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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80兆 낸드시장 잡자” 美·日, 공격적 투자에 삼성·SK ‘초격차’ 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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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비즈

SK하이닉스가 개발한 176단 낸드플래시. /SK하이닉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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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기업이 시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낸드플래시 메모리반도체 시장에 미국과 일본 업체들이 첨단 기술과 대규모 투자를 통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추월에 나섰다. 80조원에 달할 것으로 보이는 이 시장 영향력을 더욱 키우겠다는 것이다. 방심하는 사이 국내 기업의 ‘초격차’ 전략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미국 마이크론은 최근 열린 투자자 행사에서 세계 최초로 232단 낸드플래시를 올해 안에 양산하겠다고 밝혔다. 232단 낸드는 업계 누구도 닿지 못한 고(高)적층 기술로, 이를 위해 마이크론은 자사 고유 기술을 활용하고 두 개의 낸드를 잇는 더블 스택 공정을 활용한다고 전했다.

전원이 들어오지 않아도 정보를 저장하는 메모리반도체인 낸드플래시는 반도체를 여러 겹으로 쌓는 ‘적층’ 경쟁이 한창이다. 메모리 셀을 높이 쌓는 ‘적층’은 단수가 높아질수록 이에 비례해 단위 면적당 생산성이 높아지고, 동일한 칩 면적에 더 많은 데이터를 저장할 수 있다. 같은 대지면적에 낮은 건물과 높은 건물의 연면적이 상당한 차이를 보이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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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론이 발표한 232단 낸드플래시 양산 계획. /마이크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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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지난 2020년 마이크론은 업계 최초로 176단 낸드를 개발했다고 해 업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당시만 해도 낸드플래시의 최고 단수는 시장 1위 삼성전자와 4위 SK하이닉스가 양산하던 128단이었기 때문이다. 마이크론의 232단 낸드가 양산에 성공한다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또다시 세계 최고층 낸드 양산의 영광을 마이크론에 넘겨주는 셈이 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모두 마이크론의 기술 추월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우리도 이미 확보한 기술이다”라는 입장이었지만, 내부적으로는 상당한 위기감을 느꼈다고 한다. 경쟁 회사와의 초격차가 앞으로 수년간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두 회사는 뒤늦게 실적 발표회 등에서 각각 마이크론 기술에 버금가는 신기술을 소개하기도 했다.

인텔 낸드 부문을 인수한 SK하이닉스에 밀려 시장 3위로 내려앉은 일본 키옥시아는 수십조원의 투자를 통해 생산능력 확충에 열을 올리고 있다. 사회 전 분야에서 반도체 사용이 증가하고, 이와 더불어 메모리 반도체 수요 역시 크게 늘자 생산능력 확대로 점유율을 끌어올리겠다는 것이다. 첨단 기술 선점도 중요하지만, 판매량과 수익성이 가장 높은 부문은 중간 기술인 만큼 이 경쟁력을 더욱 강화하는 게 키옥시아의 전략이다.

키옥시아는 미국 웨스턴디지털과 공동으로 일본 북부 이와테현에 면적 3만1000㎡, 1조엔(약 9조8900억원) 규모의 새 낸드 생산시설을 짓는다. 다음 달 내진 시설 건설을 시작, 내년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일본 정부도 이 공장에 6000억엔(약 5조9300억원)으로 조성되는 산업 기금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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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옥시아 일본 미에현 욧카이치 공장. /키옥시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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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지난달 키옥시아는 역시 웨스턴디지털과 10조원을 합작 투자한 미에현 욧카이치 공장의 새 제조라인을 완공했다. 여기서는 112단, 162단 낸드가 올해 3분기부터 생산될 예정이다.

미국과 일본이 첨단 기술 개발과 투자에 고삐를 쥐면서 국내 기업과의 심리적 격차는 상당히 줄어든 상태다. 특히 메모리반도체 제조 난도가 높아지면서 이미 상당한 기술 수준을 쌓은 국내 기업은 성장속도가 느려지고, 이를 따라가는 미국과 일본 기업의 기술 수준은 빠르게 개선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과 일본이 한국에 따라잡히고 역전당했던 것처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기업과 미국·일본의 격차가 곧 좁혀질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낸드플래시 시장의 지난해 4분기 기준 점유율을 보면 삼성전자가 33.1%로 1위, 솔리다임(옛 인텔 낸드)을 인수한 SK하이닉스가 합산 19.5%로 2위다. 키옥시아는 19.2%, 웨스턴디지털 14.2%, 마이크론 10.2%로 뒤를 잇는다. 삼성전자는 압도적 1위를 차지하고 있으나, 전분기(2021년 3분기) 대비 점유율이 1.4%포인트 줄었다. SK하이닉스의 경우 점유율이 전분기 대비 0.6%포인트 확대됐으나, 솔리다임이 0.5%포인트 위축되면서 큰 변화가 없었다. 이 사이 다른 기업들의 점유율이 소폭 상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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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V낸드 이미지. /삼성전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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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국내 기업들도 앉아서 당하지만은 않겠다는 입장이다. 송재혁 삼성전자 플래시 개발실장 부사장은 “삼성전자는 200단이 넘는 8세대 차세대 낸드 동작 칩을 확보하고, 시장 상황과 고객의 요구에 따라 적기에 제품을 선보이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라며 “삼성전자는 한 번에 100단 이상을 쌓고, 10억개가 넘는 구멍을 뚫을 수 있는 ‘싱글스택 에칭’ 기술을 가진 유일한 기업으로, 높이의 물리적 한계를 극복하고 초고단으로 갈 수 있는 기술 리더십을 확보하고 있다”라고 했다.

노종원 SK하이닉스 사업총괄 사장은 “지난해 말 양산을 시작한 176단 낸드는 현재 수율(결함이 없는 합격품의 비율) 개선과 함께 비중 확대가 이뤄지고 있다”라며 “차세대 제품인 238단 낸드 개발 역시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고 했다.

업계는 낸드 기술이 반드시 ‘적층’에만 좌우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얼마나 쌓느냐’만큼 ‘어떻게 쌓느냐’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적층 기술은 어떻게 쌓느냐에 따라 생산효율이나 원가 경쟁력에 상당한 차이가 생긴다”라며 “미국 마이크론은 최근 몇 년간 앞선 기술력을 강조해 왔고, 누구보다 먼저 양산한다는 것을 전략으로 삼아왔기 때문에 비록 양산 일정이 뒤처졌다고 해서 실제 시장에서 영향력이 줄어들 것이라는 예측은 섣부를 수 있다”라고 했다.

박진우 기자(nicholas@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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