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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다음 중 전통주는? ①장수막걸리 ②원소주 ③화요 ④백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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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만찬주로 선택된 국산 와인

법적 전통주 맞지만 와인이 한국술?

‘막걸리 빚기’ 무형문화재 지정됐지만

결과물인 막걸리는 전통주 아닌 모순


한겨레

제20대 윤석열 대통령 취임식 만찬주로 채택된 술 6종 가운데 5종은 전국 각지 농산물로 만든 국산 와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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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홍천 사과로 만든 ‘너브내 스파클링 애플 라이트’, 경기도 양평 벌꿀 넣은 ‘허니문’, 전북 무주산 ‘붉은진주 머루’, 충북 영동 포도로 빚은 ‘샤토미소 로제스위트’, 경남 사천의 다래와인 ‘스위트 3004’….

지난 10일 제20대 윤석열 대통령 취임식 만찬주로 채택된 술 6종 가운데 5종은 전국 각지 농산물로 만든 국산 와인이었다. 대통령취임식준비위원회는 “새로운 출발과 화합의 취지를 살리고 전통문화의 우수성을 외빈들에게 소개하기 위해” 지역별 특산물로 빚은 전통주를 만찬주로 선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 장면을 바라보는 전통주 업계의 속내는 복잡했다. 이름을 밝히길 꺼린 한 업체 관계자는 “법적으로는 5종 모두 전통주가 맞지만, 과연 와인이라는 주종이 한국 전통술을 대표한다고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우리 전통문화가 깃든 탁주를 선택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고 말했다.

원소주는 되고 ‘60년 전통 장수막걸리’는 안 된다?


대통령 취임식 만찬주에 대한 이런 반응은 최근 가수 박재범이 출시한 ‘원소주’를 둘러싸고 불거진 ‘전통주 분류 기준’ 논란의 연장선으로 볼 수 있다.

엠제트(MZ)세대를 중심으로 인기를 끌며 출시 이후 연일 완판 행진을 이어온 ‘원소주’는 전통주 등의 산업 진흥에 관한 법(전통주산업법)과 주세법에 따라 전통주로 인정받는다. 두 법에 따르면, 전통주는 △주류부문의 국가 또는 시·도 무형문화재 보유자가 제조하는 주류(민속주) △주류부문의 대한민국 식품명인이 제조하는 주류(민속주) △농업 경영체 및 생산자 단체가 직접 생산하거나 주류 제조장 소재지 관할 또는 인접 시·군·구에서 생산한 농산물을 주원료로 제조하는 주류(지역 특산주) 등 3가지 항목 중 하나에 해당하는 술을 말한다.

원소주는 이 가운데 세 번째 조건인 ‘지역 특산주’에 해당한다. 박재범이 원소주를 만들기 위해 설립한 ‘원스피리츠’는 강원도 원주에 있는 농업회사법인으로, 강원도 원주 모월과 충북 충주 고헌정 등 국내 양조장과 협업했고, 주원료 역시 강원도 원주 쌀 ‘토토미’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반면, 막걸리 업계 1위 ‘장수생막걸리’는 서울 양조장들이 함께 설립한 60년 전통의 서울탁주제조협회에서 만들지만, 법적으로 전통주가 아니다. 고려시대 명주 백하주의 생쌀 발효법을 복원해 빚은 30년 전통의 ‘백세주’ 역시 마찬가지다. 전통 방식으로 만든 화요 등도 전통주가 아니다. 막걸리는 원재료에 국내산 쌀과 함께 수입산 쌀이 포함돼 있고, 백세주 역시 원재료 가운데 전분이 수입산이다. 화요는 생산 주체인 광주요그룹이 농어업경영체 및 생산자단체가 아니어서다.

백세주를 만드는 국순당 관계자는 “같은 국순당에서 만들어도 증류소주인 ‘려’는 경기도 여주 농민과 합작해 세운 농업회사법인 국순당 여주명주가 생산하는 술이기 때문에 전통주로 인정받는다”며 “제조방식에 방점을 찍기보다 ‘누가 만드냐’를 중시하는 기준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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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과 동떨어진 기준…혜택보단 대표성 문제 더 커


법률상 전통주로 인정받으면, 주세 50%를 감면받는다. 또한 주세법상 주류는 온라인 판매·배송이 금지돼 있지만, 2017년부터 전통주에 한해 온라인 판매가 허용돼, 지(G)마켓과 인터파크 등 인터넷 쇼핑몰을 통해 판매할 수 있다. ‘힙한 전통주’를 내세운 원소주는 이 두 가지 혜택을 모두 받지만, 장수·지평 막걸리나 백세주·화요 등은 이런 혜택에서 제외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인터넷상에서는 영국 술 ‘진’, 사과로 만든 와인 ‘애플사이더’, 탄산와인 등도 전통주로 판매된다. 심지어 ‘미국인이 만든 전통 소주’로 화제가 됐던 ‘토끼소주’는 미국인이 뉴욕 브루클린에서 만든 브랜드지만, 국내에서 전통주로 판매되는 웃지 못할 일도 벌어진다. 토끼소주는 창업자 브랜든 힐이 2020년 충북 충주에 농업법인을 설립하고, 충주 지역의 원재료를 사용해 만들었기 때문에 전통주로 인정받았다. 업계 한 관계자는 “전통주산업법은 2009년 8월 정부가 ‘전통주 복원’과 ‘우리 술 세계화’ 등을 목표로 만들었는데, 현실에서는 전통과 하등 관련없는 주종이 혜택을 누리고 있다”며 “온라인 판매 역시 전통주 활성화를 위해 허용했는데, 되레 우리 술은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일각에선 코로나19 대유행 장기화와 맞물려 전통주의 온라인 판매가 늘자 규제 완화를 통해 경제적 이득을 누리려는 목적으로 해묵은 ‘전통주 기준 논란’에 불을 붙이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나온다. 이에 대해 남도희 막걸리협회 사무국장은 “일부 그런(경제적) 측면도 있겠지만, 생막걸리의 경우 유통기한이 짧아 어차피 온라인 판매에는 한계가 분명하다”며 “대부분의 막걸리가 아직도 전국구가 아니라 서울 장수막걸리, 포천 이동막걸리, 고양 배다리막걸리, 해남 해창막걸리 등 지역 기반으로 유통되는 것도 그 이유”라고 설명했다.

남 사무국장은 “‘전통주 기준 논란’은 경제적 목적보다는 전통주라는 이름의 대표성과 이를 계승·발전시키기 위한 장기적 정책 방향의 문제로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해 6월 문화재청이 ‘막걸리 빚기’의 역사성·학술성·대표성·지속가능성 등의 측면에서 가치를 평가해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했는데, 막걸리는 법적으로 전통주가 아닌 상황은 엄청난 모순”이라며 “젊은층을 대상으로 전통주에 대한 정확한 개념을 심어주고, 우리 전통주의 저변을 확대하기 위해서라도 전통주의 개념을 다시 세울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또다른 업계 관계자는 “주세 감면 등 혜택을 받지 못하더라도 전통주라고 부를 수 있도록 해주면 좋겠다”며 “법적 전통주의 개념과 문화적 전통주의 개념이 점차 괴리되는 현 상황을 해결할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해묵은 문제 반복될 것…합리적 해법 있나?


전통주 업계의 해묵은 기준 논란은 앞으로도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박재범의 원소주뿐만 아니라 요리연구가 백종원의 ‘백걸리’에 이어 가수 임창정도 ‘꿀미숫가루 막걸리’를 출시하는 등 유명인들이 앞다퉈 주류사업에 진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식품산업통계정보를 보면, 전통주 시장은 점차 커지는 추세다. 2016년 397억원에서 2017년 400억원, 2018년 456억원, 2019년 531억원, 2020년 627억원으로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같은 기간 전체 주류시장은 9조2961억원에서 8조7995억원으로 줄어들었다. 잠재 가능성이 큰 전통주 시장에 자본력이나 스타 마케팅을 앞세워 뛰어드는 사업자나 유명인이 늘어나는 배경이다. 이름을 밝히길 꺼린 업계 관계자는 “박재범의 원소주처럼 농업법인을 만드는 방식으로 전통주로 인정받는 사례는 사업적 노림수로 주류업계에 진출하는 유명인들의 모델이 될 것”이라며 “전통주산업법의 취지에 어긋나는 성공 사례가 생겨날 때마다 기준 논란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전통주 항목에서 지역특산주를 분리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지역 농산물을 이용한다고 해서 법적으로 전통주 지위를 줄 것이 아니라 지방자치단체에서 따로 관리하며 맞춤형 진흥책을 쓰면 된다는 것이다. 남 국장은 “전 세계에서 판매된다고 해도 맥주는 독일 술, 테킬라는 멕시코 술인 것처럼, 아무리 국내산 지역 농산물을 쓴다고 해도 와인이 한국 전통주의 대표가 될 수는 없다”며 “대통령 만찬주로 쓰인 국산 와인 등의 경우는 전통주에서 따로 떼어내 지역특산주진흥법 등을 따로 만들어 관리하면 더 효율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주무부처인 농림축산식품부는 법 취지를 고려하면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전통주산업법의 본래 목적 중 하나는 농업의 부가가치를 높여 농업인의 소득증대를 꾀하는 데 있다”며 “주조 방식에 초점을 맞출 경우, 법의 목적과 다르게 흐를 수 있고, ‘전통 주조 방식’이 무엇인지 객관적 기준을 세우기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다만, 지역특산주를 전통주에서 따로 분리해서 관리하는 등의 제안에 대해서는 앞으로 이해 당사자와 관련 부처, 지자체 등과 협의해 볼 여지는 있다”고 밝혔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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