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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이선의 인물과 식물] 이승만과 양버즘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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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시대가 막을 내렸다. 이승만 대통령 이후 권력의 상징이던 청와대는 원래 경복궁의 후원으로, 경무대라고 불리다가 윤보선 대통령 때부터 청와대라는 명칭을 얻게 되었다. 옛 경무대 앞길이었던 청와대의 분수 광장에서 경복궁 서쪽 담장을 따라 조성된 효자로에는 오래된 양버즘나무(플라타너스)가 줄지어 서 있다. 양버즘나무와 은행나무는 도심 가로수 중에 가장 많이 심긴 나무다.

1956년 ‘신태양’이라는 잡지에 기고한 조지훈의 글에 의하면 서울에 오래된 양버즘나무 가로수가 무성하게 된 것은 이승만의 지시에 따른 것이라 한다. 조지훈은 서울 시내의 양버즘나무 가로수 길을 보며 “이승만의 치적 중에 가장 큰 성과를 올린 것이 무엇이었던가. 나는 이 플라타너스 문화정책이 유일한 것이라 믿는 사람이다”라고 말했다. 양버즘나무는 미국 동부지역이 원산지인데, 우리나라에 처음 도입된 것은 대략 1880년대 후반으로 추정한다. 일제강점기 초부터 가로수로 심어져 왔지만, 해방 후에는 이승만의 ‘말씀’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는 왜 하필 양버즘나무에 관심을 쏟았던 것일까. 이와 관련된 기록은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아, 그 내력을 거슬러 찾아본다.

이승만은 1900년대 초에 미국 유학을 떠났는데, 그가 유학한 조지워싱턴대학, 하버드대학, 프린스턴대학은 모두 미국 동부에 위치한 명문대학이다. 양버즘나무의 고향도 바로 그곳이니 그가 유학 시절에 흔히 보았던 나무였을 것이다. 이승만이 박사학위를 받은 프린스턴대학의 캠퍼스 내 노거수를 소개한 책자 <Trees of Princeton University>에는 양버즘나무가 맨 앞에 등장한다. 프린스턴대학 구내 매클린 하우스 앞뜰에 자라고 있는 이 양버즘나무는 1766년에 심은 것으로, 프린스턴대학 내에서 가장 오래된 노거수로 소개되어 있다. 북아메리카 원주민이 사랑했던 나무로, 열매의 생김새 때문에 일명 ‘단추방울나무’라고도 불린다. 100여년 전 프린스턴대학의 기숙사에 기거하면서 대학 생활을 보냈던 이승만이 수시로 마주했을 이 양버즘나무는 아직도 건재하다. 이승만이 특히 양버즘나무에 관심을 보인 것은 유학 시절 대학 캠퍼스 내에서 자주 만났던 그 나무에 대한 추억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는 양버즘나무가 심어진 경무대 앞의 가로수길을 걸으며 젊은 날을 회상했을지도 모른다.

이제 이승만을 비롯해 많은 대통령이 청와대를 떠났다. 사람은 떠났어도 나무는 남아, 그 영욕의 시간을 알려준다.

이선 한국전통문화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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