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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취재파일] 바이든 판 '비즈니스 외교', 한미 정상의 '가치 공감'이 남긴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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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사 미국판 비즈니스 외교를 보는 듯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해 처음으로 찾은 곳이 삼성 반도체 공장이었다는 것, 방한 마지막 날 정의선 현대차 그룹 회장을 별도로 만난 것 역시 미국이 이번 방한의 주안점을 어디에 두고 있는지 짐작하게 했다.

미국에 대규모 투자를 한 삼성과 현대차 그룹 총수와 만난 바이든 대통령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밝아 보였다. 투자에 대한 감사와 함께 한국 기업 투자로 미국 내 일자리가 몇 개 생길지 구체적인 숫자까지 언급한 대목은 한국에서 한 연설이지만 연설의 상대방은 미국 국민이었음을 분명히 하는 것이었다. 연방 하원 의원 전원과 연방 상원 의원 1/3을 다시 선출하는 올해 11월 중간 선거 승리를 위해 바이든 대통령은 성과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래서다. 바이든 대통령이 사용한 '한미 간 협력'이라는 단어는 그 자체로는 긍정적이지만, 한국을 향한 공세적 메시지를 내포하고 있었다. 한국 기업, 나아가 한국 정부를 향해 "미국에 많이 투자하라", "중국이 아닌 미국에 투자하라"는 압박이었다. 나아가 미국의 최우선 외교 과제가 된 중국 견제와 압박에 한국 정부도 동참하라는 압박이기도 했다.

바이든 판 비즈니스 외교가 입증한 한미 관계 변화



이런 시각의 연장선에서 미국은 이번 방한과 정상회담을 통해 한국 기업의 미국 투자라는 가시적 성과를 손에 쥐었지만, 한국 정부는 '경제 협력', '경제 안보'라는 선언적 수사 외에 당장 손에 쥔 것이 없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한미 양국이 협력과 동맹의 확장 범위를 구체화 하기는 했지만, 첨단 기술까지 포괄하는 포괄적 동맹으로의 전환은 1년 전 정상회담에서도 나왔던 이야기 아니냐는 것이다.

반론도 있다. 바이든 대통령의 메시지가 한국 기업에 대한 미국 투자 압박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지만, 바꿔 생각하면 그만큼 한국(기업)이 미국에서 필요한 존재가 됐음을 입증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이신화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한미동맹이 과거의 비대칭 동맹에서 동등한 파트너 간의 동맹으로 전환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평가한다. 한미 동맹이 미국 주도의 일방적 관계에서 대등한 관계로 변모하고 있음을 보여줬다는 평가다.

다만, 한국이 쥔 이런 외교적 레버리지가 한국 국민에게는 향후 불리하게 작동할 가능성도 있다. 한국 기업의 국내 투자와 미국 투자는 반드시 상충한다고 볼 수는 없지만, 완전히 무관하다고 보기도 어렵다. 한국 정부의 외교적 무기가 된 한국 기업의 경쟁력이 적극적으로 발휘된다면, 즉 한국 기업의 미국 투자가 확대돼 한미 관계의 무게 추가 상대적으로 한국 쪽으로 오게 된다면, 그 결과는 한국 기업의 국내 투자 축소가 될 가능성이 있다. 양국 내 양질의 일자리가 줄어들 수 있는 것이다.

물론 기업이 국내에 투자할지, 미국에 투자할지는 본질적으로 기업의 자체 판단에 달린 문제다. 하지만, 한미 동맹을 기술 동맹으로 확장하겠다는 한미 양국의 구상은 기업 입장에선 투자를 특정 방향으로 이끄는 유인이 될 수 있다. 유인의 결과가 미국 내 투자로만 집중되지 않도록, 미국 기업의 국내 투자를 이끌어 내 한국 국민을 위한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게 하는 게 바이든의 미국판 비즈니스 외교가 한국 정부에 남긴 숙제다.

'자유민주주의'와 '인권'이 강조된 한미 정상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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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정상회담에서 양국 정국은 그 어느 때보다 '자유민주주의'와 '인권'이라는 가치를 강조했다. 정상회담이 양국 정상이 같은 마음(like-minded)을 가지고 있음을 확인하는 자리가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정상 외교는 정상들 간의 신뢰를 쌓는 게 핵심이라는 점, 그것이 향후 국가 간 관계 설정과 유사시 문제 해결의 기초가 된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문제는 가치에 대한 공감이 강조됐을 때의 결과다. 한국은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가치를 공유하는 미국에 적극적으로 다가섰다. 미국이 대 중국 견제용으로 추진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 워크(IPEF)'에 참여가 대표적이다.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을 통해 풀어나가겠다는 '안미경중'에서 벗어나 경제도 미국 쪽에서 풀어가겠다고 공식화한 셈이다. 미중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는 소위 '균형 외교'의 폐기 선언이었다.

윤 대통령은 정상회담 뒤 공동 기자회견에서 "(팬데믹 위기, 공급망 재편 등의) 도전은 자유민주주의와 인권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의 연대를 통해서만 극복할 수 있다. 한미 동맹은 그러한 연대의 모범"이라며 '미국으로 기울기(미국 경사론)'한 이유를 설명했다. 'IPEF' 참여에 대해선 "한미 양국은 '규범'에 기반 한 인태지역 질서를 함께 구축해 나갈 것"이라며, "그 첫 걸음이 IPEF 참여"라고 설명했다. 이 설명에서의 '규범'은 직접적으로는 무역, 조세 등에 대한 규정을 지칭하겠지만, 궁극적으로 '자유민주주의와 인권이라는 보편적 가치'라는 말로 치환할 수 있다.

뜨거운 감자가 된 IPEF 참여



이 말의 의미하는 우리 정부의 향후 외교 과제는 뒤에서 다시 살펴보기로 하고, 우리 정부가 IPEF에 참여한 이유부터 좀 더 들여다보자. IPEF는 기존의 자유무역협정들과 차이가 있다. 구체적 협정의 형태는 아니고, 어떤 모습이 될지 아직 정확히 가늠하기 힘들다. (참고 : '안갯속'의 IPEF…한국에 기회될까, 도전될까 ) 대통령실 안보실은 IPEF가 진화하는 경제 구상이라는 점, 아직 논의가 본격화 되지 않은 초기 단계라는 점을 참여의 이유로 든다.

김성한 국가안보실장은 한미정상회담 후 언론 브리핑에서 "초기에 우리가 IPEF에 참여해서 IPEF에서 작동하는 여러 규칙이나 제도 형성에 우리나라에 유리한 형태의 규범이 이뤄질 수 있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IPEF 참여 이유를 설명했다. 인도-태평양 지역의 여러 국가들이 참여하는 지역 협력체가 어차피 형성되고 있다면, 우리가 적극적으로 참여해 우리나라에 유리한 방향으로 규칙을 만들어 내는 것이 국익에 더 도움이 된다는 취지다.

하지만, IPEF를 자국에 대한 견제 수단으로 여기며 중국이 반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가 IPEF에 참여한 이유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좀 더 많은 설명이 필요하다. 김현욱 국립외교원 교수의 설명이 도움이 될 수 있다.

"과거와 같은 미중 사이 균형 잡기는 거의 불가능해져"



김 교수는 "미국이 동맹국들과 함께 중국에 대한 압박을 본격화한 상황에서 과거와 같은 미중 사이의 균형 잡기는 이제 거의 불가능해졌다"고 평가한다. 그런 상황 변화는 지난해 5월 문재인 전 대통령과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정상회담에서 이미 나타났다는 것이다. 지난해 5월 한미 정상회담은 '미중 균형', 혹은 '중국 경사'로 비치기도 했던 문재인 정부의 기존 태도에 비해 상당히 미국 쪽에 다가선 것으로 학계는 평가한다.

이러한 국제 정세의 변화와 함께 미국의 IPEF에 대한 구상 역시 한국의 IPEF 참여 이유가 될 수 있다고 김현욱 교수는 설명한다. "미국은 IPEF를 통해 구축하려는 글로벌 공급망에 들어오는 국가는 혜택을 입지만, 참여하지 않는 국가는 결과적으로 제재를 받을 것이라는 논리로 IPEF를 추진하다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의 다른 협정이나 구상과는 달리 참여했을 때의 이익과 불참했을 때의 피해가 가시적인 상황에서 우리나라가 IPEF에 참여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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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23일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 고위급 화상회의에 참석해 발언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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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경제의 상황 변화도 이유다. 한국을 포함한 적지 않은 국가들이 균형 외교라는 이름으로 중국의 눈치를 살폈던 건 급성장하는 중국 경제의 과실을 차지하기 위한 측면이 컸지만, 이제는 상황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세계 경제의 무게 추는 다시 미국으로 회귀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 경제의 쇠퇴가 시작했고, 중국 부상이 가속화 되면서 소위 '차이나 머니'의 위력은 많은 국가들이 상당히 매료됐지만, 현재는 상황이 다르다"고 평가한다.

한국의 IPEF 참여와 미국과의 관계 강화, 그리고 중국



물론, 선택에는 기회비용이 항상 따라붙는다. 당장 IPEF를 자국의 견제로 받아들이며 반발하고 있는 최대 교역상대국, 중국과의 관계를 어떻게 풀어나갈 지가 당장의 숙제다. 정부 관계자들이 "IPEF는 중국을 배제하지 않는다", "IPEF는 중국에도 열려있다"고 연일 메시지를 발신하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한미 정상의 공동선언문에서 '포용성' 원칙을 의도적으로 강조한 것, 공동선언문에서 '중국'을 직접 거론하지 않은 것 역시 미국과 달리 중국에 대한 자극을 최소화하려는 노력의 결과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경제계를 중심으로는 중국의 경제 보복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2016년 사드 배치 이후의 한한령과 문재인 정부의 중국에 대한 유화적 손짓에도 불구하고 개선되지 않은 한중 관계의 경험 때문이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이번 정상회담이 지난해 한미정상회담에 비해 실질적으로 중국을 견제하는 내용들이 구체화됐다고 볼 수 있다"며, "중국 입장에서는 견제를 좀 더 노골화하고 본격화했다고 볼 여지가 있어 반발 가능성이 있다"고 말한다.

중국의 경제 보복 가능성과 관련해 과거의 경험이 약이 될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이신화 교수는 "사드 배치 때 예방주사를 맞았다고 볼 수도 있다"고 말한다. 문재인 정부는 중국과의 관계 악화를 막기 위해 전략적 모호성을 선택했지만, 중국과의 경제 관계는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 오히려 중국의 경제 압박 속에서도 어정쩡한 태도로 중국과의 관계 개선도 못하고 미국의 지원도 받지 못했던 과거 경험이 반면교사가 되지 않겠냐는 의미다. 이 교수는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미국과의 공조가 더 강해졌다고 볼 수 있기 때문에 과거 사드 배치 때처럼 일방적으로 당하지는 않을 것을 보인다"고 전망한다.

이 말은 미국과의 공조 강화가 혹여나 중국의 경제 보복이 있을 때 함께 대응하는 수단이 될 수 있도록, 나아가 중국의 경제 보복 자체를 예방할 수 있는 기제가 되도록 만들기 위한 과제가 놓였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중국과의 전략적 소통 강화를 통해 한국에 대한 경제적 압박을 사전에 차단하는 것 역시 외교적 과제다.

'자유민주주의 진영의 결속'이 낳을 수 있는 부작용



다시 윤석열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이 자유민주주의와 인권이라는 가치에 공감했다는 대목으로 돌아가 보자. 이번 정상회담은 윤석열 정부의 향후 외교 전략을 보여준 결정적 기점으로 훗날 기록될지도 모른다. 이른바 '가치 외교'의 공식화다. 한국이 참여한 IPEF에 대해서 정부 고위 관계자는 "소위 자유주의적 국제주의를 신봉하는 국가들 간의 연합으로 볼 수 있다"고 말한다. IPEF 참여 목적을 미국을 포함한 자유 진영과의 블록화로 볼 여지가 있는 것이다.

'가치 외교'는 미중이 경쟁하며 신냉전으로 치닫고 있는 국제 정세가 강제한 구조적 결과일 수도 있다. 하지만, '가치 외교'는 '같은 편끼리 좁고 깊게 사귀자'는 것이기에 한국 외교의 지평을 좁힐 가능성이 있다. 특히, 마음이 같지 않은 국가들 중 자원 부국이 많다는 것이 문제다. 가치에 대한 강조가 자원 부국들과 관계 설정에 제약이 된다면 우리나라에게 심각한 타격이 될 수도 있다.

이신화 교수는 "가치 동맹은 가치를 공유하지 않는 국가는 배제하는 것이기에 결국 '뺄셈의 외교'가 될 수 있다"며, "비자유주의 국가나 중립국들을 배제하지 않도록 주의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그러면서 "양국 관계에서 상대적 강대국은 전략적 자율성의 범위가 넓지만, 상대적 약소국은 그렇지 않다는 걸 유념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인다.

최근 가치를 강조하고 있는 미국이 가치 공감대가 있다고 보기 힘든 원유 부국 베네수엘라에 대한 제재 완화를 검토하고 있다. 자국 이해를 위해서는 '가치의 공감대'라는 틀을 얼마든지 벗어나기도 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자율성은 미국이기에 가능할지도 모르지만, 이 교수의 조언은 한국 역시 가치에 공감하는 국가들과의 연대를 강화하되 그렇지 않은 국가들과의 관계 역시 강화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복잡계로 변하고 있는 세계 정세의 변화 속에 한국 정부는 상충될 수도 있는 외교적 과제에 직면했다는 의미다.

상호 모순적 과제에 직면한 윤석열 정부



윤석열 대통령은 IPEF 참여에 대한 중국의 반발 우려에 "그것은 제로섬이라고 볼 필요는 없다. 중국과의 관계도 잘해 나가면 된다"고 밝혔다. 대통령실 관계자들 역시 "IPEF 참여는 중국이 반발할 것이고, CPTTP 등 참여는 그렇지 않다는 식의 이분법적 접근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미국과의 결속은 강화하면서도 중국과의 관계 역시 끈을 놓지 않고 이어 가겠다는 의지 표현으로 보인다. 하지만 중국의 반발은 계속되고 있고, 미국을 일본과의 정상회담을 통해 중국 견제 의도를 더욱 명확히 하고 있다. 미국에 다가갈수록 중국과는 멀어질 수밖에 없고, 그렇다고 미국에 다가가지 않을 수는 없지만 중국도 붙잡아야 하는 상황. 윤석열 정부에게 뜨거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만들어 내야 하는 과제가 주어졌다.

(사진=연합뉴스)
박원경 기자(seagull@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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