 사람을 ‘곰보’라며 낮잡아 이르기도 했다.

그런데 앞서 말했듯이 천연두는 백신조차 몸에 흉터를 남긴다. 사람마다 차이는 있지만, 보통 셔츠 단추만한 크기다. 우리야 또래가 다들 지니고 있어 그러려니 하지만 요즘 젊은 부모들이 보면 ‘이럴 걸 알면서도 아이한테 백신을 맞혔단 말인가?’라고 의아해할 듯도 하다. 실제 1960년대 이후에는 환자도 거의 발생하지 않아 지금 50대는 굳이 맞을 필요가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천연두 백신은 생백신으로, 천연두 바이러스와 사촌인 바키니아 바이러스가 들어 있다. 피부 피하층에 주삿바늘을 찔러 용액을 주입하는 대신 끝이 두 갈래인 포크처럼 생긴 바늘에 백신 용액을 묻힌 뒤 왼팔 위 피부를 빠르게 15번 찔러 표피와 피하층 사이 진피층을 바이러스에 감염시킨다.

바키니아 바이러스는 병원성이 약해 접종된 부위를 벗어나지 않은 채 면역계를 불러들인다. 진피에 침투한 바이러스와 면역계가 싸우는 과정에서 염증 반응으로 접종 부위가 부풀어 오르고 고름과 진물이 생긴 뒤 딱지가 앉는다. 이 과정에서 진피층이 꽤 손상돼 흉터가 남는다.

지난주 갑자기 유럽 여러 나라에서 원숭이두창 환자가 100여명 발생하면서 세계 보건당국이 긴장하고 있다. 원숭이두창은 아프리카 풍토병으로 매년 수백명의 환자가 보고되고 있지만, 이번처럼 다른 대륙의 여러 지역에서 동시다발로 환자가 나온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아직까지 감염 경로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무엇보다도 온몸이 물집으로 덮인 환자의 모습이 충격적이다.

다행히 바이러스 구조가 바키니아와 비슷해 천연두 백신으로 85%는 예방할 수 있다고 한다. 원숭이두창이 천연두처럼 퍼질 가능성은 희박하다지만,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천연두 백신을 확보할 필요는 있다. 다행히 우리나라는 천연두 바이러스가 생물학 무기로 쓰일 것을 대비해 3500만명분의 백신을 보유하고 있다.

만에 하나 바이러스 변이로 원숭이두창이 천연두처럼 전파력이 높아져 40여년 만에 천연두 백신 접종이 재개될까 걱정이다. 민소매 옷을 입으며 팔뚝의 흉터를 신경쓰는 일은 우리 세대에서 끝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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