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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민식이법' 위반 운전자들 처벌 과하다고?...173건 중 8건만 실형 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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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식이법' 2년... 하급심 판결 173건 분석
대부분 집행유예·벌금형... 징역형 거의 없어
"억울한 운전자 줄고, 스쿨존 안전 강화"
법안 개정 여론 등장...전문가들 "신중 논의해야"
한국일보

한 초등학교 앞 어린이보호구역.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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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행 3년째를 맞이한 '민식이법' 위반으로 기소된 운전자들 대부분이 집행유예와 벌금형 선고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 교통사고에 대한 처벌이 강화되면서 '억울한 운전자가 양산되고 있다'는 법 폐지 혹은 개정 주장과는 사뭇 다른 결과다.

민식이법 시행 2년... 실형은 고작 8건

한국일보

민식이법 시행 2년 이후 1심 판결 통계. 그래픽=신동준 기자


23일 김남국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2020년 3월부터 시행되고 있는 '도로교통법과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 개정안'(민식이법)이 적용된 스쿨존에서의 아동 치사·상 1심 판결 173건(2020년 3월~2022년 3월) 가운데 실형이 선고된 사건은 8건에 불과했다. 대신 징역형에 집행유예가 76건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으며, 벌금형이 67건, 벌금형의 집행유예가 선고된 사건은 7건이다. 무죄가 선고된 사건은 8건으로, 실형 선고 건수와 동일했다.

2019년 고 김민식군 사망 사고를 계기로 시행된 민식이법은 스쿨존에서 운전자가 30㎞ 이상 운행하는 등 안전주의 의무를 소홀히 하다 사고를 낸 운전자를 가중처벌하도록 하고 있다. 13세 미만 아동에게 사고를 냈을 때 사망은 최대 무기징역, 상해는 1년 이상 15년 이하 징역형에 처하도록 한 것이다. 벌금형 기준도 500만~3,000만 원으로 여타 교통사고보다 상대적으로 중한 처벌을 내리도록 하고 있다.

형량 낮은 이유는? 법조계 "과실 여부 꼼꼼히 따져"

한국일보

지난 18일 오후 서울 시내 한 초등학교 앞 스쿨존의 모습.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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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계에선 이 같은 결과를 민식이법 시행으로 법원이 운전자의 과실 책임 여부를 이전보다 더 꼼꼼하게 따지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한다. 과한 처벌을 받게 되는, 소위 '억울한 운전자'를 만들지 않기 위해 보다 엄격한 잣대로 법원이 판단을 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예컨대 서울중앙지법 형사27부(부장 김옥곤)는 지난달 어린이보호구역 치상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무죄를 선고하면서 '컴퓨터 시뮬레이션 결과'까지 동원해 사고 당시를 꼼꼼하게 따져봤다. 당시 재판부는 "A씨가 피해자의 모습을 처음 확인할 수 있는 시점은 충돌 0.76초 전"이라며 "A씨가 피해자를 발견하고 곧바로 브레이크를 밟아 승용차가 정차하기 위해서는 2.08초의 시간이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과실로 사고를 낸 건지, 불가항력적으로 사고를 당한 것인지 등을 엄격하게 판단하고 있다는 얘기다.

정경일 교통사고전문 변호사는 "법원이 민식이법 형량이 운전자에게 불리하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과실이 미미한 경우에는 형량을 과감히 감경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교통사고가 성폭력 등 다른 범죄에 비해 가해자와 피해자 간 합의율이 높은 점도 징역형 선고율이 낮은 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억울한 운전자' 드문데 속도 제한 완화? "심각하게 재고해야"

한국일보

지난해 5월 오전 인천 서구 검단복지회관 앞 삼거리 인도 한쪽에 마련된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 횡단보도 사고 피해자 추모대 앞에서 한 주민이 고인의 명복을 빌고 있다. 이환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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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 운전자가 과도한 처벌을 받게 된다'는 주장만을 근거로 민식이법 개정 논의가 급하게 진행돼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경찰청은 심야시간대 스쿨존 제한 속도 상향(30→50㎞)을 일부 지역에서 시범 운영하고 있고, 법제처는 오는 9월까지 법 시행 이후 '입법영향평가'를 실시할 계획이다.

박무혁 도로교통공단 교수는 "심야시간대 스쿨존 사고 사례가 있고, 코로나19 일상회복과 함께 음주운전자 등이 늘어나면 교통 질서가 혼잡해질 가능성이 크다"며 "불법 주정차 문제 해결 등 어린이들의 교통 안전을 질적으로 제고할 방안에 대한 고민 없이 속도 제한만 푸는 건 심각하게 재고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준규 기자 ssangkka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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